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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가분이 고발한다

이대남에 엉뚱한 좌표 찍은 與···그들의 표계산 완전 잘못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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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연구자이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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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신남성연대는 '페미니즘 규탄'집회를 열었다. 배경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페이스북 포스팅. 그래픽=신재민 기자

지난해 12월 신남성연대는 '페미니즘 규탄'집회를 열었다. 배경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페이스북 포스팅. 그래픽=신재민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표 계산을 완전히 잘못했다. 그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월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올렸을 때 국민의힘을 '극우 반(反) 페미니스트'로 몰고 자기들은 중립 기어만 넣으면 적어도 2030 유권자 표 반은 갈라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듯하다. 민주당을 보면 영화 '남한산성'에서 오지 않는 근왕병을 기다리던 김상헌(병자호란 당시 노대신)이 떠오른다. 일부 민주당 관계자들은 국민의힘이 ‘여가부 폐지’를 공식화한 이후 2030 여성 결집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최근 민주당 서울시당에서 여론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도 “이대남 드라이브는 있지만 (기대했던) 이대녀 역풍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율이 40%를 돌파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2030, 특히 2030 남성 지지율 하락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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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고 싶든 아니든 이대남 신드롬은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대남은 지난 문재인 정부 5년을 ‘페미 정부 5년’으로 기억한다. 그랬던 이들이 전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결집하고 있다. 그들은 완고했던 윤 후보 태도를 바꿀 만큼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 세력이다. 심지어 그들은 ‘공정 프레임’으로 또래 이대녀를 설득할 힘마저 갖고 있다. 수도권 대학 총여학생회가 학생투표로 폐지된 것은 상당수의 여학우를 설득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주장을 성별 갈라치기로 폄하하면 안 되는 이유다. 이대남은 지난해 4월 서울·부산 보궐선거 이후 어떻게 하면 ‘정치적 다수파’를 형성할 수 있는지 그 요령을 터득했다. 난 앞으로 10년 안에 이들의 주장, 가치관이 사회의 주류가 될 거로 본다.

여가부 폐지 이슈 이면에는 그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공정성 이슈가 자리 잡고 있다. 독박 병역,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양성평등채용목표제, "남성은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되고 이를 해명하는 건 남성의 시민적 의무"라던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의 발언, 로스쿨·의대·한의대에 더해 올해 불거진 여대 약대 문제 등등. 이 정부의 친페미니즘 기조는 교육·부동산·일자리 정책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 평가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그 기조가 설령 실질적이든 립서비스에 불과하든 관계없이 말이다.

지난 9일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회원들이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청년 남심을 잡겠다며 대선후보가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글을 남기는 등 여성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정치 행위를 중단해야한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 9일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회원들이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청년 남심을 잡겠다며 대선후보가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글을 남기는 등 여성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정치 행위를 중단해야한다"고 밝혔다. [뉴스1]

이대남에 대한 악의적 낙인 걷어내야

민주당은 이대남에 대한 정확한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 사실 이대남은 지난 5년간 상식적인 주장을 펼쳐왔다. 그런데도 일베·극우·여성혐오라는 낙인을 찍었다. 국민의 절반 이상, 그리고 여성 40%가 찬성하는 여가부 폐지론을 '극우 선동’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그 연장 선상이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핵심을 비껴간 프레임이다. 이대남, 그러니까 1990년대~2000년대생 남성들은 일베에 우호적이지 않다. 오히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일베의 패륜에 분노하고 촛불시위 때 누구보다 먼저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젠더의식도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는 보수화라는 진단과는 거리가 멀다. 통계청 사회조사의 ‘가사 분담 견해’을 보면 2008년 당시엔 20대 남성의 44%만이 ‘부부가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2020년 현재 20대 남성 83.4%가 '공평한 가사분담'을 지지한다. 지금의 이대남들은 젠더의식 면에서 과거보다 더 진보적이다. 이들이 이대녀 못지않게 가부장적 꼰대를 싫어하고 가정 내 평등한 성 역할을 지지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이대남은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도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누구보다 성적으로 평등한 가정환경과 학교 교육 속에서 자라났기에 오히려 성 평등을 특정 '이즘'이나 이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한다. 공정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규칙 아래 동등한 기회를 갖는 것, 남녀 편들지 않는 공정한 대우,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이대남 시각에서 볼 때 '성 평등이 곧 페미니즘'이라는 식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그렇기에 정부가 앞장서서 페미니즘을 두둔하고 나랏돈으로 이념에 기반한 운동을 재생산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남성 커뮤니티를 범죄온상으로 규정하고 검열·모니터링하겠다는 (리벤지 포르노는 공개 커뮤니티가 아닌 트위터나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되기에 그 자체로 헛발질이다) 레디컬 페미니즘 단체에 여가부 장관이 표창장을 준 건 여가부가 그간 해온 수많은 ‘선 넘는’ 행위 중 하나였다. 이대남이 여가부 폐지에 환호하는 이유다.

조국 사과 이전에 젠더 갈등 책임표명부터

2018년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의 집회에 워마드 회원들이 '신은 여성이다'라는 뜻의 푯말을 들고 있다. 워마드 회원들은 'men'에서 파생한 단어 'women' 대신 'womyn'이라고 표기한다. [중앙포토]

2018년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의 집회에 워마드 회원들이 '신은 여성이다'라는 뜻의 푯말을 들고 있다. 워마드 회원들은 'men'에서 파생한 단어 'women' 대신 'womyn'이라고 표기한다. [중앙포토]

2015~16년 본격화한 극단적 페미니즘인 메갈리아·워마드 유행 당시만 해도 불화의 불씨를 잠재울 방법은 있었다. 갈등에 대해 공정한 태도만 지켰더라도 반은 먹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행보는 실기의 연속이었다. 집권 초반 진선미 당시 여가부 장관은 "여성할당제 덕에 장관 됐다"고 자랑하고, 여가부는 누구도 원치 않는 여성 아이돌 복장 가이드라인 따위를 만들었다. 급기야는 ‘여성 몰카 범죄자를 처벌하지 말라’는 2018년 혜화역 워마드 시위 당시 여가부·행안부 장관이 이들의 2차 가해를 공개적으로 두둔하고 나섰다. ‘내가 부당하게 공격당하더라도 이 정부는 내 편을 들지 않을 것’이 명확해진 순간 젊은 남성들은 급격히 지지를 거두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여권 인사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청년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그런다"는 망언을 일삼았다. 사안마다 무조건 ‘여자 편드는 게 진보고 정의’라는 안일한 인식이 화를 키웠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불공정과 내로남불, 그리고 자녀의 입시부정에 대한 사과 이전에 이런 행보에 대한 반성이 우선이다.

민주당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2018년 초 80%에 육박한 청년 남성 지지율이 혜화역 시위를 계기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신 수도권 대학가에서 총여학생회가 줄줄이 폐지될 때 밑바닥 민심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간파했어야 했다. 현실은 정반대다. 아직도 ‘이대남은 실체가 없다’라느니 ‘젠더 갈등은 부차적 문제’라는 현실 도피적 진단을 내놓고 있다. 여당의 정책자문 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른바 진보진영 전체의 문제에 가깝다.

젠더 공론화위원회 만들어야

선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승패에서 무슨 교훈을 얻느냐는 것이다. 선거 이후 그간 분출된 젠더 문제에 대한 공론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공론기구를 세울 것을 제안한다.
참고할 모델은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론화위이다. 페미니즘·비(非) 페미니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사들이 모여 공개 토론하고 첨예한 갈등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배심원 역할을 맡기면 된다. 이 외에도 성범죄, 저출산(생), 청년고용, 군 복무 문제 등 제반 이슈에 대해 정치인,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구성원의 다양성은 필수다. 이런 논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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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 정당인 민주당은 페미니즘 편을 들 필요도, 그렇다고 안티 페미 편을 들 필요도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시민사회 숙의로 도출한 결론만 따라도 지금처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선점한 이슈에 끌려다니는 수모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젠더 문제는 별것 아닌 이슈가 아니라 청년들에게는 민생문제이고 또 정치세력의 진정성을 보는 척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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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작가 글에 페미니스트 정치인 신지예와 더불어민주당 홍서윤 청년대변인이 보내온 답글 형식의 칼럼을 붙입니다. 글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박가분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