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천천히 타 XXX" 욕설 노선영 항소…4년전 '왕따 주행' 진실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왕따 주행’ 논란에 휩싸였던 노선영(33·은퇴) 전 국가대표가 김보름(29·강원도청) 선수에게 폭언·욕설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본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4년간 이어온 ‘국가대표들의 진실 공방’은 상급심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노선영 전 국가대표. 중앙포토

노선영 전 국가대표. 중앙포토

노선영→김보름 ‘폭언’ 있었나, 없었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황순현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김보름이 노선영을 상대로 2억원을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2017년 이후의 일부 폭언을 인정해 300만원 일부 배상 판결을 내렸다. 노씨 측은 이 판결에 지난 17일 항소했다.

노씨 측은 “다툼이 있었던 건 사실이나 일방적 폭언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노씨 측은 1심 재판부가 폭언을 인정한 ‘증거’를 문제삼았다. 직접적인 증거는 소송을 제기한 지 7개월이 지나 김보름이 제출한 훈련일지(김보름 작성)가 유일하다는 주장이다. 노씨 측은 “훈련일지 내용을 보더라도 당시 두 사람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에 대하여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노선영이 자신에게 욕을 했다’는 김보름 본인의 진술만 확인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훈련일지의 신빙성 외에 동료 선수들의 사실확인서 등도 언급된다. 재판부는 “노선영 측은 해당 훈련일지가 소송 제기 이후 작성됐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원본을 확인해서 날짜 순서대로 작성돼있음을 확인했고 ▶일지에 기재된 훈련 내용이 주간훈련 계획과도 일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선영‧김보름과 함께 훈련했던 동료선수들이 일치해 국가대표 훈련 당시 노선영이 김보름에게 화를 내며 욕설을 하는 것을 보았다는 취지로 사실확인서를 작성했다”며 “그 내용을 종합하면 노선영의 폭언과 욕설은 김보름의 스케이트 속력에 관한 것으로 ‘천천히 타면 되잖아. 미친년아’와 같은 내용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시점 역시 구체화했다. 재판부는 “동료선수들과 코치 등이 작성한 사실확인서와 김보름이 작성한 훈련일지에 노선영의 욕설이 있었던 일자를 더해 본다면 2017년 11월 7일, 2017년 11월 28일, 2017년 12월 20일에 폭언과 욕설을 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노선영(왼) 선수와 김보름 선수. 중앙포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노선영(왼) 선수와 김보름 선수. 중앙포토

그러나 재판부는 ‘3년의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김보름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보름 측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폭언의 시효를 계산해야 한다 ▶평창올림픽 폐막 때까지는 노선영에게 폭언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는 근거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➀ 노선영의 폭언 보다는 (‘왕따주행’ 등) 사실관계와 다른 오해에서 비롯된 비난 여론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고 ➁ 국가대표 내에서 김보름의 입지는 상당히 확고했는데 노선영은 평창 올림픽 직전 연맹의 과실로 국가대표에서 제외되는 등 국가대표 내에서의 위치가 불안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 했다. 또 “노선영의 주장과 같이 김보름이 제출한 사실확인서에 기재된 내용이 다소 구체적이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고도 언급했다.

관련기사

여론재판이 무서웠다…‘왕따 주행’, 진실은?

논란은 지난 2018년 평창 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 팀추월 8강전 당시 마지막 주자 노선영은 김보름, 박지우에 크게 뒤처진 채 결승선을 통과했다. 팀 추월 경기는 마지막에 들어온 주자의 기록을 기준으로 순위가 결정된다. 하지만 김보름과 박지우는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나아갔다. 결국 한국 선수단의 준결승 진출은 무산됐다.

경기가 끝난 뒤 두 선수가 고의로 노선영을 챙기지 않고 따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보름이 “뒤에(노선영이) 저희랑 격차가 벌어지면서 기록이 조금 아쉽게 나온 것 같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왕따 주행’ 논란에 불이 붙었다.

그 이후 노선영의 방송 인터뷰가 논란에 더욱 영향을 미쳤다는 게 김보름 측 주장이다. 노선영이 경기 다음날 “그렇게 (속도를) 올릴 타이밍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발언한 인터뷰 등을 놓고서다. 그러나 법원은 노선영의 인터뷰 때문에 ‘왕따주행’ 논란이 촉발된 것이 아니라 ‘왕따주행’ 논란이 불거지는 바람에 노선영이 인터뷰를 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선수가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보이고 있다. 팀추월 네덜란드와의 준준결승 경기에서 김보름·박지우 선수가 팀 동료인 노선영 선수보다 한참 먼저 결승점을 통과해 논란이 됐다. 뉴스1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선수가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보이고 있다. 팀추월 네덜란드와의 준준결승 경기에서 김보름·박지우 선수가 팀 동료인 노선영 선수보다 한참 먼저 결승점을 통과해 논란이 됐다. 뉴스1

법원은 김보름 인터뷰를 놓고 “일부 답변 습관이 악의적인 태도로 오인됨으로써 (논란이) 발생된 것으로 보이고, 이로 인한 비판적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노선영과 감독이 기자회견을 가졌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또 노선영의 발언 역시 “다 사전에 완벽한 준비가 되어서 들어갔다”는 내용의 당시 대표팀 감독 발언에 대한 반박 의견 개진에 가깝다고 봤다.

당시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동의는 60만명을 넘겼고 이들은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김보름은 평창 올림픽 한 달 뒤인 2018년 3월 불안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고, 그의 어머니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함께 입원했다고 한다.

재판부 역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감사 결과와 매한가지로 ‘왕따 주행’은 없다고 봤다. 문체부는 그해 10월 발표한 감사 보고서에서 “특정 선수(김보름)가 고의로 가속을 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며 “선수들이 특별한 의도를 갖고 경기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노씨 측은 “평창올림픽을 전후해 제기한 문제들은 김보름이 아닌 빙상연맹과 백철기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 등에 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