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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면 위험하고 '스톱'하면 크게 된다...조국·정호영의 괘 [주역으로 본 세상](3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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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갈 것이냐, 아니면 여기서 멈출 것이냐.

고(go)냐, 스톱(stop)이냐..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번 이 선택에 직면한다. 가정의 소소한 일부터 직장 업무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도, 매 순간 '고'냐 아니면 '스톱'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다. 투자를 단행해야 할지 말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해야 할지 말지를 놓고 치열한 수 싸움을 벌여야 한다. 선택은 항상 어렵다.

'못 먹어도 고(go)~'

그렇게 외치기도 한다. 상황이 분명 불리한데도 밀어붙인다. 나름 믿는 게 있을 수도 있지만, 주로 요행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심하면 패가망신이다.

"그때 장관후보직에서 물러났더라면 지금 그는 우리 앞에 대통령당선인으로 서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신평 변호사가 페북에 쓴 조국 교수 관련 글이다. 신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고, 지난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인물이다. 한국 현실 정치를 잘 파악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인용했다.

신 교수의 표현대로 조국 교수는 지금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의 불 한가운데서 몸 전체가 타고 있다. 부인은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고, 딸은 의전원 입학취소의 날벼락을 맞았다.

'고'냐, '스톱'이냐…. 순간순간 결정은 이처럼 큰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준비 사무실로 향하는 승강기에 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준비 사무실로 향하는 승강기에 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런데, 왠지 그 고통이 다시 잉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핵심은 '부정의 팩트'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법이 아닌 감정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조국 사태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이다. 그런데도 정 후보자는 그 불구덩이로 뛰어 들으려 한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게 인간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주역을 또 펴게 된다.

39번째 '수산건(水山蹇)' 괘를 뽑았다. 물을 뜻하는 감(坎, ☵)이 위에, 산을 뜻하는 간(艮, ☶)이 아래에 있다. 앞으로는 깊은 물이 가로막고, 뒤로는 높은 산이 퇴로를 끊어놓은 형세다. 진퇴양난이다.

괘 이름 '蹇(건)'은 '절름발이'라는 뜻이다. 첩첩산중, 다리마저 불편하니 걷기도 힘들다.

주역 39번째 '수산건(水山蹇)' 괘는 앞으로는 깊은 물이 가로막고, 뒤로는 높은 산이 퇴로를 끊어놓은 형세다. /바이두

주역 39번째 '수산건(水山蹇)' 괘는 앞으로는 깊은 물이 가로막고, 뒤로는 높은 산이 퇴로를 끊어놓은 형세다. /바이두

이런 때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주역은 한발 물러서라고 충고한다.

山上有水蹇, 君子以反身修德
산 위에 물이 있는 게 '건(蹇)'괘다. 군자는 이로써 자신을 돌아보고 덕을 닦는다.

앞에 커다란 장애가 있고, 본인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멈추는 게 맞다. 물러서서 반성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게 '수산건' 괘의 설명이다. 위험을 보고 능히 멈출 수 있어야 현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見險而能止, 知矣哉)! 스톱도 용기다.

첫 효(가장 아래 효) 효사(爻辭)는 이렇다.

往蹇, 來譽
나아가면 어려움이 있으나, 돌아오면 명예롭다.

"그때 멈췄더라면 아마 그는 대통령당선인이 됐을 것이다"라는 신평 변호사의 얘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조국 교수는 멈추지 않았고, 오늘 '불구덩이'에서 몸을 태워야 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

'나는 어찌해도 괜찮다. 내 아내, 아이들이 행복하면 된다.' 그게 우리 남성 가장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자기로 인해 가정이 망가졌으니, 얼마나 고통이 클지 가늠이 된다. 그때 장관 후보직에서 물러났더라면…. 신평 변호사는 조국 교수가 감내해야 할 고통의 근원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조국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수산건' 괘를 통해 추론해보자. 두 번째효사는 이렇다.

王臣蹇蹇, 匪躬之故
왕의 신하로서 온갖 어려움을 마다치 않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국 교수는 조국 개인이 아닌 '진영의 상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적당히 물러설 수도 없었다. 그를 추종하고 있는 지지 세력이 함께 추락할 테니 말이다. 자기에게 쏟아진 검찰의 조사와 대중의 비난은 보수세력의 공격으로 치부했다. '내로남불'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었다. 진영의 논리, 정권을 지키기 위한 성전(聖戰)이었기에 멈출 수 없었다.

어찌 생각하면,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당당할 수 있었다. 아내 정경심 교수는 법정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반성 없는 책임 회피'는 형량을 높이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수산건' 괘는 한발 물러서 후일을 도모하라고 말하고 있다. 동지와 연대하고, 힘을 축적하라는 충고다./바이두

'수산건' 괘는 한발 물러서 후일을 도모하라고 말하고 있다. 동지와 연대하고, 힘을 축적하라는 충고다./바이두

조국 교수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이어지는 괘 호사를 따라가 보자.

셋째 효: 무모하게 위험에 나서지 말고 돌아와 반성하라(往蹇, 來反)

넷째 효: 멈추고 돌아와 주변 측근 인사들과 연대하라(往蹇, 來連)

다섯째 효: 큰 어려움이 닥쳐도 동지들이 와서 도울 것이다(大蹇朋來)

한발 물러서 후일을 도모하라는 얘기다. 동지와 연대하고, 힘을 축적하라고 했다. 마지막 효사는 이렇게 정리한다.

往蹇來碩, 利見大人
나아가면 위험하지만 돌아오면 크게 된다.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공자(孔子)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의지는 자기 내부 역량에 달려있다(志在內也)'라고 했다. '물러서 반성하고, 덕을 길러야 한다(反身修德)'는 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내부 역량을 모아 때를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그게 자기가 받드는 리더(大人)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주역은 말한다.

조국 교수의 선택은 '고(go)'였다. 그 결과 개인은 '불구덩이의 고통'을 겪고 있고, 그가 몸담은 정권의 리더십은 망가졌다. 그 역사는 지금 반복되고 있다. 복지부 장관 지명자 정호영 교수가 다시 국민감정에 불을 붙이고 있다. 어리석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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