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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금지된 나라서 "꺼져라"에 열광…푸틴은 '입 전쟁'서 졌다

중앙일보

입력

우크라이나 우정청이 최근 발행한 항전 우표. 러시아 군함에 저항한 즈미니섬 국경수비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표엔 병사들이 러시아 군함에 외친 '러시아 군함, 꺼지고 엿이나 먹어라'란 문구가 쓰여 있다. 트위터 캡처

우크라이나 우정청이 최근 발행한 항전 우표. 러시아 군함에 저항한 즈미니섬 국경수비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표엔 병사들이 러시아 군함에 외친 '러시아 군함, 꺼지고 엿이나 먹어라'란 문구가 쓰여 있다. 트위터 캡처

총을 든 우크라이나 병사가 러시아 군함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욕설을 하고 있다. 이 일러스트가 그려진 우표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러시아 군함, 꺼지고 엿이나 먹어라.' 우크라이나 우정청이 지난 12일(현지시간)일부터 주요 우체국과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는 우표다.

이 '항전 우표'에 적힌 글은 우크라이나 즈미니섬의 국경수비대원 로먼 흐리보우가 지난 2월 24일 러시아군에 항전하며 한 말이다. 당시 러시아 군함이 흐리보우를 포함한 13명의 대원들에게 무전으로 투항을 압박했지만, 대원들이 용감하게 항전한 이야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대표적인 영웅담이다. 흐리보우 병사가 러시아 군함에 외친 욕설은 우크라이나의 국가적인 슬로건이 됐다.

14일(현지시간) 키이우 중앙우체국 앞에 흐리보우 병사가 러시아 군함에 외친 욕설이 적힌 항전 우표를 구하기 위해 줄이 늘어섰다. 로이터=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키이우 중앙우체국 앞에 흐리보우 병사가 러시아 군함에 외친 욕설이 적힌 항전 우표를 구하기 위해 줄이 늘어섰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무자비한 침공에 맞서는 욕설이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라고 부르면 처벌하는 등 강력한 여론 통제로 국민들의 반감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전 이후 지도자의 소통 능력 면에서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뒤떨어진다는 평가다. 무력 전쟁을 떠나 '보이지 않는 언어 전쟁'에서 만큼은 러시아의 패색이 짙다는 분석이 나온다.

'욕설 금지법'있는 나라에 항전 욕설이 슬로건으로    

언어 전문가인 제이미 란 영국 글래스고대 박사는 13일 가디언 기고에서 "욕설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또 다른 무기가 됐다. 언어는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대응에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욕설은 러시아에 대한 분노 표출이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됐다"고 평했다.

키이우 외곽 브로바리의 도로에 '러시아 군함, 꺼지고 엿이나 먹어라'란 문구가 적힌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키이우 외곽 브로바리의 도로에 '러시아 군함, 꺼지고 엿이나 먹어라'란 문구가 적힌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러시아의 침공 전까지 우크라이나는 욕설을 금기시했다. 2021년 '욕설 금지법'을 제정해 TV와 공개 연설 등에서 욕설을 하면 벌금을 물릴 정도였다. WP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원래 입이 거친 국민이 아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분위기를 급변하게 만든 건 러시아의 침략 전쟁이었다.

WP와 가디언에 따르면 문구 '러시아 군함, 꺼지고 엿이나 먹어라'는 우크라이나 곳곳의 도로 표지판과 광고판에 새겨졌다. 심지어 티셔츠들에도 그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 문구가 들어간 우표는 우크라이나 우정청이 항전 의식을 높이기 위해 공모전을 진행해 선정했다. 로이터 등은 14일 이 우표를 구하려는 이들이 키이우 중앙우체국 앞에 길게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문구의 주인공인 흐리보우 병사는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뒤 우크라이나 정부의 훈장을 받은 바 있다.

우크라이나가 발행한 항전 우표.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발행한 항전 우표.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일부 주민들이 험악한 말로 러시아 병사들과 탱크를 막아선 일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한 국회의원이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향해 욕설을 한 영상은 조회 수가 수백만 회에 달했다.

WP는 "이런 욕설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져 반러 언어와 반러 정서를 전파하는 효과도 있다"고 평했다.

"러시아의 강력한 여론 통제, 부작용있다"   

폴 머스그레이브 미국 매사추세츠 애머스트대 정치학 교수는 "강한 언어는 전시 상황의 특징"이라며 "적이 침입했을 때 욕설을 하는 건 행위적 저항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말들이 이 말을 한 사람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지만, 굴복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러시아는 개전 이후 여론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소식을 퍼뜨릴 경우 최고 15년형에 처한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칭하며 '전쟁'이란 표현조차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진실을 알리는 언론사와 언론인을 탄압하고, 소셜미디어를 차단했다.

러시아 언론인 마리나 오브샤니코바가 지난달 14일 러시아 국영 채널1 뉴스 생방송 중 앵커 뒤에 난입해 "전쟁을 중단하라"는 메시지가 적힌 문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 언론인 마리나 오브샤니코바가 지난달 14일 러시아 국영 채널1 뉴스 생방송 중 앵커 뒤에 난입해 "전쟁을 중단하라"는 메시지가 적힌 문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란 박사는 칼럼을 통해 "이런 식의 언어 통제는 오히려 반발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러시아 국영TV 뉴스 생방송 도중 벌어진 반전 시위를 꼽았다. 러시아 언론인 마리나 오브샤니코바는 지난달 14일 채널1 뉴스 생방송 중 앵커 뒤에 난입해 "전쟁을 중단하라"는 메시지가 적힌 문구를 들어 보였다.

란 박사는 "건강한 사회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전쟁을 중단하라'는 말을 금기시한 결과 사안을 정치적으로 더 키웠다"고 꼬집었다.

"공격받는 상황인데 젤렌스키의 소통이 더 능통"  

푸틴 대통령(사진 위)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관료를 대하는 대조적인 모습. 푸틴은 긴 테이블에서 관료들과 떨어져 앉아 있고, 젤렌스키는 항전 중인 관료를 격려하기 위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트위터 캡처

푸틴 대통령(사진 위)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관료를 대하는 대조적인 모습. 푸틴은 긴 테이블에서 관료들과 떨어져 앉아 있고, 젤렌스키는 항전 중인 관료를 격려하기 위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트위터 캡처

개전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로 세계를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각각 수십 차례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대국민 영상, 해외 국회 등에서의 화상 연설로 국민을 결집시키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키이우 퇴각 이후 처음으로 지난 12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공개 회견을 했는데, "횡설수설하거나 더듬거렸다"는 외신의 평가가 나왔다.

란 박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푸틴보다 소통에 능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크림반도 병합 기념식에서 1600만원 상당의 명품 패딩을 입고 등장해 비판받았다. EPA=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크림반도 병합 기념식에서 1600만원 상당의 명품 패딩을 입고 등장해 비판받았다. EPA=연합뉴스

두 정상은 옷차림과 같은 비언어적 메시지에서도 비교가 되고 있다. 젤렌스키는 연설 등 공식 석상에서 항상 군용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 패션평론가 바네사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그의 티셔츠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강인함과 애국심을 상징한다"며 "또 거리에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고난을 공유한다는 표시"라고 해석한 바 있다.

반면 양복과 넥타이 차림의 푸틴은 관료들과 긴 테이블에서 멀리 떨어져 앉은 모습으로 "권위적이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남겼다. 또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로 자국민들이 고통받는 가운데 지난달 크림반도 병합 기념식에 1600만원 상당의 명품 패딩을 입고 나와 비판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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