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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장, 러·우크라 중재 통할까...젤렌스키 "방문 순서 잘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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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이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를 위해 오는 26일과 28일 각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한다. 구테흐스 총장이 양국 정상과 회담하는 건 개전 후 처음으로, 양국의 합의점이 도출될 지 주목된다. 이번 연쇄 회담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본격적인 외교적 해법 모색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유엔은 22일(현지시간) "구테흐스 총장이 26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이틀 뒤인 28일 우크라이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 로이터=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 로이터=연합뉴스

에리 가네코 유엔 부대변인은 "(구테흐스) 총장은 두 회담에서 교전을 멈추게 하기 위해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와 우크라이나에 빨리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대화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쇄 회담은 구테흐스 총장이 지난 19일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각각 회담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뒤 성사됐다. 구테흐스 총장은 정교회 성주간(4월 21~24일)을 맞아 나흘간의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엔·총장 적극 참여를" 촉구   

유엔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주축이 돼 세계 평화 보장과 전쟁 방지를 목적으로 1945년 설립된 국제기구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그간 유엔은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구테흐스 총장의 중재 노력이 미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앞서 19일 가디언은 전직 유엔 관리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있어 총장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0명 이상의 전 유엔 고위 관리들은 서한을 통해 구테흐스 총장에게 "우크라이나 평화 중재를 위해 개인적으로 더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유엔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우리와 대중이 보고 싶은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유엔의 정치적 존재감과 참여, 주목할만 한 인도주의적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푸틴 대통령과 회담 당시의 모습. 유엔 홈페이지 캡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푸틴 대통령과 회담 당시의 모습. 유엔 홈페이지 캡처

가디언은 구테흐스 총장과 전임 총장들의 행보를 비교하기도 했다. 앞서 1961년 미국과 옛 소련이 강하게 대립한 쿠바 미사일 사태 땐 우 탄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과 소련간 갈등 중재에 큰 역할을 했으며 1990년 걸프전 땐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당시 유엔 총장이 미국이 이라크와 협상하도록 설득했다고 지적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자 평화적 해결을 위해 모스크바와 키이우를 방문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젤렌스키 "방문 순서에 논리 없어"...푸틴에 회담 제안 

유엔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원인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들 간의 분열도 지목된다. 러시아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과 함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유엔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안보리를 통한 강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이 꼽힌다. 하지만, 안보리가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5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며 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를 퇴출하거나 거부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3일 키이우 지하철역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이 23일 키이우 지하철역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구테흐스 총장의 방문 순서를 문제 삼았다. 그는 23일 "먼저 러시아에 갔다가 우크라이나로 오는 것은 그야말로 잘못"이라며 "방문 순서에 공정도 논리도 없다"고 지적했다.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고, 모스크바의 거리엔 시체가 없다. 먼저 우크라이나에서 침공의 결과를 보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젤렌스키는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다시 제안했다. 그는 "누가 됐든 전쟁을 시작한 사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평화협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푸틴 대통령을 만나는 게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마리우폴에서 최후의 항전 중인 자국 병사들이 전사하는 경우 모스크바와의 회담을 중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교적 해법 모색의 국면 전환 계기" 

전문가들은 이번 구테흐스 총장의 연쇄 회담 성과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기대감을 표명했다. 제프리 펠트만 전 유엔 정무 담당 사무차장은 AP에 "유엔 총장이 (이번 회담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과장된 기대를 해선 안 된다"면서도 "총장의 이런 회담은 상당한 도덕적 힘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유엔이 지켜야 할 평화와 안보의 상징"이라고 평했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대학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런 회담이 다소 늦은 감이 있고, 당장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겠지만 러시아가 미국은 물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EU)과도 대립하고, 독일과 프랑스의 중재 노력도 별다른 힘을 못 쓰는 상황에서 유엔은 외교적 해법의 합법적인 장이 될 수 있는 주체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회담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외교적 해법을 본격적으로 모색해 보는 국면 전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유엔이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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