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적화통일 야욕도 뭉갰다…특작부대 사살뒤 잊혀진 승자들[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입력 2022.02.13 05:00

업데이트 2022.02.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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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1월 2일 오전 3시 15분쯤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비무장지대(DMZ) 남쪽 800m 지점. 야간매복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미국 육군 제2 보병사단 23보병연대 1대대 A중대 8명은 잠시 쉬던 중이었다.

미국 육군 제2 보병사단 72전차연대 2대대 소속 임진스카우트가 비무장지대에서 수색정찰 작전을 펼치고 있다. US National Archives

미국 육군 제2 보병사단 72전차연대 2대대 소속 임진스카우트가 비무장지대에서 수색정찰 작전을 펼치고 있다. US National Archives

갑자기 수류탄이 날아온 뒤 자동소총이 난사됐다. 정체불명의 일당이 미군을 기습했다. 이들은 시체를 일일이 뒤집고 대검으로 찔렀다.

유일한 생존자인 데이비드 바비 일병은 온몸에 48개의 수류탄 파편이 박혔지만, 죽은 채 엎드려 간신히 살았다.

일당의 정체는 북한군 제17 정찰여단 소속 침투조였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공식문서에서 ‘제2의 한국전쟁(The Second Korea War)’으로 규정한 DMZ 무력분쟁의 첫 전투였다. 66년부터 69년까지 DMZ 일대를 중심으로 북한군 특작부대(특수부대) 침투조(흔히 ‘무장공비’라 불렀다)가 한국군과 미군을 상대로 저강도 전쟁·비정규전을 걸었다.

이 전쟁의 승자는 한ㆍ미였다. 북한이 승산이 없다고 특작부대 무력도발을 접었기 때문이었다.

'제2의 한국전쟁'에서 임진스카우트와 대간첩중대(CAC)의 활약상을 그린 『임진스카웃』. 정음서원

'제2의 한국전쟁'에서 임진스카우트와 대간첩중대(CAC)의 활약상을 그린 『임진스카웃』. 정음서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2의 한국전쟁 최전선에서 ‘임진스카우트(Imjin Scout)’란 정예부대가 한국을 지켰다. 그들의 활약상이 『임진스카웃: 주한미군 비무장지대 강철부대』(정음서원)를 통해 최근 드러났다. 임진스카우트 출신인 문관현 연합뉴스 기자가 밝혀낸 것이다.

미 육군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쟁

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맺어진 뒤 DMZ의 순찰활동은 다소 지루한 임무였다. 66년 11월 2일까지 DMZ에서 사망한 주한미군의 숫자는 8명이었다.

1967년 5월 21일 북한군 특작부대 침투조가 임진강 이북의 주한미군 기지인 캠프 월리에 폭발물을 묻어 미군 2명이 숨지고 미군과 카투사 19명이 다쳤다. 이처럼 67~69년 북한은 DMZ 일대에서 무력도발을 벌였다. campsabrekorea.com

1967년 5월 21일 북한군 특작부대 침투조가 임진강 이북의 주한미군 기지인 캠프 월리에 폭발물을 묻어 미군 2명이 숨지고 미군과 카투사 19명이 다쳤다. 이처럼 67~69년 북한은 DMZ 일대에서 무력도발을 벌였다. campsabrekorea.com

그러나 DMZ의 교전은 67년부터 부쩍 늘었다. 66년 정전협정 위반사례가 50건에서 67년 566건, 68년 761건으로 폭증했다. 91년까지 대북군사작전 도중 사망한 군인의 84%, 민간인의 58%가 67~69년 집중됐다.

이 시기 한국군 299명이 숨지고 559명이 다쳤다. 주한미군은 사망 75명, 부상 111명이었다. 북한군 역시 397명이 죽었고 12명이 생포됐다. 33명은 귀순했다. 또 무장간첩 2462명이 체포됐다.

미 육군은 DMZ 무력분쟁과 판문점 총격사건에 참가한 장병에게 전투보병휘장(CIB)를 달도록 했다. 이는 제2의 한국전쟁을 미군 당국이 지상 교전으로 인정했다는 뜻이다.

제2의 한국전쟁 시작은 북한 김일성 주석의 66년 10월 5일 제2차 노동당 대표자회의의 연설이었다.

김일성은 당시 “조선혁명의 전국적 승리는 남조선(한국)에서의 혁명 력량(역량)의 강화 여하에 크게 달려 있다. 남조선에서는 여러 가지 투쟁 형태와 방법을 옳게 배합하여 혁명운동을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제2의 한국전쟁 선전포고라 보는 해석이다

저자인 문관현 기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당시 북한이 등거리 외교를 펼치면서 중국ㆍ소련 양쪽으로부터 지원이 줄어들었다. 한국과 전면 전쟁을 벌일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특작부대의 저강도 전쟁·비정규전에 기대려고 했다. 이들을 한국에 침투해 지도층을 살해하고 특정 지역을 해방구로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혁명 역량을 키운 뒤 70년 적화통일을 이루겠다는 전략이었다.

지난해 10월 11일 북한에서 열린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에서 북한군 특작부대원이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군은 20만명의 특수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지난해 10월 11일 북한에서 열린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에서 북한군 특작부대원이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군은 20만명의 특수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또 당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높아지더라도 미국은 베트남과 한반도 두 곳에서 전쟁을 치르기 벅차기 때문에 확전을 자제했다. 한반도가 시끄러워지면 미국은 주한미군의 병력과 장비를 베트남으로 보낼 수 없었다. 월맹(북베트남)을 돕는 측면도 있었다.

한반도에 선을 두 번이나 그은 장군

당시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인 찰스 H. 본스틸 3세 대장은 대응방안을 찾았다. 김일성 주석의 최근 2년 연설문을 입수해 탐독한 그는 대(對) 침투게릴라 개념요구계획을 짰다.

1966~69년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을 맡은 찰스 H. 본스틸 3세 대장. 수술로 안대를 차고 다니지만 학구파로 유명했다. 위키피디아

1966~69년 유엔군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을 맡은 찰스 H. 본스틸 3세 대장. 수술로 안대를 차고 다니지만 학구파로 유명했다. 위키피디아

이 계획에 따르면 ①DMZ 순찰활동 강화 ②감시초소(GP) 설치 ③통합장벽시스템 마련 ④기동타격대 운영 등 4단계 방어망으로 북한군 특작부대를 방어할 수 있다.

③통합장벽시스템이 ‘155마일 철책선’이다. 분단의 상징인 철책선은 본스틸 사령관의 지시로 만들어진 산물이었다. 그 전까진 목책선이 DMZ의 남방한계선을 따라 세워졌다.

45년 8월 10일 대령이었던 그는 국무부에서 파견 온 딘 러스크와 함께 한반도 지도에서 38도선을 따라 연필로 선을 그었다. 소련군의 남진으로부터 미국이 서울과 인천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였다. 분단의 시작이었다.

고랑포 일대의 목책선. John Hayman

고랑포 일대의 목책선. John Hayman

1967년 대침투게릴라 개념요구계획에 따라 휴전선 남방한계선을 따라 세워진 철책선. US National Archives

1967년 대침투게릴라 개념요구계획에 따라 휴전선 남방한계선을 따라 세워진 철책선. US National Archives

본스틸 사령관은 56년 제24보병사단 부사단장으로 한국에서 근무했고, 66년 9월 유엔군사령관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큰 키에 깡마른 체격의 그는 수정체 제거 수술을 받아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다녔다.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를 졸업한 학구파였고, 참모 경험이 풍부했다.

본스틸 사령관이 부족한 실전 경험은 윌리엄 P. 야보로 중장이 채웠다. 당시 주한미군 1군단장인 그는 미 육군 공수부대 창설을 주도했고, 제2차 세계전의 격전을 거쳤다. ‘그린베레’라 불리는 미 육군 특수작전부대를 키우기도 했다.

그린베레를 쓴 윌리엄 P. 야보로 미국 육군 중장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그린베레를 쓴 윌리엄 P. 야보로 미국 육군 중장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본스틸 사령관과 야보로 군단장의 콤비 플레이로 북한군 특작부대 4단계 방어망은 착착 완성돼 갔다.

비틀스 존 레넌이 세상에 알린 임진스카우트

본스틸 사령관의 방어망 중 ④기동타격대의 핵심은 임진스카우트였다. 미 2사단은 65년 9월 자체적으로 임진스카우트를 만들었다. 예하 부대에서 정예 병력을 뽑아 3개월씩 임진강 이북의 DMZ 순찰 임무를 맡겼다.

미 2사단 임진스카우트를 양성한 고급전투훈련교육대(ACTA). 처음엔 경기도 파주의 캠프 싯먼에 자리를 잡았다. 2ida.org

미 2사단 임진스카우트를 양성한 고급전투훈련교육대(ACTA). 처음엔 경기도 파주의 캠프 싯먼에 자리를 잡았다. 2ida.org

미 2사단은 경기도 파주의 캠프 싯먼에 고급 전투훈련 훈련교육대(ACTA)을 세우고 임진스카우트를 양성했다. 임진스카우트는 22일 동안 강도 높은 전투 교육을 받은 뒤 DMZ에 투입됐다. ACTA는 매년 1800명 임진스카우트를 길러냈고, 72년 1월 동두천의 캠프 케이스로 옮겨졌다.

본스틸 사령관은 베트남 전쟁의 영웅 로저 돈런 미 육군 소령에게 ACTA를 맡겨 임진스카우트를 정예부대로 거듭나게 했다. 돈런 소령은 64년 7월 6일 베트콩 2개 대대를 맞아 진지를 지켜내 베트남 전쟁 참전군인 가운데 최초로 명예훈장을 받았다. 명예훈장은 미군 최고의 훈장이다.

베일에 가려진 임진스카우트는 세계적 스타인 존 레넌 때문에 세상에 드러났다. 레넌은 72년 8월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공연에서 임진스카우트와 미 2사단 패치를 단 군복을 입고 등장했다. 그는 당시 베트남 전쟁 반전 운동에 앞장섰는데, 임진스카우트 패치 군복을 즐겨 입었다.

레넌은 독일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미 육군 전역병으로부터 임진스카우트 패치 군복을 선물로 받았다. 전역병은 미 2사단에서 임진스카우트 임무를 수행한 피터 제임스 라인하트 병장이었다.

임진스카우트 패치. U.S. Militaria Forum

임진스카우트 패치. U.S. Militaria Forum

임진스카우트는 판문점 일대의 경비 임무를 한국 육군 제1 보병사단에 넘겨준 91년 10월 1일까지 운영됐다.

북한군 특작부대 5명을 사살한 9ㆍ19 대첩

임진스카우트가 DMZ에서 북한군 특작부대를 찾아다녔다면, 후방에선 대간첩중대(CAC)가 특작부대를 박살을 냈다. CAC는 미 2사단 직할부대로 67년 1월 31일 창설됐다.

미 2사단 소속 대간첩중대(CAC)가 트럭에서 출동대기를 하고 있다. 윤창식 CAC 예비역 병장

미 2사단 소속 대간첩중대(CAC)가 트럭에서 출동대기를 하고 있다. 윤창식 CAC 예비역 병장

그런데 간부는 한국군 육군에서 뽑았고, 병사는 전원 카투사였다. 소속은 미군이었지만, 사실상 한국군 부대인 셈이다. 당시 실세였던 윤필용 육군방첩대장이 CAC 창설과 운용을 주도했다.

대간첩중대(CAC)의 헬기 출동 훈련. 윤창식 CAC 예비역 병장

대간첩중대(CAC)의 헬기 출동 훈련. 윤창식 CAC 예비역 병장

육사 15기이자, 66년 8월 9일 베트남 두코 혈전의 주역인 이춘근 대위가 초대 중대장이었다. 두코 혈전에서 이 대위의 부대는 월맹군 189명을 사살하고, 6명을 생포했다. 이 전투로 이 대위는 미국 은성무공훈장, 한국 을지 무공훈장을 받았다.

대간첩중대(CAC)의 헬기 출동 훈련. 윤창식 CAC 예비역 병장

대간첩중대(CAC)의 헬기 출동 훈련. 윤창식 CAC 예비역 병장

CAC는 주한미군의 무장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신속대응부대였다. 일부 인원은 머리를 기르며 민간 복장을 하고 임진강 강변 마을에 하숙생으로 위장해 첩보를 수집했다. 매일 동네에서 쓰러진 풀잎이나 갯벌의 사람 발자국을 찾아내 보고했다.

대간첩중대(CAC)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첩보를 수집한 편의대. 윤창식 CAC 예비역 병장

대간첩중대(CAC)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첩보를 수집한 편의대. 윤창식 CAC 예비역 병장

CAC의 최대 업적은 68년 9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일대 임진강 갈대밭에서 북한군 특작부대를 섬멸한 전투다. 이 전투에서 CAC는 2명 전사, 7명 부상의 피해를 입었지만, 북한군 특작부대는 침투조 5명 중 4명을 전투에서 잃었고, 나머지 1명은 도주 중 사살됐다.

미 2사단 직할 대간첩중대(CAC) 부대기.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

미 2사단 직할 대간첩중대(CAC) 부대기.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

CAC는 갈대밭에 숨은 북한군 특작부대를 향해 대검을 M14 소총에 단 뒤 착검돌격까지 감행했다. 주한미군은 CAC에 공로 표창을 하며 임진스카우트 배지를 수여했다. 이 전투에서 숨진 김상훈ㆍ박만득 병장은 전역을 앞뒀지만, 전우와 함께 싸우겠다며 출전했다.

1968년 9월 20일 러랜드 조지 캐그윈 미 2사단장(중장)이 대간첩중대(CAC) 장병을 시상하고 있다. 미 2사단 공보실

1968년 9월 20일 러랜드 조지 캐그윈 미 2사단장(중장)이 대간첩중대(CAC) 장병을 시상하고 있다. 미 2사단 공보실

CAC는 71년 주한미군의 제7 보병사단이 철수한 뒤 미 2사단이 파주에서 동두천으로 이동한 뒤 72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기동타격대에 임무를 넘겼다. 한국군 위주의 부대였지만, CAC는 주한미군 임진스카우트의 일원으로 소명을 다 했다는 평가다.

잊힌 승자 임진스카우트, 띄워진 패자 북한군 

본스틸 사령관은 4단계 방어망이 제대로 가동하려면 한국군의 저강도 전쟁ㆍ비정규전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68년 청와대 기습 작전과 울진ㆍ삼척 사건 등 북한군 특작부대를 막아낸 배경엔 4단계 방어망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한국군과 북한군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JSA 전우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한국군과 북한군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JSA 전우회

한ㆍ미는 임진스카우트와 CAC로 제2의 한국전쟁에서 북한군 특작부대에 맞섰다. DMZ는 69년 10월 18일 북한군 특작부대가 미 7사단 트럭을 매복공격한 뒤론 잠잠해졌다. 북한은 70년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렸다. 한ㆍ미의 판정승이었다.

문관현 기자는 “한국과 미국이 한국전쟁 전면전에 이어 임진강 일대에서 벌어진 저강도 분쟁에서 혈맹과 전우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임진스카우트는 베트남 전쟁에 밀려 미국에서 활약상이 가려졌다. 또 CAC는 주한미군 소속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한국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북한군 침투조가 통과한 휴전선 철조망 주변에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김신조 일당의 침투 루트를 관광자원으로 만들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김신조 일당이 은신했던 장소에 조형물을 설치했다. 북한군 띄우기 작업에 골몰하는 인상을 던져준다. 누구를 추모하며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엄중히 묻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임진스카우트와 CAC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방치된 전투현장을 복원해 역사의 공간으로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저자의 경고가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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