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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꺼져도 긴 후유증…사람 건강 해치고 성층권 오존층도 파괴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생한 산불로 주택이 불타는 모습.[AFP]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생한 산불로 주택이 불타는 모습.[AFP]

최근 동해안에서 발생한 산불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넓은 면적의 산림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2만4940㏊이니 서울시 면적의 41%에 해당합니다.
산불이 나면 산림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산불로 울진·삼척에서만 주택 319채와 농축산 시설 139개소, 공장·창고 154개소 등 총 643개 시설이 불에 탔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뿐만 아니라 산불은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깁니다.
대표적인 게 사람의 건강 피해입니다. 산불 연기 속에는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물질이 다량 들어있고, 여기에 노출된 사람은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습니다.

산불 연기로 연간 3만 명 이상 조기사망

우주 정거장에서 본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 지난 2018년 8월 독일 우주비행사이자 지구물리학자인 알렉산더 게르스트가 촬영했다. [AFP=연합뉴스]

우주 정거장에서 본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 지난 2018년 8월 독일 우주비행사이자 지구물리학자인 알렉산더 게르스트가 촬영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9월 '랜싯 지구 보건(Lancet Planetary Health)'이란 국제 저널에 실린 중국 등 국제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산불로 인한 초미세먼지 오염 탓에 전 세계 43개국 749개 도시에서 매년 3만3510명이 조기 사망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연구팀은 한국에서도 36개 도시에서 매년 773명이 산불에서 발생한 초미세먼지로 인해 조기 사망한다고 분석했습니다. 2000~21016년 자료를 바탕으로 했는데, 전체 사망자의 0.53%를 차지합니다.

연구팀은 "산불에서 배출되는 초미세먼지는 1000㎞나 되는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고, 산불 시즌이 끝난 다음에도 대기 질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연구팀은 이달 초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산불에서 발생한 대기 오염물질이 10일 후까지도 관측된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팀은 오리건 주 배츨러 산 정상(해발 2764m)에 위치한 관측소에서 대기 오염을 지속해서 관측했습니다.

포도주 맛도 변하게 만드는 산불

캘리포니아 폭염 산불을 진화하는 소방대원 모습. [EPA]

캘리포니아 폭염 산불을 진화하는 소방대원 모습. [EPA]

산불 대기 오염물질은 사람 건강뿐만 아니라 포도주 맛에도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이달 초 '천연 산물 저널(Journal of Natural Products)'에 발표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산타크루즈 캠퍼스 필 크루스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산불로 인한 연기의 휘발성 화합물은 포도에 흡수되고, 이런 영향을 받은 포도로 만든 와인에서는 '연기 오염(smoke taint)'으로 알려진 불쾌한 맛이 날 수 있습니다.

산불 연기 속의 휘발성 페놀이 포도 껍질을 통과해 포도에 축적되고, 당과 결합해 페놀성 디글리코사이드(phenolic diglycosides)라고 하는 비휘발성 화합물을 형성합니다. 이 물질이 포도주병 속에 들어있다가 포도주를 음미할 때 나쁜 냄새를 느끼도록 합니다.

연기 속 염소 화합물이 오존층 파괴

산불로 인한 성층권 오존의 감소. 왼쪽 그래프에서 붉게 표시된 것이 2020년의 수치인데, 고도 20km를 중심으로 다른 해에 비해 오존 농도가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오른쪽 그래프는 고도별로 평년과 2020년의 오존농도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중간층 외에 고도가 낮은 층과 고도가 높은 층은 평년보다 2020년의 오존 농도가 더 높지만, 이 고도에서는 오존 농도가 원래 낮은 곳이다. [Science, 2022]

산불로 인한 성층권 오존의 감소. 왼쪽 그래프에서 붉게 표시된 것이 2020년의 수치인데, 고도 20km를 중심으로 다른 해에 비해 오존 농도가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오른쪽 그래프는 고도별로 평년과 2020년의 오존농도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중간층 외에 고도가 낮은 층과 고도가 높은 층은 평년보다 2020년의 오존 농도가 더 높지만, 이 고도에서는 오존 농도가 원래 낮은 곳이다. [Science, 2022]

산불 대기 오염물질은 태양 자외선을 막아 지구 생태계의 보호막으로 불리는 성층권 오존층까지도 파괴할 수 있습니다.

18일(현지 시각)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캐나다 워털루 대학과 미국 올드도미니언대학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성층권 내 중간 고도에서 오존 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해 2020년 12월까지 낮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2020년의 오존 감소는 다른 해와는 뚜렷이 구분됐는데, 이는 성층권에 도달한 산불 연기 속에는 차아염소산(HOCl) 등 오존 파괴 가능성이 있는 염소 함유 화합물이 다량 들어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입니다.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사우스햄튼에서 목격된 거대한 화염 토네이도. [로이터]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사우스햄튼에서 목격된 거대한 화염 토네이도. [로이터]

호주에서는 2019~2020년 거대한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호주 연구팀이 2020년 8월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2019~2020년 호주 산불 피해 면적은 인공위성 분석으로 3038만㏊, 호주 정부 집계로는 3980만㏊이나 됩니다.

3980만㏊면 39만8000㎢이고, 서울시의 658배입니다. 이번 동해안 산불의 1600배에 해당합니다.

산불이 났던 그때, 해가 바뀌는 그 무렵 남반구인 호주는 여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호주의 여름을 '검은 여름'이라고 부릅니다.

산불이 지구온난화 부추겨 

소방헬기가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서 발생한 산불을 잡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소방헬기가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서 발생한 산불을 잡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산불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9월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네덜란드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2019~2020년 호주 산불 당시 대기 중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7억1500만 톤에 이릅니다. 한국의 2018년 한 해 총배출량 7억2760만 톤과 맞먹는 양입니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2021년 7~8월에만 전 세계 숲이 타면서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25억 톤이 넘습니다.
특히 시베리아 등 고위도 지방에서 산불이 발생하면 영구 동토층이 녹아내리고, 그 속에 있던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 등 온실가스가 대량 배출이 됩니다.

산불에서 발생한 먼지와 그을음이 고산지대와 극지방 빙하에 내리면 태양 빛의 반사율을 떨어뜨리고, 빙하가 더 쉽게 녹아내리게 합니다.
당장 18일(현지 시각)에도 '하나의 지구(One Earth)' 저널에 산불에서 배출된 갈색 탄소(Brown Carbon)가 북극의 온난화를 부추긴다는 중국·독일 등 국제 연구팀의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석탄·석유를 태울 때 나오는 검댕이블랙 카본, 즉 검은 탄소라고 하면 숲이 탈 때 나오는 연기 속에 들어있는 잔재물이 갈색 탄소입니다.

2017년 북극해의 탐사로 확인된 갈색 탄소 분포. 365나노미터(nm)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정도에 따라 갈색 탄소의 양을 파악하게 된다. 알래스카 인근 북극해에서 갈색 탄소 농도가 높고, 그란란드 남쪽은 농도가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One Earth, 2022]

2017년 북극해의 탐사로 확인된 갈색 탄소 분포. 365나노미터(nm)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정도에 따라 갈색 탄소의 양을 파악하게 된다. 알래스카 인근 북극해에서 갈색 탄소 농도가 높고, 그란란드 남쪽은 농도가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One Earth, 2022]

연구팀은 지난 2017년 7~9월 북극 바다를 돌면서 갈색 탄소가 태양에너지를 얼마나 잘 흡수하는지 파악을 했습니다. 북극 지역에서 갈색 탄소는 블랙 카본이 흡수하는 에너지의 30%까지 흡수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과거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갈색 탄소는 특히 산불이 잦은 여름철에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북극의 온난화를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산불 발생을 증가시키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혹은 악순환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해양 식물플랑크톤 성장 촉진하기도

2019~2020년 호주 산불과 해양 식물플랑크톤 대발생. 왼쪽 컬럼은 산불 연기의 확산을 나타내는 지도이고, 중간 컬럼은 엽록소 농도, 즉 식물플랑크톤의 성장을 나타낸다. 오른쪽 컬럼은 오염물질인 블랙카본의 침적량을 나타낸다. [Nature, 2021]

2019~2020년 호주 산불과 해양 식물플랑크톤 대발생. 왼쪽 컬럼은 산불 연기의 확산을 나타내는 지도이고, 중간 컬럼은 엽록소 농도, 즉 식물플랑크톤의 성장을 나타낸다. 오른쪽 컬럼은 오염물질인 블랙카본의 침적량을 나타낸다. [Nature, 2021]

산불에서 나온 연기는 해양에서 조류 대발생(algal blooming)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미국 듀크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9월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9년 12월부터 2020년 3월 사이 산불 연기가 불어간 호주 남서쪽 해양에서 평상시와는 다른 식물플랑크톤 대발생이 광범위하게 발생했습니다.

산불 때 발생한 에어로졸, 즉 연기 속에는 철 성분이 들어있었고, 이것이 비료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철 성분이 바닷물에 영양분으로 작용, 해양 미세 조류의 성장을 촉진했습니다.
이 경우 조류, 즉 식물플랑크톤이 자라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게 되는데, 산불로 인해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일부 흡수하는 효과가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식물플랑크톤이 흡수한 이산화탄소 중에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저장된 것이 얼마인지, 다시 대기 중으로 방출된 양이 얼마인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생물 다양성 상실이 가장 큰 후유증 

2019년 11월 호주 북동부를 휩쓸고 있는 산불 속에서 불에 타서 도망가는 코알라의 모습이 공개됐다. 채널 9가 공개한 영상. [유튜브 캡처]

2019년 11월 호주 북동부를 휩쓸고 있는 산불 속에서 불에 타서 도망가는 코알라의 모습이 공개됐다. 채널 9가 공개한 영상. [유튜브 캡처]

하지만, 산불 피해의 가장 긴 후유증은 생물 다양성의 상실일 겁니다. 불에 탄 숲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쉽게 돌아오지 않겠지요. 2019~2020년 호주에서 발생한 엄청난 산불로 약 30억 마리의 포유류·파충류·새·개구리가 죽거나 다쳤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산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산불을 예방하고 피해를 줄여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미국 산불의 발생 추세. 미국에서는 2000년 이후 산불 발생 빈도가 3배로, 면적은 4배로 증가했다. 왼쪽 지도는 1984~1999년 동안의 산불 발생 상황을, 오른쪽 지도는 2005~2018년 사이의 산불 발생 상황이다. 극단적인 산불은 큰 원으로 표시했는데, 오렌지색 원은 1984~1999년 발생 산불의 상위 1%에 해당하는 큰 산불을, 붉은색 원은 2005~2018년 산불에서 상위 1%에 해당하는 큰 산불을 표시한 것이다. [자료 Science, 2022]

미국 산불의 발생 추세. 미국에서는 2000년 이후 산불 발생 빈도가 3배로, 면적은 4배로 증가했다. 왼쪽 지도는 1984~1999년 동안의 산불 발생 상황을, 오른쪽 지도는 2005~2018년 사이의 산불 발생 상황이다. 극단적인 산불은 큰 원으로 표시했는데, 오렌지색 원은 1984~1999년 발생 산불의 상위 1%에 해당하는 큰 산불을, 붉은색 원은 2005~2018년 산불에서 상위 1%에 해당하는 큰 산불을 표시한 것이다. [자료 Scienc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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