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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암수술비 484만원…쓰레기장 4시간 뒤져 찾아낸 경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5일 오전 9시38분쯤 충남부여경찰서 112상황실에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할머니가 보관 중이던 돈을 엄마가 모르고 버렸는데 찾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신고자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평소 밭일을 해서 모은 돈인데 상심이 클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5일 충남 부여경찰서 규암파출소 직원들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할머니가 천에 싸아 보관하던 현금을 발견했다. [사진 충남경찰청]

지난 5일 충남 부여경찰서 규암파출소 직원들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할머니가 천에 싸아 보관하던 현금을 발견했다. [사진 충남경찰청]

신고를 받은 부여경찰서 규암파출소 윤여운(50) 경위는 우진이 순경과 함께 신고자의 할머니 A씨(85)가 사는 집으로 출동했다.

조사 결과 할머니의 돈주머니가 버려진 사연은 이랬다. A씨의 딸인 B씨(61)는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최근 부여로 내려왔다. 지난 4일 오후 8시쯤 집안을 정리하던 B씨는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과 쓰레기를 선별한 뒤 대문 밖에 내놨다.

간병하던 딸이 모르고 현금 담긴 주머니 버려 

다음 날인 5일 오전 6시쯤 B씨는 “방에 있던 물건을 못봤냐”고 묻는 A씨의 말에 “쓰레기와 함께 밖에 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딸이 버린 쓰레기 안에는 할머니가 모은 현금 500여 만원이 함께 담겨 있었다. 모녀가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봤지만 이미 수거업체가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수거해간 뒤였다.

망연자실한 B씨는 자신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외할머니의 돈주머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자신의 잘못으로 팔순 노인이 한푼 두푼 모은 돈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는 자책감에 B씨는 “내가 그 돈 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위로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B씨의 딸은 경찰에 “할머니가 잃어버린 돈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신고했다.

지난 5일 충남 부여경찰서 규암파출소 직원들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할머니가 천에 싸아 보관하던 현금을 찾고 있다. [사진 충남경찰청]

지난 5일 충남 부여경찰서 규암파출소 직원들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할머니가 천에 싸아 보관하던 현금을 찾고 있다. [사진 충남경찰청]

현장에 도착한 윤 경위 일행은 딸 B씨에게 돈이 담긴 가방이나 주머니의 형태를 물었지만, 그는 “돈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할머니 역시 자신이 돈을 모아둔 게 가방인지 주머니인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B씨는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포기하겠다”고 체념했다.

경찰, 쓰레기더미 뒤져 할머니 돈 찾아

윤 경위 등은 쓰레기를 수거해간 시간이 불과 4시간 전이라는 점에서 아직 다른 곳으로 보내지거나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수거업체로 달려간 두 사람은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뒤진 끝에 흰색 천에 싸인 현금 484만3000원을 발견했다.

이 돈은 평소 할머니가 밭일이나 주변 이웃의 일을 돕고 받은 인건비를 모아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병인 폐암을 수술할 때 자식들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해 모았던 것이라고 한다. 경찰이 돈을 발견했을 때 천원짜리 한장까지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었다.

지난 5일 충남 부여경찰서 규암파출소 직원들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할머니가 천에 싸아 보관하던 현금을 발견했다. [사진 충남경찰청]

지난 5일 충남 부여경찰서 규암파출소 직원들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할머니가 천에 싸아 보관하던 현금을 발견했다. [사진 충남경찰청]

윤 경위 일행이 돈을 돌려주자 B씨는 “어머니가 괜찮다고 하셨지만, 속으로는 많이 속상하셨을 것”이라며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어머니와 상의해서 작으나마 좋은 일에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 경위는 “시골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어렵게 번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을 것”이라며 “함께 출동했던 우진이 순경도 새내기 경찰관으로 좋은 현장 경험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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