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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세상](28) '문재인의 공정과 윤석열의 상식'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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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다. 뜨락에 복수초가 노란 잎을 활짝 피웠다. 아직 개나리도 안 폈는데, 얘는 왜 이래? 아내도 놀란 표정이다. 복수초는 그렇게 수줍은 듯 용문산 자락에 봄을 전해줬다.

둑에서는 냉이가 푸릇푸릇 잎을 펼친다. 벌써 서너 차례 국을 끓여 먹었다. 옆 동산 달래는 가는 잎새를 살찌우고 있고, 앞마당골칫덩이 쑥은 낮게 깔려 번지는 중이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이다. 메마른 풀 뿐이었다. 그런데 봄 동산 새싹들은 여지없이 땅을 뚫고 머리를 내민다. 도대체 저 땅 밑에는 무엇이 있었기에….

'우뢰(雨雷)'. 혹시 천둥과 번개가 저 땅속에 숨겨있었던 것은 아닐까….

뜨락에 복수초가 노란 잎을 활짝 피웠다. 봄이다. 옆 동산 달래는 가는 잎새를 살찌우고 있고, 앞 마당 골치덩이 쑥은 낮게 깔려 번지는 중이다.

뜨락에 복수초가 노란 잎을 활짝 피웠다. 봄이다. 옆 동산 달래는 가는 잎새를 살찌우고 있고, 앞 마당 골치덩이 쑥은 낮게 깔려 번지는 중이다.

주역 24번째 괘 '지뢰복(地雷復)'의 형상이 그렇다. 땅을 상징하는 곤(坤, ☷)이 위에, 우레를 의미하는 진(震, ☳)이 그 아래에 있다. 땅 아래에서 천둥과 번개가 꿈틀대고 있는 모습이다. 우레는 동적(動的)인 존재다. 에너지를 모아 발산시킨다. 그 생명력이 복수초 꽃을 피웠다.

괘 이름 '복(復)'은 '갔다 다시 돌아온다(復, 往來也)'라는 의미다(說文). 현대에도 그 의미 그대로 쓰인다. 코로나19가 확진되면 집에서 '회복(回復)'해야 하고, 강원도 화재 피해는 복구(復舊)해야 한다. 옛날 영광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부흥(復興)'이다.

无往不復!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

주역의 진리다. 봄이 반복(反復)되지 않고 겨울이 지속한다면 지구 생명은 멸종이다. 4계절, 1년 365일 만물은 반드시 반복과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야 항상(恒常)을 유지한다.

춘생(春生): 봄이면 새싹을 틔우고
하장(夏長): 여름엔 무성하게 자라고
추수(秋收): 가을에는 풍성히 열매를 맺어
동장(冬藏): 겨울에 보존한다.

이제 막 '춘생' 단계로 진입한 뜨락의 복수초는 또 다른 '복(復) 사이클'을 타기 시작했다. 장엄한 역사(役事)요, 희망의 여정이다.

이런 자연의 흐름을 인간사로 끌어와 해석한 게 바로 주역 '지뢰복' 괘다. 괘 모양을 다시 살펴보자.

주역 24번째 괘 '지뢰복(地雷復)'은 땅 아래에서 천둥과 번개가 꿈틀대고 있는 모습이다./ 바이두

주역 24번째 괘 '지뢰복(地雷復)'은 땅 아래에서 천둥과 번개가 꿈틀대고 있는 모습이다./ 바이두

가장 아래 효(爻)만 양(─)이고, 나머지 모두 음(--)이다. 음이 장악하고 있는 곳에 양이 수줍은 듯 발을 들여놓는 형상이다. 양효는 시간이 지나면서 음의 기세를 물리치고 위로 성장하게 될 터다. 복수초가 그렇듯, 기대와 희망의 여정이다.

'복(復)'의 결과는 긍정적이다. 후퇴가 아닌 발전이다. '지뢰복' 괘사(卦辭)가 '복은 형통하다(復, 亨)'로 시작하는 이유다. '지뢰복'은 그래서 '희망의 괘'로 통한다.

양(陽)과 음(陰)은 인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겠다.

군자 vs. 소인
정의 vs. 불의
정상 vs. 비정상
평온 vs. 혼란
….

'지뢰복' 괘의 양기(陽氣)는 아직 시작 단계다. 힘을 더 비축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세는 누구도 꺾을 수 없다. 소인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음의 세계에 발을 들인 군자는 하나하나 불의를 물리치고 정의를 세우게 될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공정과 정의를 회복하겠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시대를 끝내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되돌려 놓겠다고 강조한다. 음의 기운을 일소해 양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군왕의 효(爻)라는 제5효 효사(爻辭)는 이렇다.

敦復, 無悔
진지하고 성심을 다해 회복에 힘쓰니 뉘우침이 없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일 처리가 미숙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군왕이 스스로를 살피며 중용의 길을 걷는다면(中以自考)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라고 주역은 말한다. 취임을 앞둔 윤 당선인에게 던지는 충고 같다. 윤 당선인은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앞으로 나가겠다'고 화답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만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만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딱 5년 전 문재인 정부도 그랬다.

당시 정치 슬로건은 '적폐 청산'이었다. 겹겹이 쌓인 음기(적폐)를 몰아내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연설도 했다. 그러나 어쩌랴, 적폐 청산을 외치던 정권은 이제 스스로 적폐 취급을 당하는 처지다. 정권을 내줘야 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나. '지뢰복' 괘의 마지막 효사(爻辭)는 이렇게 답한다.

迷復, 凶, 有災眚
되돌아가는 길을 잃었으니 흉하다. 오직 재앙만 있을 뿐이다.

다들 시작할 때는 기세등등 '내가 소인(小人)들을 물리치겠다'라고 호언장담한다. 비리와 적폐를 몰아내고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약속과 멀어진다. 정의를 다시 세워달라는 희망을 저버린다.

이를 틈타 개혁에 반발하는 세력이 준동한다. 결과는 재앙이다. '眚(생)'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비롯된 재앙을 뜻한다. 초심을 잃고 헤매면 자멸의 길로 빠져들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 다섯 번째효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君, 凶.
군사를 움직여도 끝내 대패하니, 그 나라 임금이 흉하다.

음의 세력들은 힘을 결집한다. 명운을 걸고 양의 세력과 대적하지만 결국 패하고 만다. 도도하게 흐르는 '복(復)'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리더에게 부담만 줄 뿐이다. 정권 재창출 실패가 그 결과다.

'지뢰복' 괘의 양기(陽氣)는 아직 시작 단계다. 힘을 더 비축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세는 누구도 꺽을 수 없다. /바이두

'지뢰복' 괘의 양기(陽氣)는 아직 시작 단계다. 힘을 더 비축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세는 누구도 꺽을 수 없다. /바이두

곧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다. 정의와 상식을 회복하려는 '복(復)사이클'의 또 다른 시작이다. 다만 지난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지난 5년 무엇이 문제였던가. '지뢰복'의 바로 앞 '산지박(山地剝)' 괘를 통해 알아보자. 다음 편에 이어진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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