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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밤’ 문화의 몰락…노래방 2600개, 주점 1만개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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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연말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지구의 술집과 식당, 노래방에 불이 꺼진 모습.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정부의 밤 9시 영업제한 조치로 간이주점·호프집 등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뉴스1]

지난해 연말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지구의 술집과 식당, 노래방에 불이 꺼진 모습.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정부의 밤 9시 영업제한 조치로 간이주점·호프집 등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2년여 거리두기 방역 조치가 이어지면서 자영업계엔 강제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쇠퇴가 두드러지는 건 한국 특유의 ‘방’과 ‘밤’ 문화다.

3일 국세청이 100대 생활업종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1월 노래방은 2만7779개로, 2019년 11월(3만421개)보다 2642개(9.5%) 줄었다. 비교 시점인 2019년 말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전이다. 이 기간 PC방은 10.5%, 독서실은 4.2% 감소했다. 이들은 모두 한국 특유의 ‘방’ 문화가 자리 잡았던 공간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10년째 노래방을 운영하는 이모(57)씨는 “폐업 신고를 안 했을 뿐 사실상 문은 계속 못 열고 있고, 동네(합정동) 노래방 중 15%가 코로나19 이후 폐업했다”며 “2, 3차로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보니 청탁금지법, 워라밸 기조가 매출에 ‘잽’을 날렸고, 코로나19가 오면서 ‘K.O’ 된 꼴”이라고 말했다.

사라지는 한국의 ‘방’과 ‘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사라지는 한국의 ‘방’과 ‘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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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노래방은 모두 특정 공간에서 단체로 즐기는 목적으로 찾는다. 독서실은 폐쇄 공간에서 일행 외 인물을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PC방과 유사점이 있다. 주로 도심에 위치해 연인이나 친구 간 모임이 이뤄지기도 한 모텔은 2년 전보다 7.5% 줄었다. 독서실은 개방형 공간에 커피숍 형태로 운영하는 스터디 카페로 대체되고 있다.

‘밤’ 문화의 상징인 술을 파는 간이주점과 호프는 더 많이 폐업했다. 간이주점은 2년간 3695개(33.8%)가 줄어 100개 업종 중 감소 폭이 가장 컸다. 간이주점은 소주방 같은 선술집을 뜻한다. 같은 기간 25% 사라진 호프전문점이 그 다음이다. 국세청이 따로 통계를 집계하지 않지만 유흥주점의 감소세는 더 가파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완전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식사하는 걸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예컨대 개별 룸 형태가 보편적인 일식전문점은 이 기간 1만8165개에서 2만170개로 늘었다. 증가율 11%로, 같은 기간 한식전문점(4.5%), 분식점(2.4%)과 두 배 이상 차이 난다.

이런 변화를 단순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볼 수 없다는 진단도 있다. 밤과 방이라는 한국식 문화가 이전부터 쇠퇴했고, 코로나가 이를 앞당겼다는 해석이다. 코로나19 전에도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뜻의 ‘워라밸’ 열풍이 불었고, 퇴근 후 회식이나 모임은 줄어왔다. 코로나19가 비대면 업무를 부추겼듯 밤·방 문화 변화를 더 빠르게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소비층인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집단이나 회사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영업 구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며 “여기에 정부의 방역 조치가 더해지면서 관련 업종의 쇠퇴를 급속히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PC방·노래방·독서실 등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서서히 감소했다. PC방은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사이에 3.1% 줄었고, 노래방(3.2%)·독서실(2.9%)·모텔(2.1%)도 감소했다. 최근 2년과 비교하면 줄어드는 속도에서 큰 차이가 나지만 추세 자체는 같다. 해외여행이 막힌 영향도 있지만, 가족 단위 여행 수요 증가로 펜션은 1만1089개(2018년)→1만3545개(2019년)→1만9940개(2021년)로 늘었다. 모텔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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