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성태가 고발한다

'세탁소 들러 옷 찾아달라'…교육부 높은 분들, 영어로 해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2022.03.03 23:30

업데이트 2022.03.04 00:17

강성태 '공부의 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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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그래픽=김현서 기자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그래픽=김현서 기자

“세탁소에 들러서 내 옷을 찾아와 줄래요?” “바퀴 달린 가방이 더 편리할 거 같네요.”

위 문장을 영어로 말해 보자. 바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학생이든 성인이든 할 수 있는 분은 거의 없다.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두 문장은 학창시절에 우리가 수도 없이 공부했던 표현이다. 중·고교 영어 듣기 평가 1번 표현을 가져온 것이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대체 얼마나 영어 공부를 많이 했나? 그런데도 듣기 평가 1번 문제의 문장조차 말로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우린 별로 놀라지 않는다. 학교 졸업 뒤에 영어 한마디 못하는 걸 우린 당연하게 여긴다. 공교육은 공짜이니 별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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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영어교육 예산이 국어교육 예산의 몇 배일까?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160배다. 16배도, 1.6배도 아니고 무려 160배다. 우리가 죽어라 일해서 내는 세금이다. 그렇게 전 국민은 돈을, 학생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데 1번 문제 속 문장도 써먹질 못한다. 더 이상한 건 이 현실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공교육만으로 기본적인 영어는 모두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 이게 문제라는 걸 우선 인정해야 한다.

수포는 대포, 영포는 인포 

영어는 교육격차의 시작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 부유한 동네에선 영어가 공용어나 다름없다.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이 영어로 논다. 이들은 영어 공부를 거의 할 필요가 없다. 영어권에서 살다 왔거나 조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다. 일반 학생들처럼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하루에 영어단어 100개씩 외울 필요가 없다.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면 시간이 엄청 남는다. 그 시간에 수학 공부를 더 한다. 그럼 수학도 더 잘하게 되고 대학을 더 잘 갈 확률도 커진다.

강성태 '공부의신' 대표. [유튜브 캡처]

강성태 '공부의신' 대표. [유튜브 캡처]

좋은 대학 간판이 있고 영어도 잘하니 인턴쉽 기회도 상대적으로 쉽게 얻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좋은 직장을 더 잘 구하고 승진도 더 잘한다. 모든 직업에서 영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직장에서 채용 때 공인 영어성적을 요구한다. 영어를 잘하면 기회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수포는 대포, 영포는 인포다. 수학을 포기하면 대학을 포기한 것이지만, 영어를 포기하면 인생을 포기한 것이라는 뜻이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오겠는가?

인터넷에서 영어 비중 63% 

우리 모두 알듯 영어는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다. 정보의 보고(寶庫)다. 현재 지구상에 언어 종류가 7139개인데 인터넷에 있는 모든 정보 가운데 영어 비중이 63.4%다. 한국어 비중이 0.1%(위키피디아)라는 걸 감안할 때 그 위력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할 때와 네이버에서 한국어로 검색할 때 그 정보의 양과 질 차이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가령 전 세계인의 관심사로 떠오른 코로나19 백신에 관한 논문은 대부분 영어로 가장 먼저 출간된다.

나는 20대 대부분을 교육 봉사 활동으로 보냈다. 나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도 있었다. 입시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가르쳐 어느 학교에 합격을 시키면 다른 쪽에서 누군가가 떨어져야 한다. 그렇게 떨어진 학생이 소외계층 학생일 가능성도 크다. 내가 아는 소외계층을 돕느라 내가 모르는 다른 소외계층을 탈락시키게 되는 내 노력은 과연 의미 있는 것이었을까?

교육업계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매일 같이 좌절하는 학생을 만나게 된다. 죽고 싶다는 말을 듣는다. 실제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자살을 생각한 청소년 비중은 무려 33.8%에 달한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중앙포포]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중앙포포]

하지만 그들은 못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학생들만큼 똑똑하고 성실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 없다. 지능지수는 세계 1, 2위를 다툰다.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시간, 근로시간 모두 세계 최상위권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애 어른 할것 없이 일이든 공부든 소처럼 하고 있지 않은가? 잘난 사람들이 너무 너무 많은 것 뿐이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과도한 경쟁을 줄이는 방법이 뭘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만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이 뛰어난 학생들을 더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류를 구할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된다. 한국인처럼 빠르게, 능숙하게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해외에선 찾기가 힘들다.

교육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도, 또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것을 위한 제1조건이 영어 아닌가?

손정의 사용 영어 단어 1480개 

한때 세계 부자 1위였던 한국계 인물이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다. 전 세계를 돌며 수많은 기업에 투자하고 거액의 딜을 성공시켜 막대한 부를 일궜다. 그런데 이 분은 통역사를 쓰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영어로 각종 협상을 진행한다. 일본 닛케이가 그의 영어를 분석했다. 실력이 중·고교 교과서 수준이었다. 사용하는 영어 단어는 1480개가 전부였고, 사용하는 영어 문장 패턴도 많지 않았다. 그걸로도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데 필요한 영어 구사에 문제가 없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중앙포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중앙포토]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본적인 영어는 어렵지 않다. 실제로 대다수 사람이 사용하는 영어 패턴은 100여 개 정도가 전부다. 실은 60개 정도만 익혀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중·고교 시절 공부만으로도 기본 영어회화는 충분히 마스터할 수 있다.

핀란드의 영어교육 본받아야 

그런데 왜 1번 문제도 말하지 못하는가? 교육방식이 잘못됐다. 듣기평가 지문만 봐도 전부 영어회화, 즉 일상생활 대화문이다. 듣기평가만큼 엄선된 회화 지문도 없는데 듣기만 하고 버렸다. 그 결과 듣기 따로, 독해 따로, 문법 따로, 회화 따로 공부하느라 고생한다. 교육 방식이 일제강점기 시절의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근본적으로는 영어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영어하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시험이다. 세상에 시험만큼 두렵고 스트레스 주는 게 또 있는가? 그러니 두렵고, 두려우니 안 쓰고, 안 쓰니 실력이 늘지 않는다.

영어는 시험 이전에 언어고,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해 존재한다. 단어만 더듬더듬 말해도, 서툰 문장에 손짓 발짓을 더해도 소통이 된다. 영어 교육 예산이 현저히 우리보다 적은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영어 의사소통에 능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시험이라 생각하지 않기에 틀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영어를 시험점수로 접근하는 인식만 바뀌어도 영어 실력이 순식간에 달라질 것이다.

흔히 영어교육의 모범사례로 뽑히는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는 전형적으로 영어를 못하는 나라 중 하나였다. 핀란드는 한국어와 같은 어순의 우랄 알타이어군의 언어로 영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다. 교육방식도 우리처럼 실전 회화 위주의 교육이 아니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대대적인 영어교육의 개혁이 시작돼 이젠 거의 전 국민이 기본 영어회화에 문제가 없다.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예산이 적은 것도 결코 아니다. 속된 말로 학생들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성과과 효율은 너무 형편없다. 우리 교육당국에게 핀란드 같은 개혁까진 아니더라도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그 이전에 교육부와 교육청의 높은 분들에게 우리의 영어 공교육이 실패라는 사실을 인정하는지 묻고 싶다.

중고교 시절에도 영어로 고통받고 성인이 돼서도 큰 돈 들여 회화 학원을 다녀야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영어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현실. 이제는 끊을 때도 되지 않았나? 이 현실을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뛰어난 학생들과 성인들이 영어 때문에 더 넓게 더 멀리 꿈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 영어 따위로 꿈을 포기하는 일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란다.

[조희연의 반박불가]그래도 교실은 바뀌고 있습니다
영어 교육을 소홀히 하는 공교육을 비판한 강성태 대표 글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보내온 답글 형식의 칼럼을 붙입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강성태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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