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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제재연설, 푸틴은 보지도 않았다…"러에 장난감총 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군대 배치를 결정한 하루만인 22일(현지시간) 서방은 첫 번째 제재안을 발표했다.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 은행과 과두지배세력(올리가르히)의 자산을 겨냥했고,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국가 승인에 관여한 러시아 하원 의원과 은행·기업 등을 포함했다. 특히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그간 경제적 영향 때문에 제재 목록에 넣기를 주저했던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 프로젝트를 중단을 발표하며, 러시아 에너지 산업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G7 외무장관들도 "단계적 제재"를 약속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2일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첫번째 제재 안을 발표했지만, 같은 시간 푸틴 대통령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고 크렘린궁은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2일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첫번째 제재 안을 발표했지만, 같은 시간 푸틴 대통령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고 크렘린궁은 밝혔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은 서방의 초기 단계의 제재가 단기적으로 푸틴의 계획을 변경할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 줄리아 프리드랜더 연구원은 WP에 "(제재의 효과는) 천천히 타오를 것"이라며 "서방이 향후 몇 주간 더 강도높은 제재를 가하더라도 러시아 경제와 올리가르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드랜더는 그 이유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착실히 ‘카운터펀치’를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후 시작된 서방의 제재에 맞서 보유 외환을 역대 최대(약 6300억 달러)로 늘렸으며, 국가 부채의 외국 지분도 줄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 부채에 대한 외국인 지분은 지난 2002년 34%에서 지난해 11월 20.5%로 낮아졌다.

실제로 서방의 제재 목록을 본 러시아는 놀라지 않았다. 이날 크렘린궁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재 안을 들고 연설하는 동안, 푸틴 대통령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또 아나톨리 안토노프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는 "서방의 제재는 늘 있었다"며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재는 전 세계 금융·에너지 시장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노르트 스트림2 파이프라인이 중단되면 유럽의 가스 가격이 폭등할 것으로 되레 경고장을 날렸다. 러시아 천연가스는 유럽 전체 소비량의 약 38%를 차지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첫 금융제재 대상이 지목한 러시아 국책은행 VEB도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 VEB는 스푸트니크통신에 "미국의 제재는 은행 업무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권리와 적법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VEB는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때부터 미국과 EU의 제재를 받아왔다.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영국의 전문가들은 그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러시아에 대한 목소리를 키워온 것과 대비해 이날 제재 목록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영국이 대상으로 삼은 은행과 3명의 러시아 신흥재벌은 수년 동안 미국의 제재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낮은 곳에 달린 열매"라는 시각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 러시아 담당 등을 지낸 개빈 와일드는 "영국이 타깃으로 삼은 은행은 설립 당시부터 러시아가 제재 부과를 염두에 뒀던 곳"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국제적 노출이 제한적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번 제재를 "영향력보단 상징적인 의미"라고 했다.

런던 싱크탱크 왕립방위안보연구소의 톰 키팅 소장은 "장난감 총으로 총격전을 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키팅 소장은 "이미 취한 행동을 바꾸도록 하는 것은 애초에 하지 못하도록 막기보다 더 어렵다"며, 향후 상황이 악화할 경우를 대비해 화력을 억제하는 전략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후 서방의 제재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아진까진 제재가 억지력을 발휘하려면 실탄을 아껴둬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프리드랜더 연구원은 당장 효과는 덜 하겠지만, 서방 각국이 러시아가 "극단적인 경제적 결과"를 초래할만한 충분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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