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안보리 거부권 틀어쥔 셈"…'전범' 러 퇴출 요구 확산

중앙일보

입력 2022.04.12 05:00

"모든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범(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나라(러시아)와 함께 하면서 어떻게 세계는 효과적인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를 가질 수 있겠는가."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의 퇴출을 촉구하고, 유엔의 역할 한계를 지적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참상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가 분노했지만, 세계 평화와 인류의 안전을 지켜야 할 유엔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유엔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주축이 돼 세계 평화 보장과 전쟁 방지를 목적으로 1945년 설립된 국제기구다.  

지난 5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5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프리드먼은 칼럼에서 "냉전 종식 이후 세계의 많은 부분을 안정시키고, 번영하게 했던 광범위한 체계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심각하게 무너졌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이제 부인할 수 없다"며 "푸틴은 이전까지 '나쁜 소년'인 척 연기했지만 이유없는 우크라이나 침공, 무차별적인 도시 파괴, 민간인 집단 학살을 자행해 '전범'으로 변했다. 그 무엇도 (이전과) 똑같이 작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안보리 거부권, 히틀러의 거부권과 마찬가지"  

프리드먼의 지적처럼 '전범'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과 함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유엔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안보리를 통한 강제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이 꼽힌다. 하지만 안보리가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리려면 5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하고, 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러시아가 상임이사국 지위를 유지하고, 거부권이 있는 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유엔 안보리의 제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군 마을이 러시아군의 공격에 의해 파괴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군 마을이 러시아군의 공격에 의해 파괴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변호사 제프리 니스 경은 타임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갖는 것은 히틀러가 (나치 전범 재판이 열린) 뉘른베르크에서 거부권을 갖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를 쫓아내거나 거부권을 박탈하는 것이 현 체제를 바로잡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니스 경은 발칸 전쟁을 일으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에 대한 전범 재판을 이끈 바 있다.

"러, 법적·도덕적 자격 부족"   

미국 백악관 수석 연설비서관을 지낸 칼럼니스트 마크 티센은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유엔 헌장을 근거로 러시아의 안보리 퇴출을 촉구했다. 

유엔 헌장 2장 6조는 "헌장에 포함된 원칙을 계속해서 위반한 유엔 회원국은 총회가 안보리의 권고에 따라 기구에서 제명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지난 7일 유엔 총회의 결의안 통과로 러시아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선 퇴출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안보리에서 상임이사국을 퇴출시키는 직접적인 절차 등이 헌장에 없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티센은 러시아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에 대한 법적 정당성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유엔 헌장(5장 23조)은 러시아가 아닌,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명시하고 있다"며 "소련은 해체됐고, 현재 러시아와 소련은 같은 나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호주의 데이브 샤르마 하원의원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의 행동을 통해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할 도덕적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했고, 법적 자격도 부족하다"며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미얀마 쿠데타, 시리아 내전서도 무력..."개혁을"  

유엔의 존재와 역할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미 공화당의 리즈 체니 하원의원은 10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 있는 상황에서 (유엔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거나 달성하고 있는 지에 대한 실존적인 의문이 생겼다"고 말했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5일 유엔 안보리 화상연설에서 "안보리가 보장해야 할 안보는 어디에 있는가, 유엔은 문 닫을 준비가 됐는가"라고 일갈했다.

유엔은 민간인 1700명이 살해된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50만여 명이 숨진 시리아 내전 등에서도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 비판받은 바 있다.

지난 7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러시아의 퇴출을 결정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7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러시아의 퇴출을 결정했다. AFP=연합뉴스

10일 AFP통신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교체, 거부권 제한 등과 같은 유엔 개혁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유엔 개혁은 권한 약화를 우려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 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이에 일각에선 현재의 국제 질서에 맞춰 유엔을 대체할 새로운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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