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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 김경희특파원 참관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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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뜨거운 가슴으로 만난 「한핏줄 음악」/남북 문화교류 “물꼬”… 상호이해가 큰 성과/전통문화유산 공동발굴ㆍ보존 필요성 절감/북의 수준급 무대장치기술 등 배울 점 많아
『우리의 소원』 합창과 『조국통일』 구호 속에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가 23일 폐막됐다. 미국ㆍ중국ㆍ소련ㆍ일본 등 각지역 해외동포 음악가들을 포함한 15개 단체 음악인 5백여 명이 한데 모여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화합을 구가한 이 통일음악잔치는 향후 남북간 문화교류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하겠다.
우선 이 음악회는 한핏줄을 나눈 민족이 음악을 통해 뜨거운 가슴으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통일의지와 열망을 내외에 널리 알렸다. 또 반세기에 가까운 민족분단이 휴전선 양켠에 얼마나 큰 차이와 변모를 낳았는지 확인시켰으며,서로 좀더 알고 이해했더라면 지금까지와 같은 적대감정 따위가 이토록 심화되지는 않았으리란 사실을 여러 모로 일깨워주기도 했다.
이 음악회 준비위원장인 재독작곡가 윤이상 씨나 북측 준비위원장인 조선음악가동맹 김원균 위원장,서울전통음악연주단 황병기 단장 등도 모두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윤씨는 23일 오전 한국기자 3명과 함께한 자리에서 『민족재결합을 위한 화해와 민족동질성 재발견의 계기가 됐다』며 『지난 45년간 서로 떨어져 있었으나 같고,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돼 장차 협력하며 상호보완할 수 있는 첫단계에 오르게 됐다』고 이 음악회의 성과에 만족했다.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의 황 단장도 이날 오후 2ㆍ8문화회관에서의 폐막식에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뜨거운 동포애는 어떤 장벽이라도 끝내 무너뜨리게 되어 있는만큼 만남을 통해 상호이해의 길로 나아갈 돌파구를 마련한 이 음악회는 민족사에 찬연히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번 음악회가 열린 모란봉극장과 봉화예술극장 및 2ㆍ8문화회관의 객석을 연일 꽉 메운 북한 청중들은 북한에서 차츰 그 자취가 희미해져가고 있는 우리 고유 전통음악의 원래 모습을 접하며 어떤 의미로든 깊은 인상을 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전세계 청중들을 예외없이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어온 김덕수패 사물놀이가 한바탕 신명을 올려도 처음에는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던 청중들이 차츰 탄성을 지르며 중간박수까지 터뜨리는 등 다소 낯설어하다가 이내 그 울림도 우리 것임을 가슴으로 느끼고 화답한 것이 바로 그 좋은 예다.
또 남북 음악인들이 똑같은 민요를 부르더라도 이미 크게 달라진 창법의 차이로 전혀 다른 맛을 내는가 하면 오랫동안 함께 누려온 민요가락의 흥취에 결국은 모두 한겨레임을 새삼 실감하는 등 차이점과 동질성을 거듭 확인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런가하면 개인 연주자들의 특성과 기량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의 공연과는 달리 거의가 대형화된 북한의 집체예술은 서울전통음악연주단원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했다.
많은 인원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치르는 등장ㆍ퇴장,극적 구성력,치밀성,무대장치 및 조명기술 등은 배울 만한 것들이었다. 물론 북한의 공연물중 상당수가 혁명이념ㆍ주체사상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어서 이 음악회에 참가한 해외동포 및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음악인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작품의 주제나 소재를 별도로 친다면 무대를 만들어내는 기량면에서 한국 문화예술인들이 참고할 점이 많았다.
한편 이 음악회는 앞으로 계속돼야 할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윤이상 씨가 앞으로의 연속 교류공연 구상을 밝힌 것이나 북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전금철 부위원장이 『물론 문화교류는 더욱 확대돼야 하지만 고위회담에서 제기된 정치ㆍ군사문제들과 함께 교류협력 문제가 타결되기 전까지는 경우에 따라 특례적으로만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정도로는 안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임으로써 드물게나마 계속적인 남북간 문화교류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지금까지의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범민족통일음악회 준비위는 서울쪽의 입장을 파격적으로 존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음악회 기간 동안 국기를 사용하는 대신 한반도를 음표가 둘러싼 대회기만 사용하고,참가자들이 목에 걸고 다니는 ID카드에도 지역명을 「남측」 「북측」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이 카드의 뒷면에는 「조선은 하나다」라는 구호가 적혀 있는가 하면,민족통일대행진(23일) 참가자들이 어깨에 두르도록 한 어깨띠에는 「조선은 하나다」와 「조국은 하나다」라는 말이 각각 적혀 있어서 한꺼번에 완전히 달라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범민족통일음악회 준비위측은 또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을 이 통일음악축제의 「가장 귀중한 손님」으로 맞아들여 모든 행사 때마다 앞자리를 권하고 동행한 3명의 신문기자를 위해 2대의 벤츠승용차를 배정하는 등 각별한 배려를 보였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많은 음악인들이 우리의 전통적 음악 문화유산들을 공동으로 발굴ㆍ수집ㆍ정리 및 연구ㆍ보존해야 한다는 과제도 부각됐다. 또 이 음악회 기간중 평양 피바다가 극단의 작가 이성철 씨가 지은 가사에다 서울전통음악연주단 황 단장이 조선음악가동맹 성동춘 부위원장과 함께 곡을 붙인 『통일의 길』이 창작됐듯이,앞으로 남북과 해외동포 음악인들이 민족대단결과 통일을 위한 음악을 만드는 데도 앞장서야 한다는 폐막식 결의사항도 모든 음악인들이 함께 떠맡아야 할 공동의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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