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가장 희한한 장면…장하성은 왜 中대사 덥석 물었나 [주역으로 본 세상](29)

중앙일보

입력 2022.04.11 06:12

업데이트 2022.04.11 09:09

하산(下山)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억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아래 얘기 역시 필자의 기억일 뿐이다. 일반화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기획실장을 주중 대사로 임명한 게 그것이다. 2019년 3월의 일이다.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하던 인물이다. '소주성'은 어긋났고,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는 2018년 말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문 대통령은 이런 장 실장을 '회전문'에 태워 베이징으로 보냈다.

왜? 이게 상식적인가?

중국을 연구하고, 관찰하는 필자로서는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장하성 본인이다. 중국대사 직은 던져 준다고 덥석 받는 '떡'이 아니다. 중국 지식과 외교 경험을 갖춘 인재를 찾아 쓰도록 대통령에게 권해야 했던 것 아닌가? 그게 지식인으로서의 당연한 처사 아니었을까? 그때 처음 문재인의 '촛불'을 심각하게 의심했다.

장하성 대사가 대중 외교에서 뭔가 크게 기여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교민들의 퍽퍽한 삶에 도움을 준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왜 굳이 그 자리에 앉으려 했던 걸까. 이해할 수 없다.

거듭된 내로남불, 정책실패, 인사 논란에 '촛불 의심'은 커져만 갔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신뢰는 깎였다. '신뢰의 파산',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이다.

공자는 경제, 국방, 신뢰를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이중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신뢰다.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民無信不立). /바이두

공자는 경제, 국방, 신뢰를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이중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신뢰다.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民無信不立). /바이두

공자(孔子)와 자공(子貢)의 대화다.

자공: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적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고,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게 핵심이다(足食, 足兵, 民信之矣).
자공: 부득이 그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먼저 뭘 버려야 하겠습니까?
공자: 군사를 버려야 한다.
자공: 또 버려야 한다면요?
공자: 음식이다. (신뢰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民無信不立).

경제, 안전, 그리고 신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국민의 신뢰만 있다면 경제를 다시 살릴 수도, 국방을 재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뢰가 없으면 말짱 '꽝'이다. 돌려 말하면 경제가 망가지고, 안전이 위협받으면 국민은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거둔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無信不立!

정치의 금과옥조다.

문재인 정권뿐 아니다. 이전 정권이 대략 그랬다. 이명박 정부의 '탐욕', 박근혜 정부의 '적폐',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정권이 끝날 때쯤에는 언제나 권력층의 비리와 부패가 도드라져 보이곤 했다. 한창 왕성할 때는 보이지 않던 각종 비리와 부패, 부조리 등이 끝날 때 줄줄이 폭로된다. 권력에 편승해 이권을 파먹던 무리가 하나둘 가면이 벗겨진 채 드러난다. 처음에는 오로지 국민에게만 봉사하겠다고 약속해놓고는 결국 정치, 경제적 잇속 챙기는 데 열중하는 모습이다.

임기 말 '신뢰 파산', 리더는 때로는 쓸쓸하게 때로는 불행하게 퇴장해야 했다.

'산지박' 괘의 산은 가까스로 땅에 붙어있다(山附地上). 그러니 견실할 수 없다. 비바람에 깎여 서서히 내려앉는다. / 바이두

'산지박' 괘의 산은 가까스로 땅에 붙어있다(山附地上). 그러니 견실할 수 없다. 비바람에 깎여 서서히 내려앉는다. / 바이두

가을 나무 같다. 봄에 깨어난 나무는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이면 잎을 떨군다. 가을 나목(裸木)은 그 형체를 온전히 드러낸다. 벌레가 파먹은 자국, 중간중간 썩은 부위도 보인다. 한 텀 끝날 때쯤 가렸던 비위가 속속 드러나는 우리 정치와 다르지 않다.

주역 23번째 '산지박(山地剝)' 괘가 그런 형상이다. 산을 상징하는 간(艮, ☶)이 위에, 땅을 의미하는 곤(坤, ☷)이 아래에 있다. 땅 위에 산이 있는 형상이다. 산은 원래 땅 위에 있는 것이니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산지박'의 산은 땅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지 않다. 그냥 가까스로 땅에 붙어있다(山附地上). 당연히 견실할 수 없다. 비바람에 깎여 서서히 내려앉는다.

그래서 괘 이름이 '剝(박)'이다. '깎인다', '떨어져 나간다', '벗겨진다' 라는 뜻이다. 지위나 자격을 빼앗는 것을 '박탈(剝奪)', 가죽을 벗기는 것을 '박피(剝皮)', 벗겨 분리하는 것을 '박리(剝離)'라고 한다. 가을 나무가 잎을 하나둘 떨구는 것 역시 '剝(박)'이다.

임기 말 우리나라 정치의 모습이 어떻게 이 괘에 투영되는 것일까? 괘를 다시 보자.

가장 윗 효(爻)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陰,--)이다. 음이 양(陽, ─)을 밀어내는 형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의 세력, 즉 소인(小人)들은 점점 더 세를 얻어 결국 판을 장악한다. 마지막 남은 양의 기운(군자)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처음에는 공정과 평등, 정의를 외쳤으되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권력에 편승한 모리배(소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변한다. 모리배들은 이권을 챙기고, 사회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剝(박)'괘는 흉(凶)하다.

'산지박' 괘는 이를 침상(침대)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첫 효: 침상 다리를 갉아먹는다(剝牀以足)
둘째 효: 침상 판 아래를 갉아먹는다(剝牀以辨)
넷째 효: 침상 판 표면을 갉아먹는다(剝牀以膚)
...

이들 효사(爻辭) 뒤에는 꼭 '凶(흉)'자가 붙어있다. 모리배들이 야금야금 사회를 갉아먹으니 서민들의 삶이 편할 리 없다. 권력이 위세를 부릴 때 그들의 비행은 감춰질 수 있다. 그러나 임기 말 힘이 빠지면 속이 훤히 드러난다. 가을 벌거벗은 나무가 그러하듯 말이다.

이 질곡의 역사는 왜 반복되는 것일까.

정치가 비즈니스화됐기 때문이다. 지금 헌법 체제에서 권력을 잡는 것은 5년 동안 자리를 챙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수 천개의 자리에 내 사람을 앉힐 수 있다. 언제부턴가 심지어 중국대사 자리도 귀여운 놈에게 던져주는 '떡'이 되어버렸다.

경제는 성장의 영역이요, 정치는 분배의 기술이다. 경제로 파이를 키우고, 정치로 고루 파이를 나눠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정치와 경제가 얽혀있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비즈니스로 여기니 경제계 인사들은 정치권 눈치를 봐야 한다.

정치꾼들은 자리를 보고 달려든다. 국민에 봉사? 턱도 없는 소리다. 그냥 '밥그릇'이요, 호령치고 이권을 챙기는 통로일 뿐이다. 해충이 수액을 빨고, 나뭇잎을 갉아먹듯 이들은 세금에 빨대를 꽂고 배를 불린다. 그러니 최고 권력자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고, 모리배들은 권력을 중심으로 똬리를 튼다. 선거에서 지면 빨대를 잃는다. 그러니 치열하게 싸운다.

또 시작이다. 대선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지방 권력을 바꾸는 선거가 치러진다. 정치권은 들썩인다. 선거만 있으면 반사적으로 뛰어드는 '정치꾼'이 판친다. 정치를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모리배 소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된들 그 질곡의 역사는 계속될 뿐이다. '윤석열 할아버지'가 한데도 말이다.

박수근의 '귀가'(1962). 최근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사진이다. 전시회 타이틀이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다.

박수근의 '귀가'(1962). 최근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사진이다. 전시회 타이틀이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다.

주역은 가장 흉한 '산지박' 괘에서도 희망을 얘기한다. 궁하면 반드시 변하고(窮則變), 변하면 반드시 통하기 마련이다(變則通). 모리배 소인들의 세상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 반드시 새 시대는 온다. 희망을 얘기하고, 밝은 미래를 약속할 정의로운 군자(지도자)가 나오게 되어있다.

'산지박' 괘 마지막 효사는 이렇게 말한다.

碩果不食, 君子得輿

탐스러운 열매는 따 먹지 마라. 군자는 수레를 얻게 될 것이다.

잎이 다 떨어진 가을 나뭇가지 끝에 탐스러운 열매가 하나 달려있다. 괘 가장 위에 있는 양효(─)가 이를 상징한다(䷖). 마지막 남은 생명력이다. 음의 세력은 아직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아슬아슬 남아 있는 열매, 그 과실을 따 먹지 말라는 얘기다.

훌륭한 농부는 보릿고개가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씻나락에 손대지 않는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석과(碩果)는 씻나락이요, 판도라 상자에 남아있는 바로 그것이다.

주역은 아무리 소인배가 판치는 세상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때가 무르익으면 군자(지도자)가 수레를 끌고 대중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을 평화와 번영의 세계로 실어 나를 수레 말이다.

새로운 지도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산지박' 괘 전체 의미와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는 대상(大象)은 이렇게 말한다.

山附地上剝, 上以厚下, 安宅

산이 땅에 의지해 있는 게 '박(剝)' 괘의 형상이다. 이로써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삶을 두껍게 하고, 집안을 편안히 한다.

'삶을 두껍게(厚)한다'는 것은 백성들이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공자가 말한 '배불리 먹이는 것(足食)'과 상통한다. '집안을 편안히 한다(安宅)'는 것은 안전한 삶이다. 족병(足兵)과 같은 맥락이다. 배불리 먹고, 전쟁 걱정 없다면 정치에 대한 신뢰는 자연스럽게 생긴다.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다.

곧 들어설 윤석열 정부는 과연 '탐스러운 열매'가 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대한민국호를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로 인도할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란다. 임기 말 '신뢰 파산'에 직면해야 했던 한국 정치의 질곡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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