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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돈 줬다” vs 채권자 “못받아”…아리송해진 러 ‘국가부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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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러시아의 ‘국가 부도’ 여부가 미궁에 빠졌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하기 위해 이자를 갚았다는 러시아와 이자를 받지 못했다는 미국·유럽의 채권자 입장이 엇갈리면서다. 상황은 미국과 러시아의 책임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는 “송금 허용 여부는 미국에 달렸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미국은 “경제 제재가 채무 상환까지 막지는 않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16일 약 1억1700만 달러(약 1421억원) 규모의 달러 채권 이자를 갚아야 했다.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 30일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다음 달 15일 최종 디폴트 선언 여부가 결정된다. 앞서 시장에서는 러시아가 루블화로 이자를 갚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며 디폴트 우려는 커졌다.

일단 상황은 애매하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날 국영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채권 이자 상환을 위해 외화 계정이 있는 미국 은행으로 달러화를 송금했고, 해당 은행이 미 해외자산관리국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달러화 표시 국채 이자 지급 관련 업무는 미국 씨티은행이 담당하고 있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이어 “최종적으로 (채무 상환) 의무 이행 여부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 당국에 달려 있다”며 “우리는 (빚을 갚을) 돈도 갖고 있고, 실제로 지불했기 때문에 공은 미국 측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자 지급을 거부하면 채권자가 돈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2022년 러시아 외화 국채 만기 도래일과 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022년 러시아 외화 국채 만기 도래일과 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러시아의 책임 떠넘기기에 미국은 즉각 반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재무부 대변인실은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채무 상환까지 막진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금융당국이 러시아 중앙은행과 재무부 간 모든 금융 거래를 금지했지만 채무 상환을 위한 금융 거래에 대해서는 예외를 뒀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1일 이전에 발행한 러시아 중앙은행과 국부펀드·재무부가 발행한 외화 국채에 대한 이자에 대해서는 오는 5월 25일까지 ‘예외 기간’ 동안 거래를 허용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미 재무부의 ‘특별 승인’을 받아야만 러시아 정부와 기관이 지급하는 채권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러시아는 이자를 갚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채무 상환을 위한 송금을 시도했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날 각각 미국과 유럽에 위치한 복수의 익명 취재원을 인용해 해당 국가의 영업 마감 시간까지 채권자가 돈을 받은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이날 이자 상환을 하고 국가부도 위기를 피했더라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오는 21일(6500만 달러)과 28일(1억200만 달러), 31일(4억4700만 달러)과 다음 달 4일(21억2900만 달러)까지 갚아야 할 돈이 대기 중이다. 미국 재무부의 ‘예외 기간’이 끝나는 5월 25일 이후 갚아야 할 달러 채권 원금과 이자도 총 17억8800만 달러(약 2조17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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