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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이 우릴 폭격…진짜 X같다" 러 장교 대화 도청했더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의 그래드(GRAD) 다연장포가 우리 부대를 쐈다. 진짜 X같은 상황이다.”

러시아의 그래드 다중로켓 시스템. 연합뉴스

러시아의 그래드 다중로켓 시스템.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이자 격전지인 미콜라이우에서 한 부대 장교가 상관과 통신하며 항의한 내용이다. 이 장교의 소속은 러시아군으로, 아군이 쏜 로켓포에 격분해 상관과 교신 중 욕설까지 내뱉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 텔레그래프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도청한 러시아군의 통신 내용에 대해 보도했다. 일부 러시아 군대는 휴대전화와 아날로그 워키토키로 소통하고 있어, 이들간의 대화 내용을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물론 라디오 관련 동호회 회원같은 아마추어들도 손쉽게 도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분20초 분량의 도청 파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상관과 우크라이나에 파병된 러시아군 장교간의 대화가 담겼다. 상관이 “남자답게 행동하라(Man Up)”고 지시하자 장교는 자신의 부대에 투하된 러시아 미사일에 대한 항의를 쏟아냈다. 이어 “우리 종대는 괜찮지만, 다른 종대가 그래드 다연장포 폭격에 맞아 파괴됐다”고 말했다.

러시아군 장교는 모스크바에 미콜라이우의 비참한 상황을 낱낱이 보고했다. 그의 부대는 지난 5일간 죽은 병사의 시신을 송환할 수 없어 이를 들고 이동해야 했다. 또 전투원의 절반 이상이 동상에 걸렸지만 남은 의약품이라곤 붕대뿐이라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태다. 병사들이 머물 천막도 하나뿐이어서, 이곳에 들어갈 수 없는 병사들은 참호를 파고 그 안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된 러시아 탱크.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된 러시아 탱크. 연합뉴스

해당 장교는 “이곳(우크라이나) 상황은 정말 잔인하고 무지막지했던 1990년대 체첸에서의 군사작전보다 훨씬 나쁘다”면서 “이 추위에 천막·스토브도 없고,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오는데 방탄복조차 없다”고 한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 달 만에 러시아군이 최대 1만5000명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에 대해 텔레그래프는 “전쟁 4주차에 접어들면서 러시아군이 직면한 가혹한 상황을 확인시켜주는 내용”이라면서 “제대로 된 방한 장비조차 없는 러시아군의 모습을 통해 이번 전쟁이 전혀 준비없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 등에는 우크라이나군의 방한화를 빼앗아 신고 다니는 러시아군의 사진이 다수 게재됐다.

우크라이나군 부츠를 신고다니는 러시아 군인의 모습. [트위터 캡처]

우크라이나군 부츠를 신고다니는 러시아 군인의 모습. [트위터 캡처]

한편, 미콜라이우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자국 군대와 함께 러시아군에 맞서 격전을 벌이고 있다. 미콜라이우는 우크라이나 해군본부가 있는 남서부 항구도시 오데사를 점령하기 위해 크림반도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려는 러시아군의 길목을 차단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미콜라이우의 강력한 저항으로 러시아군이 진군하지 못하면서, 오데사는 다른 남부 해안도시인 마리우폴·헤르손과 달리 러시아군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미콜라이우에서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던 건물 앞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콜라이우에서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던 건물 앞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CNN에 따르면 최근 미콜라이우의 기온이 오르면서 쌓여있던 눈이 녹자, 눈 속에 파묻혀 방치됐던 러시아군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다. 미콜라이우의 비탈리 킴 주지사는 “러시아군은 후퇴했고 동료들의 검게 그을린 시체는 남겨뒀다”면서 “러시아군은 시신을 수거해가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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