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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 “푸틴 침공 배경엔 배타적 민족주의 세력 확장 있다”

중앙일보

입력

“우리 앞엔 두 개의 미래가 놓여있다. 푸틴의 야심을 막고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을 되살리거나, 혹은 편협한 민족주의로 무장하고 서로를 공격했던 20세기 초로 돌아가는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EPA=연합뉴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EPA=연합뉴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이달 초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AF) 기고를 통해 알린 국제사회의 현주소다. 그는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난 십수 년의 자유주의 쇠퇴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선 민족‧인종‧종교 등 배타적 요소가 아닌 자유주의를 통해 뭉친 국가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지난 1989년 발간된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을 통해 냉전 시대의 종식과 자유민주주의의 영구적인 승리를 선언했던 석학이다.

기고 글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 외에도 미국·인도·터키·헝가리 등 많은 국가에서 지난 16년 동안 시민의 자유가 꾸준히 하락하면서(프리덤하우스 기준) 세계 각지에선 배타성을 토대로 한 민족주의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후쿠야마 교수는 “이런 민족주의자들은 그들만이 국가의 진정한 수호자이며, 반대 세력은 국민의 적으로 묘사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내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그는 “우크라이나엔 국가의 안정적인 전통이 없었다. 1991년 독립을 선언한 우크라이나는 외국 모델을 모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내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그는 “우크라이나엔 국가의 안정적인 전통이 없었다. 1991년 독립을 선언한 우크라이나는 외국 모델을 모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후쿠야마 교수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도 이런 민족주의 발현이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현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의해, 더 정확하게는 볼셰비키에 의해 1917년 혁명 직후 시작된 나라”라며 “우크라이나는 항상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에서 왜 러시아는 고전하고 있는 것일까. 후쿠야마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엔 독립된 정체성이 없어 침공만 하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부패한 독재자 치하에서 살기를 거부했고, 자유주의 국가에서 살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때문에 후쿠야마 교수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가 군사‧경제적으로 실패하면 세계가 푸틴과 같은 인물이 국가를 재앙으로 이끈다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 해도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국가는 세계 정치에서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게 후쿠야마 교수의 진단이다.

자유주의는 관용과 타협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지만, 종교 공동체처럼 강한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배타적 요소를 통한 정치를 추구하는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여전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 등을 통해 백인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힌두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마자르족의 나라를 표방하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을 예로 들었다.

지난 1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정치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라는 선거구호가 적힌 빨간 색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지난 1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정치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라는 선거구호가 적힌 빨간 색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들은 푸틴의 권위주의적 방식을 모방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미국도 이런(민족주의의) 추세에서 면제되진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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