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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빈 모시려 공관 쓴다? 미 국무부, 아예 청사 안에 연회장 뒀다 [공관 대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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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13일 고위 공직자의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관사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무분별하게 운영했던 공관을 “없애고 또 합치라”고 조언한다. 대통령 관저, 총리 공관을 제외한 나머지 공관은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7월 김부겸 국무총리가 13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종교계 지도자들과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지난해 7월 김부겸 국무총리가 13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종교계 지도자들과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관이 왜 필요한지 검증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타당성을 평가하고, 기관별로 공관 운영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면 국민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며 “(공관 검증은) 국가 안보 등 민감한 부분이 아니라면 정보의 투명성을 위해서 시민단체와 전문가가 참여해 숙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두 곳에 있는 총리 공관 가운데 서울 공관은 없애고 정부세종청사가 있는 세종시 공관만 유지하는 게 효율적이다. 서울에서 집무를 보는 기관장도 대부분 서울에 자택을 두고 있어 공관 없이도 출퇴근이 가능하다. 공관 통폐합은 빈번하게 터져나오는 ‘관사 재테크’ 논란도 예방할 수 있는 해법이다.

외빈 접대를 이유로 각 부처 장관이 개별 공관을 유지하는 것도 폐기해야 할 구습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다수 선진국에서처럼 정부 차원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연회 공간을 만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이다. 서울 핵심 요지인 삼청동에 위치한 총리 서울 공관을 공동 연회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도 효율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예산 누수 비판을 받는 기존 공관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미국 블레어하우스, 중국 조어대 같은 국빈이 묵을 숙소를 정부 차원에서 건축하는 것도 검토 가능한 방안이다. 서울 삼청동에 있는 총리 공관,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을 활용하면 된다. 청와대에도 영빈관이 있긴 하지만 숙소로는 운영되지 않는다. 외국 국빈 환영을 위한 공식 행사, 대규모 회의나 연회 공간으로만 이용하고 있다.

이진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위치가 좋은 만큼 공적 행사가 없을 때는 국제회의ㆍ학술대회 등 민간 행사나 공원으로 시민에 개방하는 등 공간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주요 선진국은 외빈 접대를 위해 공용 공간을 두고 있고, 사용료를 청구한다는 조건 아래 민간에 개방도 하고 있다.

한남동 주요 공관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남동 주요 공관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본 내각부가 국빈 숙소로 관리하는 도쿄 아카사카(赤坂) 이궁(離宮)은 1899년 건축된 일본 궁전으로 일왕이 거주하던 공간이다. 전쟁 후 48년 일본 왕실 재산이 국가에 귀속됐고, 아카사카 이궁은 1968년부터 영빈관으로 사용됐다. 각국 인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총리, 중의원 의장, 참의원 의장 주관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정치단체 행사, 국제교류 행사 등 일반에도 특별 사용 허가를 내주는데, 3일 전체 공간 사용료로 2300만 엔(약 2억24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미국 국무부는 외빈 접대나 만찬 행사를 열 수 있는 ‘외교 리셉션 룸(Diplomatic Reception Rooms)’을 아예 청사 안에 설치해뒀다. 국가 보안, 외빈 접대 등을 이유로 청사와 동떨어진 개별 공간에 장관 거주 용도를 겸한 호화 공관을 두고 있는 한국 외교부 등과는 차이가 크다.

제대로 된 법 규정이 없는 탓에 공관 지출 예산이 얼마인지, 어떻게 운영되는지 ‘깜깜이’인 현실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다른 선진국처럼 법으로 엄격하게 공관 허용 범위와 운영 기준을 정하고 관련 정보공개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제언한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관 사용을 허용하거나 제한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공관의 필요성을 수요 기관이 입증하도록 행정부가 행정적 측면에서 방침을 정하면, 대법원장이나 국회의장 공관을 가진 사법부와 입법부도 이를 존중해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일률적으로 공관을 없애기보다는 이를 잘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진수 교수는 “일률적으로 면적을 제한하는 등 ‘좁혀라’ ‘아껴라’만 강조하는 식의 기준이 생기면 과거 정부청사의 냉방비를 아끼려다 공무원의 업무 의욕만 떨어뜨린 비효율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국민 세금으로 설립ㆍ운영되는 만큼 지금처럼 정부 고위 인사가 독점하는 걸 막는 데 무게를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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