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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수사권 뺏자"만 있고 대안 없다…OECD 27개국 수사권 보장 [Law談 스페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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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과 검찰 간 ‘강대강’ 충돌이 부각될 뿐 대안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에 남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마저 폐지할 경우 이를 어디로 어떻게 옮겨갈지, 검찰이 수사에서 아예 손을 뗄 경우 일반 서민이 받을 수 있는 고충을 어떻게 풀지에 대한 숙의 과정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건국 이래 70년간 이어온 형사사법 체계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인 만큼 속도 조절과 충분한 논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야당과 법조계는 물론 친(親) 여권 인사로부터도 나온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83차 정책의원총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검수완박' 입법 여부를 논의한다. 뉴스1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83차 정책의원총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검수완박' 입법 여부를 논의한다. 뉴스1

[검수완박①]“종합 로드맵은 나중에”…검찰 수사권 뺏은 뒤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2일 검수완박 강행 처리 시점을 논의하는 의원 총회 직전 여야 신임 원내 지도부의 회동 자리에서 “야당과 충분히 논의하겠지만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서 논의를 전개해 나갔으면 한다” 고 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입법 강행도 불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 원내대표는 “이게 졸속인지 아닌지는 국민과 역사가 평가할 일”이라며 “이후 저희가 ‘종합적 로드맵’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일 처리 순서가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려면, 그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도 마련해 함께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뺏은 이후 상황에 대해 현재 민주당은 대략적인 방향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TBS 라디오에서 “일단 검찰의 직접 수사를 분리해 내는 것부터 우선하고, 중장기적인 국가 수사 권능의 재편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경찰로 수사권이 가든 아니면 제3의 수사기관을 만들든 6대 범죄 수사에 재능이 있는 검사들이 ‘나는 기소 유지하고 재판·송무 업무를 하는 것보다 범죄 수사를 하는 것이 검사(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일을 바꾸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민주당이 발의한 검수완박 관련 법안은 기존 검찰에 공소제기 및 유지, 영장청구권만 부여하는 법안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하는 법안 등이 있는데 이들 법안을 어떻게 교통정리 할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민주당이 발의한 ‘검수완박’ 법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민주당이 발의한 ‘검수완박’ 법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천정배 “검수완박 졸속처리할 일 아냐”

경찰로 수사권이 넘어갈 경우 세워야 할 ‘경찰 비대화’에 대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경찰 조직 확대에 따른 우려는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때도 제기됐었는데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지난 11일 “검찰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급속히 추진된 수사권 조정은 현재 경찰 조직 비대화, 권력자에 대한 부실수사로 인한 국민적 논란 등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또 다른 중수청 설치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신설 수사기관에 대해 어떻게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지, 견제 장치는 어떻게 둘지와 같은 중요한 사안에 대한 논의도 없다. 이는 친여권 인사들도 지적하는 사안이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수완박의 방향은 옳지만 졸속처리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천 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검찰에는 수사 및 소추권이 과도하게 집중돼 소추 기관을 분리하여 권한을 분산시키고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적절한 방안‘이라면서도 “중대범죄수사청에 대하여도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고 권력 남용을 방지할 장치를 마련하며 수사역량을 확보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졸속으로 신설할 경우 중수청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지난해 1월 출발했지만, 수사력 부재와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키며 ‘무용론’‘폐지론’까지 나왔다. 공수처 출범에만 급급했던 현 정부와 여당이 공수처 운영을 뒷받침하는 관련 법을 허술하게 만들었고, 수사 역량 확보를 위한 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게 공수처 위상 추락의 주 요인으로 꼽힌다.

OECD 35개국 중 27개국은 검사 수사권 보장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몽땅 뺏는 것이‘세계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2017년 학술지 ‘형사사법의 신동향’에 발표한 논문(이른바 ‘수사와 기소 분리론’에 대한 비교법적 분석과 비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7개국이 검사의 수사권을 법으로 보장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8개 국가만 검찰 수사권이 없다. 영연방 국가들은 국가소추주의를 채택한 한국·프랑스·독일 등과 달리 ‘사인소추주의’(私人訴追主義: 개인인 피해 당사자가 형사소송을 제기하는 제도) 전통을 갖고 있어 한국과 평면 비교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 역시 독립 직후인 1789년 법원조직법에서 연방검찰 제도를 함께 도입했다.

반면 영국은 사인소추 전통에 수백년간 경찰이 수사·기소·공소유지를 전담하다가 최근인 1986년에야 왕립검찰청(CPS)이란 이름으로 검찰 제도를 도입해 공소유지를 전담하게 했다. 경찰의 무리한 기소 논란이 끊이지 않자 2003년 검찰에 기소여부에 대한 지휘를 포함한 수사지휘권을 부여했다. 한국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주요국 검찰 수사 및 수사지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국 검찰 수사 및 수사지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찰에 몰린 사건…“수사 적체로 진행이 안 돼”

현장 일선 변호사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이후 여러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보완하지 않은 채 검수완박 만을 밀어붙이고 있는 데 대해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 이후 형사 수사가 진행이 안 된다”며 “경찰이 대충 넘기고 검찰은 재수사, 보완수사로 요청해 돌리면서 수사 적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지난 1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경찰의 평균 사건 처리 시간은 수사권 조정 이후인 지난해 64.2일이다. 조정 이전인 2020년(55.6일)보다 8.6일 늘었다. 또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국 검찰청에서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사건 7만223건 중 3개월 내 수사가 이행된 사건은 56.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권 조정 이전까지는 송치 후 검찰이 수사를 지휘한 사건에 대한 수사는 3개월 이내에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었다. 검찰의 직접수사 제약 후 사건처리가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수사 조정권 이전에 있었던 서민의 ’두 번째 기회‘에 대한 박탈 문제도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꼽힌다. 장애인과 아동 피해자를 주로 공익 변호하는 김예은 변호사는 “경찰의 수사가 부족해도 검찰 단계에서 내용상 법리상 많이 보강되었기에 범죄자들이 기소되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라며 “지금은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 한 번 겨우 하고 아무 말 없이 몇 개월 묵히다가 증거를 내도 아무 소리 없다가 난데없이 불송치 결정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의 신청을 해도 검찰이 다시 경찰에 ‘보완 수사’ 명목으로 사건을 돌려보내며 사실상 ‘두 번째 수사’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에 대한 보완은커녕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 권한까지 모두 없애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이런 만큼 검수완박 시도에 앞서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혼란과 서민들의 불편을 추스르는 게 우선이라는 주문이 나온다. 김재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수사권의 섣부른 조정은 국가 전체 수사 능력을 떨어뜨리고 국민이 받아야 할 사법 서비스의 질도 약화시킨다는 뜻”이라며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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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법조인 이야기, 그리고 법조계 주요 현안을 알기 쉽고도 깊이 있게 다루는 스페셜 기사 시리즈입니다. 법조계 전문가들이 디지털 연재 칼럼을 통해 다양한 영역의 법 이야기를 알기 쉽게 전하는 ‘로담(Law談) 칼럼’, 사회 축소판 같은 법정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법온(法On)’과 함께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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