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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적 사고의 허점…‘잡음’을 잡아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6호 21면

노이즈: 생각의 잡음

노이즈: 생각의 잡음

노이즈: 생각의 잡음
대니얼 카너먼 외 2인 지음
장진영 옮김
김영사

같은 범죄라도 판사에 따라 형량이 들쭉날쭉하다는 건 더이상 뉴스도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겠지만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안하고 고통받는 건 결국 법률 소비자, 시민이다.

미국도 별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우리보다 심각했다. 일찌감치 1973년에 마빈 프랑켈이라는 인권 변호사 출신 판사가 맹렬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한다. 이듬해 대규모 연구를 진행한 결과 형량의 차이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마약상은 징역 1년에서 10년을, 은행 강도는 징역 5년에서 18년을 선고받았다. 프랑켈은 거의 통제되지 않는 압도적 권력(판사)이 날마다 독단적 잔학행위를 자행한다고 개탄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왜 발생하는 걸까. 판사마다 다른 양형 차이 말이다. 판사의 성격 때문일 수 있다. 운 좋은 범죄자는 관대한 판사를 만난다. 그런데 관대한 판사는 모든 범죄 사안에 공평하게 혹은 기계적으로 관대한 걸까. 성범죄에 대해서는 가혹할 수도, 고령의 피의자에게 특히 관대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같은 판사의 오전 판결과 오후 판결이 다를 수 있다.

저자들은 판사에 따라 들쭉날쭉한 형량 등의 판단 오류가 ‘잡음’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뉴스1]

저자들은 판사에 따라 들쭉날쭉한 형량 등의 판단 오류가 ‘잡음’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뉴스1]

저자들은 판사들의 이같은 판단 오류가 ‘잡음(noise)’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잡음은 일관되게, 체계적으로 정답에서 벗어난 편향과는 다르다. 정답 주변에 넓게 퍼져 있다. 임의적 분산(random scatter)이다. 변산성(變散性·variability), 개별 사례가 흩어진 정도로 표현된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뭔가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생각에 잡음이 끼어들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변산성의 정도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의 잡음을 초래하는 원인은 뭔지, 어떻게 잡음을 줄일 수 있는지를 600쪽에 걸쳐서 파고든 책이다.

당연히 잡음에 귀 먼 이들은 판사만이 아니다. 어떤 사회든 사법제도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의료, 지문감식, 근무평정, 정치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 잡음이 만연하기 마련이다. 기업의 실적 예상은 빗나가기 일쑤다. 입사 면접이나 인사고과도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저자들은 이런 잡음이 커다란 비용을 발생시킬 뿐 아니라 끔찍한 불공평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도 편향이 대부분의 경우 공공의 적처럼 지탄받는 반면 잡음은 그런 게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유가 뭘까. 인과적 사고를 원인으로 꼽았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든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건은 원인의 결과다. 원인과 결과로 구성된 하나의 이야기, 서사를 만들어 관측한 사건을 설명해낼 수 있을 때 그 사건을, 세상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생략되는 게 서사에 들어맞지 않는 곁가지, 잡음들이다. 이렇게 인과적 사고에 매몰돼 있다 보니 그동안 잡음을 의식하지 않고, 혹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것이다.

이런 잡음을 찾아내는 방법은 통계적 사고다. 통계를 들여다봐야 잡음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기업 효율성을 높이는 방편으로 저자들이 제안한 잡음 감사도 결국 문제가 된 사안을 여러 명의 전문가가 점검하게 한 다음 그 결과들 사이의 편차, 통계를 살피는 방식이다.

책에는 허들도 있다. 통계 용어가 심심치 않게 튀어나온다. 적어도 기자에게는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대목을 그냥 통과해도 책의 대의를 파악하고 세부 묘미를 감상하는 데 지장이 없다. 저자들은 그냥 저술가가 아니다. 대표 저자 대니얼 카너먼만 해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다. 인간 심리에 대한 풍부한 사례와 통찰이 독서욕을 자극한다. 가령 특정 정당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행동과 인기 최고의 음원을 다운로드하는 행동 사이에 심리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사회학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143·144쪽). 그렇지만 미국 아마존의 리뷰가 찬사 일색인 건 아니다. 부정적인 리뷰에는 잡음이 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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