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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무기 될까봐? 민주당 '한국형 FBI' 통째로 없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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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당초 여야가 검수완박의 대안으로 합의한 ‘1년 6개월 안에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 FBI’)을 설립한다’는 내용이 통째로 사라졌다. 결국 검찰의 수사권만 ‘증발’시키고 경찰의 몸집만 잔뜩 키워준 채 아무런 통제 방안을 마련하지 않아 경찰권 비대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박병석 국회의장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하는 방향으로 한다 ▶검찰 외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대응 역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폐지한다 ▶중수청은 사법개혁특위 구성 후 6개월 내 입법 조치를 완성하고 입법 조치 후 1년 이내에 발족시킨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검수완박' 저지 연좌농성장을 지나 제87차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검수완박' 저지 연좌농성장을 지나 제87차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들은 지난 25일 법사위 소위에서 합의내용을 종합,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하는 방향으로 한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한시적이며, 검찰 외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대응 역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러 중수청이 출범하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폐지한다’는 문구를 검찰청법 개정안 부대의견에 넣는 조정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검찰청법 개정안에는 이 같은 중수청 설치 부대의견이 고스란히 빠졌다. 중수청 설치, 경찰권 비대화에 대한 견제 방안 등 사법체계 전반을 논의할 사법개혁특위를 구성하자는 합의도 증발했다. 부칙엔 4개월의 유예기간만 담겼을 뿐 검사의 직접 수사권을 모두 폐지하는 시기나 숙의를 위한 특위 구성 등은 어떤 형태로든 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법안 내용을 설명했지만, 중수청을 누락시킨 이유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박병석 국회의장 '검수완박' 조정안에 대해 여야가 지난 22일 합의한 내용. 중앙포토

박병석 국회의장 '검수완박' 조정안에 대해 여야가 지난 22일 합의한 내용. 중앙포토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은 당초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였던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요범죄를 쪼개 2대(부패·경제) 범죄 수사권은 검찰이, 4대(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 수사권은 경찰이 갖는 ‘수사권 재조정’에 그쳤다. 경찰이 수사를 독점하는 중요범죄의 범위만 넓혀놓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JTBC가 방영한 손석희 전 앵커와의 특별대담(‘대담 문재인의 5년’) 1회에서 “경찰의 잘못된 수사는 검찰의 보완수사로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개정안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의 보완수사에 관한 검사의 권한을 ‘동일성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 내’로 제한해 사실상 경찰 수사에 대한 검사의 통제 권한마저 축소했다. 다만,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에 법안이 상정되기 직전 검찰이 경찰에 송치를 명령하거나 이의신청이 있는 사건에 대해서만 이 제한을 적용하도록 하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이와 관련, 한 검찰 간부는 “곧 야당이 되는 입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중수청이라는 대형 권력기관을 갖다 바치는 꼴이라 주저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발의된 중수청(또는 특별수사청) 법안에 따르면 청장에 대한 임면권을 대통령이 갖고 소속을 법무부에 두도록 하고 있어 민주당으로썬 부담이 됐다는 해석이다. 윤 당선인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한동훈 검사장은 그의 최측근이자 특수통 출신이다. 한 법조계 인사도 “검사는 변호사 자격에 신분이 보장되지만, 중수청법상 중수청 수사관은 그렇지 않다”며 “권력이 휘두르기 수월한 중수청을 섣불리 추진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2024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을 넘겨받는 데다가 국내정보 수집 기능에 이어 수사권도 사실상 독점하게 됐다. 이런 경찰이 정치화할 경우에 대한 대비책은 이번 법안에 전혀 들어있지 않다.

법조계 일각에선 “경찰 내부 견제 방책으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를 앉힐 수도 있지 않겠느냐”(한 재경지검 간부)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실제 경찰법에 따르면 국가수사본부장은 외부인사 임용이 가능하고 그 요건 중엔 ‘판사·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에 10년 이상 있었던 사람’도 포함된다(16조 6항 2호). 윤 당선인은 행정안전부 장관에도 측근이자 판사 출신인 이상민 후보자를 내정했다.

☞부대의견

법조문에 담기 힘든 내용을 법안에 첨부하는 비공식 의견이다. 국회법상 근거가 없는데다 공식 의결 사안도 아니어서 법적 구속력도 없다는 게 다수설이다. 다만, 국회가 법안에 첨부하는 형태로 권위를 부여해 정부에 전달하는 개념이라 입법 과정에서 종종 활용된다. 입법 과정에서 법조문에 반영하지 못한 소수의견을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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