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세상에 하나뿐인 초콜릿을 정성스레 만들어 본 기억, 혹은 받아본 경험이 있는가. 비록 삐뚤빼뚤해도, 설령 맛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직접 만들어 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초콜릿은 대체 불가능하기에 매우 값지다.
기술의 발전은 그 대체 불가능성을 입증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초콜릿을 손수 만들던 순애보의 자리는 오늘날 자본주의 키즈들이 물려받았고, 이들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덕에 세상에 하나뿐인 것들을 모으며 자산을 늘리는 가상경제를 만들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가치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Z세대들은 민팅(Minting, 코인을 주조하는 행위)에 성공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모으는 쏠쏠한 재미에 더해 희소성 있는 작품의 경우 구입가보다 높게 되팔 수 있는 경제적 가치까지 누리고 있다.
Z세대가 이끄는 토큰 이코노미
취향에 동조하고 비전도 공유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한 NFT
2021년 5월 22일은 전 세계에 피자 수백만 판이 동시 주문된 피자 데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비트코인 피자 데이다. 2010년에 비트코인 만 개로 피자 두 판을 주문한 역사적인 사건, 다시 말해 가상자산으로 현실의 물품을 구매한 첫 사건으로 기록된 날을 기념하며 전 세계 기아들에게 피자를 기부한 것이다.
‘레어피자스(Rare Pizzas)’라는 단체는 그 이름에 걸맞게 대체 불가능한 단 하나뿐인 희귀한 피자를 위해 제너레이티브 아트(Generative Art, 컴퓨터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무작위로 생성되는 디지털 아트)로 각종 토핑이 올라간 가상피자를 만들고, 피자박스며 피자랑 같이 마실 음료를 디자인해 모두 NFT를 발행했다. 새롭고 독특한 피자 관련 레어템을 사들인 구매자들 덕에 130만 달러(약 14억원)를 벌어들였고, 레어피자스는 그 수익금으로 5월 22일에 맞춰 몇 백 만판의 피자를 전 세계에 뿌렸다. 가상공간에서만 돌아가고 있는 줄 알았던 토큰 이코노미를 현실 세계와 이어낸 성공적인 이벤트였다.
토큰 이코노미의 기저에 흐르는 탈중앙화 개념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레어피자스 같은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는 수평적인 조직구조를 추구하는 탈중앙화 자율조직이다. 리더가 없는 것이 특징이며 나이·성별·국경에 상관없이 구성원들끼리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저마다의 비전을 가지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세상에 표현한다. 계몽이나 각성, 홍보와 같은 목적이 아니라 취향에 동조하고 비전을 공유한다. 레어피자스의 활동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피자 파티를 열어 기아를 해결하자는 비전을 참여자들끼리 실천한 것이다. 그들은 쿨하다. 조건도 없고 리더도 없는 그 세상에서는 공감이 힘이자 권력이다.
NFT를 IT업계나 메타버스에서 놀 수 있는 어린 친구들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감 좋고 발 빠른 기업들은 NFT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인력을 대거 투입하며 다양한 활용 방법과 비즈니스 모델을 궁리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미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도 NFT산업의 퀀텀 점프(전년 대비 거래액 370배 성장)와 이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들여다보면 생각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NFT는 소유나 경험을 넘어 정체성 그룹의 구성원으로서의 신분을 나타내는 역할까지 하며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뒤집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BAYC커뮤니티가 초창기 단 50개만 한정판매했던 캐릭터가 지금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막강한 가상세계 멤버십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특정 NFT거래를 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가상 커뮤니티 공간들이 늘고 있고, 민팅을 통해 본인의 SNS 프로필 사진을 자동으로 갈아 끼우는 행위가 Z세대들 사이에서 쿨한 인증으로 여겨지며, 최초의 유튜브 영상이나 과거 화제가 되었던 생방송 클립같이 최초성을 갖는 콘텐트를 성지순례하듯 NFT로 사들이는 신개념 거래가 벌어지고 있다. 비전·공감·참여·재미· 취향으로 대변되는 NFT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며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들이 키를 쥐고 있기에 파급력과 응용범위가 예측하기 힘들 정도다.
앞으로는 가상경제에서 거래해 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의 간극은 마치 다른 세상을 사는 것처럼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한 공간에 살고 있지만 가상세계와 토큰경제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한 같은 지구에 살아도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향은 LG전자 고객경험혁신담당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