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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폭탄·핵무기, 국제법이 금지하지 않는다고?…제네바 협약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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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의 픽 : 금지 무기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는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의회 의원들을 만난 뒤 “러시아군이 제네바 협약에서 금지하고 있는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시내에서 이동하고 있는 러시아 육군의 TOS-1 다연장 로켓. 트위터 Russia vs. Ukraine Updates 계정

우크라이나 시내에서 이동하고 있는 러시아 육군의 TOS-1 다연장 로켓. 트위터 Russia vs. Ukraine Updates 계정

제네바 협약은 전쟁 중 인도적 대우에 관한 기준을 정한 국제법이다. 전쟁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무력 충돌에서 부상 등으로 전투력을 잃은 군인, 포로뿐만 아니라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민간인을 인도적으로 대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 세계 모두 194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했다. 유엔 회원국(193개국)보다 더 많은 나라가 동참한 셈이다.

러시아가 진공폭탄이라고 불리는 열압력탄(기화폭탄)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다만 열압력탄을 탑재한 다연장 로켓인 TOS-1 부라티노가 최전선에서 목격됐을 뿐이다.

열압력탄이 도심에서 터지면 민간인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 열압력탄은 주변의 공기를 다 태워 사람이 질식해 숨지게 만든다. 또 엄청난 충격파로 장기 손상을 일으킨다. 한마디로 잔인한 무기다.

그러나 마르카로바 대사의 주장처럼 제네바 협약엔 열압력탄 사용을 금지한 조항은 없다. 국제법 전문가인 이기범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도한 살상을 부르는 열압력탄이 전쟁 수단과 목적의 형평성을 명시한 국제인도법과 전쟁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면서도 “제네바 협약은 물론 진공폭탄 자체를 규율하는 국제 조약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제법으로 규제하는 무기들이 있다. 국제 사회는 다양한 국제법과 협약에서 소형 폭발탄이나 덤덤탄, 질식가스탄 등을 금지하도록 만들었다. 이들 무기가 군인과 민간인에게 인도적 측면에서 과도한 위해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국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지난달 25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북동부 접경지역의 유치원ㆍ민간인 대피 시설을 포격했다고 비난한 집속탄은 국제 사회가 금지한 무기다. 이 공격으로 어린이 1명을 비롯해 3명이 숨졌다.

집속탄(확산탄)은 하나의 포탄 안에 여러 개의 자탄을 넣었다. 모탄이 공중에서 폭발하면 자탄이 흩어져 지상으로 뿌리는 방식으로 일정한 면적을 동시에 타격하는 무기다.

문제는 불발탄이 사후에 대인지뢰처럼 남는다는 점이다. 어린이들이 불발 집속탄을 갖고 놀다 숨지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2008년 125개 국가가 집속탄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한국과 미국은 집속탄 금지 국제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역시 불참 국가다.

궁극의 무기인 핵무기는 국제법에서 어떻게 볼까. 이기범 교수는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핵무기를 쓰거나 쓰겠다고 협박하는 행위는 무력 충돌과 특히 인도주의법의 원칙과 규칙에 관한 국제법을 위배한다’고 권고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 강대국의 입김 때문인지 아직 핵은 ‘불법 무기’가 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이거 하나 만은 분명하다. 모든 전쟁은 이유가 어떠하든 살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무기는 흉기다. 국제법에 어긋나건, 어긋나지 않건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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