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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블화 말고 달러" 대러 제재 첫날, ATM 앞에 줄선 러시아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7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은행 앞에 사람들이 돈을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은행 앞에 사람들이 돈을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현금인출기(ATM)가 있는 은행 앞엔 사람들이 돈을 찾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 있었고, 루블화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돈을 쓰려는 사람들로 아이폰과 TV를 파는 전자제품 매장은 크리스마스 전처럼 북적였다. 구글에선 '이민' 단어의 검색 빈도가 치솟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CNN 등 외신은 미국의 러시아 경제 제재가 시작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내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한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 러시아 달러 대비 루블화 가치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 중앙은행 등에 제재를 가하고,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 은행을 퇴출하기로 하면서 30% 하락하기도 했다. 이에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2배 이상 인상했지만,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을 막을 수는 없었다. 주식 시장은 일시 폐쇄됐다.

"며칠 전 사람들은 당연히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다음 전쟁이 일어났다." ATM 앞에 줄 선 수백명의 사람 중 한명인 일라리온은 FT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은행에 넣어둔 달러를 찾지 못할까 걱정했다. "정부에서 달러를 빼돌리기 위해 우리가 저축한 달러를 강제로 루블로 바꾸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현실이 될 수도 있으니까."

외신은 러시아 시민들의 일상은 엉망이 됐다며, 불안한 일부 시민들은 현금을 들고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출신의 인사(HR) 전문가인 엘레나는 전쟁 전 아랍에미리트로 떠난 친구들을 따라 이민을 계획 중이다. 엘레나는 "(전쟁 발발 후) 혼란스럽고 무섭다"며 "경제가 무너지고 나면 우리는 부모나 조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식량) 수당 카드로 생활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당 카드란 소련 시절인 1990년대까지 이어진 식량 배급 시스템이다.

엘레나는 "최소한의 손실로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러시아의 정책과 방향을 알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진 않는다"며 "여기서 나가는 게 가족이나 부모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구글에서 '이민'을 검색한 러시아 이용자가 부쩍 늘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주 '이민' 단어 검색은 그전보다 5배 증가했다. 도시별 순위로 보면 무르만스크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시민이 많았다. 이들 도시는 모두 유럽과 가까운 서쪽에 있으며, 러시아 중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의 레프 구드코프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달 나라를 떠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인의 22%, 특히 젊은 층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그렇게 답했다. 이유는 제한된 경제활동 기회,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한 정권 등을 들었다. 특히 징병 연령에 가까운 아들을 둔 부모들이 이민에 대한 생각이 강했다.

BBC는 모스크바 시민들이 서구의 제재가 가속할 경우 화폐 가치의 하락은 물론 실직 등을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 모든 것은 푸틴 대통령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후 일어난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그때부터 서구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엘리나 리바코바 국제금융연구소(IIF)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날 제재로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최소 10% 위축되고 두 자릿수의 인플레이션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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