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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만2000명 죽었다…인류 위협하는 '공포의 살인자'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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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30일 호주 베른스데일에서 연기 기둥 아래로 산불이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2019년 12월 30일 호주 베른스데일에서 연기 기둥 아래로 산불이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소음 공해로 유럽연합(EU) 내에서 매년 조기 사망하는 사람 1만2000명, 매년 산불로 사라지는 숲 4억㏊, 꽃이 피어도 꽃가루 옮길 곤충을 만나지 못하는 과수원….
심한 도시 소음과 늘어나는 산불,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리듬 파괴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엔 산하 환경 전문 기구인 유엔 환경계획(UNEP)은 17일(현지 시각) 공개한 '2022 프린티어 보고서'를 통해 인류를 위협하는 환경 위협으로 세 가지를 지목하고, 각각에 대해 해결 방안도 제시했다.
프런티어 보고서는 이번에 네 번째로 발간됐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코로나 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발하기 4년 전인 지난 2016년 보고서에서는 인수 공통 전염병 위험 증가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프론티어 2022' 보고서 표지. 보고서 제목은 '소음, 불길, 그리고 불일치'로 돼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유엔환경계획(UNEP)의 '프론티어 2022' 보고서 표지. 보고서 제목은 '소음, 불길, 그리고 불일치'로 돼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소란스러운 살인자: 도시의 소음 공해

경남 창원시 구암동 고가철도에서 철도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경남 창원시 구암동 고가철도에서 철도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도시의 소음 공해는 공중 보건에 대한 위험을 가중하고 있다. 도로 교통과 철도 등에서 발생하는 원치 않는 큰 소리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해치기 때문이다.
소음은 만성적인 스트레스, 수면장애가 포함되고, 심각한 심장 질환과 당뇨병 등 대사 장애, 청력 손상, 정신 건강 악화 등으로 이어진다.

유럽에서는 각각 2200만 명과 650만 명이 소음으로 인해 만성적인 스트레스 혹은 수면 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소음 공해는 EU 시민 5명 중 1명에게 영향을 주고 있고, EU 내에서만 매년 1만2000명의 조기 사망을 초래하고 있다. 환경 소음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유럽에서 매년 4만8000건의 새로운 허혈성 심장 질환이 발생하고, 1만2000건의 조기 사망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요 도시별 소음도. 남아시아 방글라데시 다카는 최대 119데시벨로 소음이 가장 심했고, 아프리카는 알제리 도시들이, 북미는 미국 뉴욕이, 서아시아에서는 시리아 다마스쿠스, 동남아에서는 베트남 호치민시가 소음이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엔환경계획(UNEP)]

주요 도시별 소음도. 남아시아 방글라데시 다카는 최대 119데시벨로 소음이 가장 심했고, 아프리카는 알제리 도시들이, 북미는 미국 뉴욕이, 서아시아에서는 시리아 다마스쿠스, 동남아에서는 베트남 호치민시가 소음이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엔환경계획(UNEP)]

대한민국의 국민 건강 및 소음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주간 소음 노출이 1데시벨(㏈) 증가할 때마다 심혈관 및 뇌혈관 질환 발병률이 0.17~0.66%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다카를 비롯해 알제리 수도 알제와 태국 방콕, 시리아 다마스쿠스, 베트남 호찌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미국 뉴욕 등 전 세계 많은 도시에서 허용 가능한 소음 수준을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교통량이 많은 도로와 산업 지역 등에 거주하는 어린이와 노인 등 소외된 지역사회가 소음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소음은 또한 새와 곤충, 양서류 등 다양한 종의 커뮤니케이션과 행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위협 요소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도시 계획 담당자는 숲 벨트나 녹색 벽, 녹색 지붕처럼 도시 내에 더 많은 녹지 공간을 조성해 긍정적인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소리 풍경)를 조성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도시 소음 개선 사례로 독일 베를린을 제시했다. 베를린의 경우 자동차 도로를 줄이고 자전거 도로를 늘리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소음을 줄였다. 당초 50만 명 이상이 50㏈ 이상의 야간 소음에 노출됐는데, 편도 2차선 차도를 1차선으로 줄이고 양쪽을 자전거 도로로 만들면서 5만 명이 야간 소음 고통에서 풀려나게 됐다.

갈수록 악화하는 산불 피해

세계 산불 발생 현황. 2003~2016년 사이 지구 전체로 1300만건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이 중 77%는 사바나 지역에서 발생했고, 13%는 농업 활동에서, 7%는 벌목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대림에서 2%, 온대림에서 1%가 발생했다. 평균적인 산불 지속기간은 4~5일이었다. [유엔환경계획(UNEP)]

세계 산불 발생 현황. 2003~2016년 사이 지구 전체로 1300만건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이 중 77%는 사바나 지역에서 발생했고, 13%는 농업 활동에서, 7%는 벌목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대림에서 2%, 온대림에서 1%가 발생했다. 평균적인 산불 지속기간은 4~5일이었다. [유엔환경계획(UNEP)]

2002~2016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4억2300만㏊(423만㎢)의 숲이 불탔다. 이는 남한 면적의 약 42배, EU 전체 크기와 비슷하다. 산불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점점 흔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67%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발생했다.

변화하는 기상 조건으로 인해 이전에 산불이 발생하지 않던 지역에서도 산불이 더 자주, 더 강렬하게 발생하고, 더 오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극도로 강렬한 산불에서는 발생한 연기가 뇌우를 촉발, 번개가 다시 먼 곳에 화재를 촉발한다.
2020년 호주 산불에서는 불꽃이 하늘로 치솟는 '화염 토네이도(firenado)' 현상이 관찰됐다. 뜨거운 공기와 먼지, 잡동사니가 한꺼번에 소용돌이치는 화염 토네이도는 ‘파이어 데블(fire devil)’로도 불린다. 말 그대로 화마(火魔)다.

화염 토네이도의 형성.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화염 토네이도의 형성.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유엔 보고서는 "산불이 빈발하는 것은 가뭄과 기온 상승 등 기후 변화 탓이 크지만, 상업적 벌목과 도시 삼림 벌채 등 토지 이용 변화도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 자연계에서 자연적인 산불로 숲속의 가연성 물질의 양이 일정 수준으로 제한됐는데, 사람들이 과도하게 화재 진압에 나서는 등 부적절한 화재 관리 정책도 한몫한다는 것이다.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팀은 지난 16일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논문에서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르고 건조해지면서 야간에도 산불 세력이 줄지 않아 산불 피해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밤사이 기온이 떨어지고, 습도가 높아져 산불이 주춤해지는데, 최근에는 그런 현상도 없이 번져나간다는 것이다.

산불은 인류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산불에서 발생한 연기와 미세먼지 등은 수천㎞에 이르기까지 풍하(風下) 지역, 즉 바람이 불어가 닿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산불 대기오염 물질에 노출되면 기존에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나 여성·어린이·노인의 건강을 해친다.

산불은 숲과 강·호수에 사는 다양한 동식물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산불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는 온난화를 유발하고, 검댕은 빙하를 덮어 더 빨리 녹아내리게 한다. 산불은 상수원을 오염시키고, 바다에서는 조류(algae)의 대규모 번식도 초래한다.

보고서는 "산불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위성과 레이더 등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번개 감지와 같은 원격 감지 기능의 추가 개선이 필요하다"며 "산불 관리에 전통적·토착 공동체를 참여시킬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깨지는 자연 생태계 리듬

일 최저기온 18.5도를 기록하며 봄을 연상케 하는 따뜻한 날씨를 보인 지난 2020년 1월 7일 오전 제주대 캠퍼스에 철쭉이 피어 있다.   철쭉은 대개 5월께 꽃을 피운다. [연합뉴스]

일 최저기온 18.5도를 기록하며 봄을 연상케 하는 따뜻한 날씨를 보인 지난 2020년 1월 7일 오전 제주대 캠퍼스에 철쭉이 피어 있다. 철쭉은 대개 5월께 꽃을 피운다. [연합뉴스]

기후변화는 식물과 동물의 자연 리듬을 방해한다. 다양한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들은 잎 피우기, 꽃과 열매 맺기, 번식, 둥지 틀기, 꽃가루받이, 계절적 이동, 탈바꿈 등의 시기를 알아채는 단서로 온도나 낮의 길이, 강우량 등을 사용한다.

환경의 지배를 받아 돌고 도는 생물들의 생애 주기(Life-cycle)에서 각 단계의 시기가 어떻게 달라지고, 생태계 내에서 생물 종들의 상호작용하는 시기나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을 생물 계절학(Phenology)이라고 한다.
기후가 변화하면 생물 종은 여기에 대응해 생물계절학적 변화를 보이는데, 문제는 생태계에서 상호작용하는 여러 종이 항상 같은 방향이나 같은 속도로 타이밍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생태계가 점점 더 교란돼 식물과 동물이 자연 리듬과 일치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곤충이 과거보다 일찍 번식하면 어미 새들이 알에서 깨어난 어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주는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특히, 계절에 따라 먼 거리를 이주해야 하는 동물의 경우 계절적 변화에 취약하다. 이동할 때 출발지와 경유지, 목적지의 조건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면 이동 집단의 생존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난 1200년 동안의 일본 교토 벚꽃 만개 시기 변화. 세로축은 3월, 4월, 5월을 나타내고, 가로축은 9세기부터 현재까지를 나타낸다. 지난해에는 3월 26일에 벚꽃이 만개해 기록상 가장 빨랐다. [자료: 유엔환경계획(UNEP)]

지난 1200년 동안의 일본 교토 벚꽃 만개 시기 변화. 세로축은 3월, 4월, 5월을 나타내고, 가로축은 9세기부터 현재까지를 나타낸다. 지난해에는 3월 26일에 벚꽃이 만개해 기록상 가장 빨랐다. [자료: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작물의 계절적 변화는 식량 생산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상업적으로 중요한 해양 생물의 변화는 어업 생산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물 계절 변화. 기후변화로 육상과 해양생물종들의 생애 주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지는 그래픽이다. 중심 세로선을 기준으로 생물 종류별, 생애 활동별로 10년마다 몇일이나 빨라졌는지, 늦어졌는지를 나타낸다. [유엔환경계획(UNEP)]

생물 계절 변화. 기후변화로 육상과 해양생물종들의 생애 주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지는 그래픽이다. 중심 세로선을 기준으로 생물 종류별, 생애 활동별로 10년마다 몇일이나 빨라졌는지, 늦어졌는지를 나타낸다.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는 "종 다양성을 유지하고 생태계의 온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식지 복원, 이동 통로의 확보, 새로운 서식지에 맞는 보호지역 경계 재조정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현재의 기후변화는 많은 종이 적응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이런 노력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유엔환경계획 잉거 안데르센 사무총장. [유엔환경계획(UNEP)]

유엔환경계획 잉거 안데르센 사무총장. [유엔환경계획(UNEP)]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은 "도시 소음 공해와 산불, 계절적 변화는 기후변화와 오염, 생물 다양성 손실이라는 세 가지 '행성 위기'를 나타내는 문제"라며 "이 보고서는 건강한 환경 없이는 건강한 사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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