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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5000 막고 개미 죽이는 증권 범죄…뒷북수사가 방조범 [Law談-김영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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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분야에서 주로 취재를 하다가 증권·금융 쪽으로 출입처가 변경된 선배 기자를 만나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었다. 새로운 영역의 취재 소감을 묻자 선배는 “이쪽은 신뢰하기가 어렵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증권·금융 분야 취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단호히 시장의 불신부터 거론한 이유가 무엇인지 소상히 묻지는 않았으나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가급적 긍정적 의미의 신선한 경험을 듣기 원했던 필자로서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코스피가 오름세로 출발한 3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관계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오름세로 출발한 3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관계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2월 결산 상장법인을 기준으로 국내 자본 시장의 전체 주식보유 비율은 개인 51.1%, 법인 36.1%, 외국인 12.8%로 개인과 법인·외국인의 비중이 비슷하다. 다만 시장별로는 차이가 있는데 유가증권 시장에서는 개인이 37%, 법인은 43.9%, 외국인은 19.1%로 개인에 비해 법인·외국인의 비중이 높은 반면 코스닥 시장에서는 개인이 68.8%, 법인이 26.3%, 외국인이 4.9%로 법인·외국인에 비해 개인의 비중이 높다.

시세 조종 등과 같은 불공정거래의 상당수가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 발생하는 것도 코스닥 시장에서 개인 비중이 높은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거기에 개인은 법인·외국인에 비해 정보력과 자본 규모 등 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힘에서 열등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카카오페이 임직원들의 대량 스톡옵션 행사가 ‘먹튀 논란’을 빚었고,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 분할 상장이 외국인들의 공모차익 실현 속에 투자자들 간 갈등과 피해 논란을 유발하고 있어 안타깝다.

코스피 지수 5000은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서는 달성하기 어렵다. 자본시장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개미들을 울리는 불공정 거래에 대한 대대적 단속과 엄정한 처벌이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자본시장 범죄는 ‘치고 빠지는’ 특성이 있어서 적시 대응이 필요하다. 다수가 조직적으로 은밀히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거래소의 시장감시와 심리, 금융감독원의 조사, 증권선물위원회의 심의·․의결 및 고발을 거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구조여서 각 단계별로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비효율적이다.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필자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으로 부임해 미제 사건을 일별해봤더니 사건 발생일로부터 수년이 넘어 검찰에 이첩된 사건들도 있었다. 오래된 사건은 현실적으로 증거 확보가 쉽지 않아 검찰에서도 외면받고 수사도 유야무야 종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중요사건에 대해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적용해 증권선물위원회의 심의·의결을 생략하더라도 범행 발생 후 검찰의 수사 착수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자본시장 범죄는 검찰과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한데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뒷북 수사’가 불가피하다. 다음 정부에서는 각 기관의 필요 기능을 떼어내 대규모 금융범죄수사청을 별도 신설해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범죄에 선제적·능동적·유기적으로 대응해주기 바란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의 코스피 신규상장 기념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의 코스피 신규상장 기념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증권 관련 세제 개편도 매우 중요하다. 주식 양도소득세는 주식 시장의 큰손인 대주주, 법인·외국인과 개미투자자들 간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관점에서 검토하고, 거래세는 장기 보유자를 확실히 우대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할 것이다. 개인의 스톡옵션 행사가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행사 시기와 방법을 규제하고, 신사업 회사의 물적 분할 상장 시 모회사 주주의 실효적 보호 방안을 심사 요건에 포함하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이재명, 윤석열 두 대선 후보가 자본시장에 대한 대책을 각각 발표했다. 내용상 차이는 있으나 ‘개인투자자 보호,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 개선’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다만 두 후보 모두 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디테일 제시는 부족했다. 자본시장 문제는 여야와 상관이 없다. 앞으로 보완 대책이 나오겠지만, 목표는 분명하다. 자본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에게 드리워진 구조적 불공평을 고치고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그것이다.

로담(Law談) 칼럼 :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

주식인구 800만, 주린이 2000만 시대.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알아두면 도움되는 자본 시장의 현안을 법과 제도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시장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제안도 모색합니다. 암호화폐 시장 이야기도 놓칠 수 없겠죠?

김영기 변호사

김영기 변호사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대검찰청 공안3과장/전주지검 남원지청장/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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