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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 비어도 재난지원금 뿌린다…"매표 행위"vs"경제마중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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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13일 서울의 한 먹자골목 내 폐업한 음식점에 임대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달 13일 서울의 한 먹자골목 내 폐업한 음식점에 임대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서울 금천구는 4일 ‘건강돌봄 재난지원금’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소득·재산 기준과 관련 없이 금천구민이면 누구나 5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올해 2월 25일 현재 금천구에 주소만 두고 있으면 대상이 된다. 유성훈 구청장은 “코로나19로 지친 구민의 건강돌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정자립도 25% 금천구, 재난지원금 지급 

하지만 금천구가 건강돌봄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120억 원의 예산을 세워둔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자체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재정자립도가 25.1% 수준일 정도로 재정이 열악해서다.

서울 25개 자치구 평균 재정자립도(30.2%)를 밑도는 금천구의 한해 살림 규모는 6226억 원이다. 전체 예산 중 이번에 지급할 재난지원금이 2%에 달하는 규모로 도로과 예산(93억 원)보다 많다. 앞서 지난 2월 18일 금천구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도 이번 재난지원금 편성과 관련한 반대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지자체들이 재난지원금을 쏟아내는 것을 두고 찬반 양론이 일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움츠러든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선거 때 표심을 얻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서다. 재정여건이 열악한 일부 지자체들 사이에서는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예산이 도를 넘었다”는 말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50조 원 규모 소상공인 손실보상 공약과 중복논란도 있다.

2022년 재난지원금 지급 주요 기초지자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22년 재난지원금 지급 주요 기초지자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소상공인 100만 원씩 지원하는 상주시 

경북 상주는 지난달부터 300억 원 규모의 ‘상주형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다. 일반 시민은 20만 원, 소상공인은 100만 원씩을 지급하며, 종교시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상주는 인구 9만5800명의 소규모 지자체다. 이를 두고 상주군 안팎에서는 “재정자립도가 10%가 안되는 상주군이 선거를 앞두고 돈을 푼다”는 말이 나온다.

앞서 상주군과 인접한 군위군도 군민 한 명당 30만 원씩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했다. 선불카드 형태로 지급된 지원금 명분은 민생안정과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다.

경남에서는 밀양시(1인당 10만 원)와 양산시(1인당 5만 원)가, 부산 중구청(1인당 10만 원)과 남구청(1인당 10만 원) 등이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거나 준비 중이다.

선별에서 보편지원으로 늘린 구리시 

선거를 앞두고 지원금을 세우는 추세는 수도권 지자체도 유사하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 중 10여곳이 지원금을 지급한다. 이중 구리시는 소상공인을 선별 지원하다가 최근 시민 한 명당 6만 원을 주는 보편지원으로 대상을 늘렸다.

광역자치단체와 손잡고 재난지원금을 주는 곳도 있다. 대전시는 5개 자치구와 지난 2월 현금·금융 지원, 소비촉진 등에 총 2900억 원을 투입하는 ‘대전형 8차 재난지원금’ 계획을 발표했다. 재원은 시와 구가 7대 3 비율로 분담한다.

충남도와 일선 시·군들도 ‘충남형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열에 합류했다. 예산은 657억 원 규모다. 15개 시·군 중 대부분은 충남형 지원금과 5대 5로 매칭 지원하지만, 자체 예산을 추가하거나 전 주민에게 일정액을 지원하는 곳도 많다.

재난지원금 효과는 의문

이렇게 뿌려진 재난지원금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정책포럼의 ‘1차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2020년 12월)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인해 증가한 신용(체크)카드 매출액은 4조 원으로 집계됐다. 투입된 재난지원금 재원의 26.2~36.1% 수준이다.

업종별로는 코로나19의 타격을 직접 받는 음식업, 대면서비스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마트·편의점 등 필수재 업종보다 매출 증대 효과가 작게 나타났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지원금보다는 특정 업종을 선별지원하는 게 피해복구 효과가 크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KDI 연구진은 “피해업종 종사자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지원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반면,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정부 지원금의 소비 효과가 그리 낮지 않다”는 연구도 나왔다.

서대문 재난지원금 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청 앞에서 '서대문구 재난지원금 지급 촉구 3000명 주민 서명운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주민들의 고통이 크다"며 "서대문구의 순세계잉여금을 활용해 모든 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뉴스1

서대문 재난지원금 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청 앞에서 '서대문구 재난지원금 지급 촉구 3000명 주민 서명운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주민들의 고통이 크다"며 "서대문구의 순세계잉여금을 활용해 모든 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뉴스1

선거 전 현금지급 금지 법안 발의됐지만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의 현금 지급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2월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선거일 90일 전부터 재난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현금성 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잠들어 있다.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는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 논란도 가열되는 분위기다. 서울 서대문재난지원금운동본부는 지난달 30일 서대문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주민에게 30만 원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재난지원금의 효과 여부를 떠나 자칫 지원금 지급자체가 매표행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원금은 물론이고 아예 임기 말 재정지출 전반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육동일 충남대(자치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오는 6월 1일 선거결과에 따라 자치단체장이 바뀔 수도 있는 만큼 임기 말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은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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