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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2008 데자뷔…"돈바스 두 공화국, 푸틴의 도구일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러시아어로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인정했지만, 진짜 '국가'가 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푸틴의 저의는 두 공화국을 활용해 우크라이나를 분쟁지역화하고,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막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2008년 조지아 침공 당시에도 썼던 수법이다.

2008년 조지아 사태 시나리오대로? 

러시아 군인과 장갑차들이 22일 우크라이나 국경과 인접한 러시아 로스토프 지역의 도로에 서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군인과 장갑차들이 22일 우크라이나 국경과 인접한 러시아 로스토프 지역의 도로에 서 있다. EPA=연합뉴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P), 프랑스24 등 외신은 22일(현지시간)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는 조지아 사태의 반복"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지난 2008년 8월 조지아를 전면 침공했다. 조지아에서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남오세티야에 자국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는데, 조지아의 정부군이 이들을 공격해 숨지게 했다는 빌미였다.

조지아는 5일 동안 벌어진 전쟁에서 패했고, 푸틴은 남오세티야공화국과 압하지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인명 피해와 평화 유지를 명분으로 들었다는 점, 친러 세력의 독립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와 매우 흡사하다.

프랑스24도 "푸틴의 DPR과 LPR 승인은 조지아인들에게 섬뜩한 데자뷔를 시사했다. 푸틴은 두 공화국을 인정하면서 2008년에 남오세티아공화국과 압하지야공화국과 체결한 상호 조약을 그대로 대입하는 등 검증된 전략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2008년 조지아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는 법령 문서(왼쪽)와 2022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는 법령 문서. 똑같은 부분이 많다. [사진 알요나 슈크룸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트위터]

2008년 조지아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는 법령 문서(왼쪽)와 2022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공화국을 국가로 승인하는 법령 문서. 똑같은 부분이 많다. [사진 알요나 슈크룸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트위터]

하지만 남오세티야공화국과 압하지야공화국은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신생 국가는 다른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거나 유엔의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식으로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 자격을 인정받는데,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DPR과 LPR 역시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과 주권을 침해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강조했다. 독립 국가가 아닌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DPR과 LPR은 러시아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생존이 가능할 전망이다. 남오세티야공화국과 압하지야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워싱턴포스트(WP)도 "돈바스 지역의 인구 약 380만명 중 30%가 러시아계로, 우크라이나 내 타 지역보다 러시아계 사람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친러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돈바스 지역 주민 중 절반 이상이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생각하고, 러시아 루블화를 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쪽짜리 독립국가, 푸틴에게 이득

이를 두고 DPR과 LPR이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러시아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게 푸틴에겐 이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군사적 개입의 정당한 명분이 될 수 있어서다. 프랑스24는 러시아 안보 전문가인 니콜로 파솔라의 인터뷰를 인용해 "두 공화국은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데, 이런 취약성이 러시아엔 오히려 득이 된다. 러시아의 군 주둔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오세티야공화국과 압하지야공화국에도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다. 조지아 입장에선 영토의 20%가 타국에 점령돼 있는 셈이다. 푸틴은 사실상 이를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막는 방파제로 활용하고 있다.

정세진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는 "만약 조지아가 나토에 가입한 상태에서 두 공화국과 또 분쟁이 일어나면 나토가 개입해야 하고, 나토와 러시아 간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 조지아가 2008년 이후 나토와 많은 협력 관계를 맺고 있지만, 두 공화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나토에 가입을 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푸틴이 DPR과 LPR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 수단으로 톡톡히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분쟁국화' 의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날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푸틴은 "현 사태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우크라이나가 자발적으로 나토 가입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 의사가 확고하다. 고재남 유라시아정책연구원은 "이에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 조지아처럼 우크라이나를 최고로 압박해 분쟁국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 돈바스 지역에서 영토 분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DPR과 LPR의 영역은 돈바스의 3분의1 정도이지만, 푸틴이 이들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통제하는 지역까지 포함, 돈바스 전체를 이들의 영토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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