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5년차 'K21', 이젠 하품 나올 지경이라는 말 나온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부터 육군 제11 사단 기갑수색대대에서 낯선 장갑차 1대가 돌아다니고 있다. AS-21 레드백 보병전투차량이다.

한국이 호주 차기 장갑차 사업에 제시한 AS-21 레드백. 한화디펜스 유튜브 계정 캡처

한국이 호주 차기 장갑차 사업에 제시한 AS-21 레드백. 한화디펜스 유튜브 계정 캡처

이 장갑차는 호주 육군의 차기 장갑차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현지에서 시험평가를 마친 3대 중 1대가  ‘수출용 무기체계 군 시범운용 제도’에 따라 육군이 시범운용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이 수출 목적으로 개발한 무기체계를 일정 기간 시범적으로 운용해 실적을 뒷받침해 주는 제도다. 해외에 무기를 수출할 때 개발 국가의 군에서 운용한 실적이 중요한 평가요소이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레드백은 앞으로 두 달간 ▶도로ㆍ야지 주행 ▶장애물ㆍ야간 주행 ▶소부대 전투기술훈련 등을 검증받는다. 그런데 정부 일각에서 레드백을 아예 육군의 차기 보병전투차량으로 채택하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무슨 얘기인가.

'K21 대신 레드백 만들자'는 아이디어 불발

일단 결론부터. 레드백의 차기 보병전투차량 선정 아이디어는 불발됐다. 사연은 이렇다.

육군 제7 기동군단의 기계화 장비들. 동북아시아에서 최강의 기계화 부대로 꼽힌다. 육군

육군 제7 기동군단의 기계화 장비들. 동북아시아에서 최강의 기계화 부대로 꼽힌다. 육군

합동참모본부는 지난해 K21 보병전투차량 2차 양산을 결정했다. K21은 2007년 개발된 보병전투차량이다. 승무원 3명에 하차보병 9명이 타며, 시속 70㎞(최고 속도)로 달릴 수 있다. 또 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수상 도하(최고 속도 시속 6㎞)가 가능하다. 탑재한 40㎜ 기관포의 공격력도 상당하다.

육군은 당초 기계화부대의 기계화보병을 모두 K21에 태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이 줄면서 K21은 400여대만 만들게 됐다. 육군은 애를 태웠다. 제7 기동군단만큼은 K21을 다 갖추길 원했기 때문이다. 유사시 ‘북진(北進)용 원펀치’인 기동군단은 방어훈련 없이 공격훈련만 한다.

한국 육군의 주력 보병전투차량 K21. 한화디펜스

한국 육군의 주력 보병전투차량 K21. 한화디펜스

그래서 육군은 K21을 100여대 더 사들이는 2차 양산 사업을 반겼다. 이 정도면 기동군단은 K21로 완편할 수 있다. 그런데 K21 대신 레드백이 제안되자 육군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레드백을 선택하면 사업에 시간이 더 걸리고 생산가격이 더 비싸진다. 자칫 사업이 늦춰지거나 물량이 줄어들기 십상이다.

그래서 K21을 2차 양산 계획대로 생산하되 레드백을 기동군단 예하 사단의 기갑수색대대에 넣자는 대안이 나왔다. 물론 레드백의 부품을 가급적 많이 국산으로 바꾸고, 한국의 전장 환경에 맞게 고치는 작업이 필요하다.

레드백을 두 달간 굴려보는 11사단은 기동군단의 기동(옛 기계화보병)사단이다.

업그레이드 안 받아 고리타분해 진 K21

‘K21 대신 레드백’ 아이디어가 방산수출 진흥만 고려해 나온 게 아니다. K21은 첫 선을 뵌 2007년 이후 이렇다할 업그레이드를 받지 않으면서 ‘고리타분’해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FGM-148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조준하고 있다. 재블린과 같은 서방제 대전차 무기가 러시아군의 전차와 장갑차를 대량으로 격파하면서 기갑 장비의 전술과 운용을 확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FP=연합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FGM-148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조준하고 있다. 재블린과 같은 서방제 대전차 무기가 러시아군의 전차와 장갑차를 대량으로 격파하면서 기갑 장비의 전술과 운용을 확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FP=연합

K21은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성능은 수준급이다. 특히 40㎜ 기관포는 동급 최강이었다. 방어력도 괜찮은 편이고, 자체 수상 도하 기능은 히든카드로 꼽혔다.

그리고 이후 15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K21은 아직 2007년 모습 그대로다. K21이 안쓰럽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기갑전의 패러다임을 확 바꿨다. 이 전쟁의 교훈을 K21에 녹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전차·장갑차는 우크라이나군이 서방서 들여 온 대전차 무기에 꼼짝 못하고 있다. 대전차 무기에 대한 K21의 대응력을 키워야만 하는 시점이다.

자주 수상 도하를 하고 있는 K21. 국방일보

자주 수상 도하를 하고 있는 K21. 국방일보

박찬준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위원은 “이번엔 K21 2차 양산사업이 그대로 가더라도 K21의 전면적 업그레이드 사업을 가급적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군 당국도 K21의 업그레이드를 검토하고 있다. 현궁 대전차미사일을 추가로 무장하며, 소프트킬 능동방어체계(APS)를 다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킬은 대전차 미사일과 같은 대전차 무기를 재머(전파방해장치)나 복합 연막탄으로 교란해 빗나가도록 한다.

도하 때문에 다이어트한 방어력 더 보강해야

그러나 이것으론 부족하다. K21에서 가장 빨리 보강해야할 곳은 방어력이다. K21은 자체 수상 도하 기능을 위해 ‘다이어트’를 심하게 했다. 차체 무게가 25t이다. 다른 나라 보병전투차량과 비교하면 가벼운 편이다.

K21은 도하 훈련 할 때 침수 사고 발생을 우려해 모든 병력이 탑승하지 않는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걸 막기 위해 에어백 뒷쪽의 바람도 빼고 강을 건넌다. 국방TV 유튜브 계정 캡처

K21은 도하 훈련 할 때 침수 사고 발생을 우려해 모든 병력이 탑승하지 않는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걸 막기 위해 에어백 뒷쪽의 바람도 빼고 강을 건넌다. 국방TV 유튜브 계정 캡처

K21은 양쪽에 특수 에어백을 달았다. 강을 만나며 에어백에 공기를 붙어 넣어 물에 장갑차를 띄운다. 산을 끼고 흐르는 강이 많은 한국의 지형에 맞춰 육군이 요구한 성능이다.

유사시 기동군단이 올라갈 북한은 다리가 많지 않고, 전차나 장갑차의 무게도 견딜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도하장비 없이도 K21이 강을 건너야만 한다고 육군 지휘부가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K21의 자체 수상 도하 기능은 짐이 돼 버렸다. 육군에서 도하 훈련을 할 때 조종수만 K21을 탄다. 만일을 대비해서다. 또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에어백 뒤쪽에 바람을 뺀다. 훈련에서 이처럼 조심조심하는데, K21이 실전에선 적탄을 뚫고 자체 수상 도하를 할 수 있을까.

관련기사

게다가 육군은 기계화부대가 자주도하장비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독일제 M3를 한국서 생산하는 사업이다.

기존 도하장비는 공병이 물 위에서 띄워놓은 뒤 하나씩 조립해야 하는 리본교가 전부였다. 그래서 도하에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자주도하장비는 스스로 움직이는 다리다. 바로 기계화부대를 태워 강을 건너거나, 여러 대를 이어 다리를 만들 수 있다.

육군이 도입할 자주도하장비. 트럭처럼 움직이며, 장비를 태워 강을 건너거나, 여러 대를 이어 다리를 만들 수 있다. 한화디펜스

육군이 도입할 자주도하장비. 트럭처럼 움직이며, 장비를 태워 강을 건너거나, 여러 대를 이어 다리를 만들 수 있다. 한화디펜스

자주도하장비의 도입으로 K21의 자체 수상 도하 기능은 예전보다 더 절실해지지 않게 됐다. K21이 자체 수상 도하 기능을 빼고 레드백처럼 장갑을 더 두를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K21에 앞으로 아군과 적군의 위치를 알려주고, 전투의 상황을 파악하도록 해주는 전장정보관리체계(BMS)가 필요하다. 또 대응탄을 발사해 대전차 무기를 직접 파괴하는 하드킬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지휘관이 장갑차 내부에서 밖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비도 필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