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택 전 대표팀감독이 본 통일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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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개인기와 체력의 허리 싸움
한마디로 이길 경기를 이긴 것이다. 한국은 이날 볼을 소유한 시간(키핑타임)이나 찬스면에서 북한보다 월등했다.
후반에 느슨한 경기를 펼치다 여러 차례 반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개인기량이나 경기운영면에서 단순한 경기를 펼치는 북한에 비해 분명 한발 앞선 축구를 구사했다.
북한은 이날 승리를 위해 초반부터 젊은 선수들을 대폭 기용,체력 위주의 정공법으로 나왔으나 한국도 이에 맞서 상대가 볼을 소유했을 때 적극적인 프레싱을 가하는 압박축구로 북한의 공격 리듬을 성공적으로 차단했다.
한국의 이날 승리는 기동력을 이용한 측면돌파에서 얻어졌다고 볼 수 있다.
초반부터 김주성 고정운의 좌우날개가 북한 진영의 양측 모서리를 수시로 파고들며 센터링과 측면돌파로 수비진을 교란시켰고 발빠른 서정원과 헤딩력이 좋은 황선홍의 활기있는 중앙공격도 좋았다.
또 첫골을 얻은 후에도 한국은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속공과 지공을 적절히 배합,당황의 빛이 역력한 북한선수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한국은 후반 들어 체력열세가 현저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기동력이 둔화,여러 번 불안한 상황을 맞기도 했으나 정용환 박경훈을 중심으로 한 노장들의 투혼과 노련한 경기운영,GK 김풍주의 선방으로 리드를 지켰다.
김주성은 이날도 두 명의 수비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밀착수비를 피해가며 잦은 위치이동으로 미드필더와 상대 수비진을 교란시켰으며 적절한 볼 배급과 돌파력으로 승리의 1등공신이 됐다.
북한은 방광철·탁영빈·김경일 등 전형적인 수비형 MF들을 기용,수비는 강화시켰으나 미드필드 장악에 실패,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북한은 또 지난 7월부터 계속된 경기와 원정경기 부담으로 피로의 기색이 역력,평양경기 때의 활기넘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이 아쉬운 것은 볼을 갖고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면서도 추가득점엔 실패한 것.
단순히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한 「키핑」이 아니라 전술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득점하기 위한 「키핑」이 아쉬웠다.
또 수비와 공격진간의 간격이 너무 넓게 포진,수비·공격의 가담시간이 길어져 속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흠이라면 흠이다.
이날 경기는 양측이 피로와 컨디션 부족·남북경기라는 부담감 등으로 내용있는 경기는 되지 못했으나 통일의 열기를 담은 축제라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한양대 교수·전 대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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