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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원 산후도우미가 아동학대까지…"이모님 따라 복불복"

중앙일보

입력

누워있는 아기.(※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 셔터스톡

누워있는 아기.(※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 셔터스톡

수도권에 사는 A씨(39)는 지난해 가을 만삭인 몸을 이끌고 분주하게 오간 날들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과 아이를 돌봐줄 산후도우미를 구하기 위해서 사회서비스센터 여러 곳을 찾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산후도우미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출산 두 달 전부터 움직인 것이다.

검토 끝에 B센터로부터 산후도우미를 지원받기로 결심했다. 전국 곳곳에 지사를 둔 대형 센터여서 믿음이 갔다고 한다. 출산 3주 뒤인 지난달 초부터 60대 산후도우미를 만났다. 24시간 집에 머무르는 방식으로 첫 주는 정부지원을 받고 나머지 3주는 자비를 들여 한 달간 이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졌다. 산후도우미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서비스 표준’을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산모건강관리, 식단관리, 아이 건강관리 등에서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나는 스트레스 등으로 모유량이 급격히 줄고 태열이 있던 아이는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가야 했지만, 센터 측의 조치는 없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서비스 개선과 매뉴얼 숙지를 요청했지만, 센터 측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표준 매뉴얼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용자와 사용자가 분쟁할 여지가 생기고 있다.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체계적 서비스가 절실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들쭉날쭉 서비스에 “복불복” 논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서비스 표준. 자료 보건복지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서비스 표준. 자료 보건복지부

정부지원 산후도우미(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부 산모들 사이에선 산후도우미의 서비스 품질에 대해 “사실상 복불복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모자보건법에 따라 산후도우미를 제공한다. 출산 후 60일 이내 산모가 이용권을 사용하면 제공기관이 정부지원 산후도우미를 배정한다. 산모의 영양관리, 신생아 수유 지원, 산모·신생아 세탁물 관리 및 청소 등이 주 업무다.

민주당 허종식 의원실이 받은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산후도우미 관련 지원액은 최근 5년간 계속 늘었다. 2016년 국비 예산으로 약 121억원이 투입됐고, 2020년엔 약 950억원을 지원했다. 제공인력도 늘면서 최근엔 1만 8000여명이 산후도우미로 활동한다. 2020년 7월부턴 기준중위 소득 120%인 가정으로 지원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예산이 늘었는데도 정부지원 산후도우미가 아동을 학대하는 등 문제가 잇따르면서 실효성 지적이 나왔다.

산후도우미 결격기준, 법으로 명시했지만…

강신우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지난달 국회 문턱을 넘어 오늘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사진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강신우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지난달 국회 문턱을 넘어 오늘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사진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복지부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오는 6월부터 산후도우미에도 자격 기준이 생긴다. 아동학대 관련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 등은 결격 사유가 된다. 산후도우미의 결격 사유를 확인하는 경우에 한해 범죄경력을 조회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18세 이상에 건강한 신체를 갖췄다면 지정된 교육기관에서 교육 60시간 받은 뒤 누구든 산후도우미가 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여성가족부의 아이 돌봄서비스처럼 자격 기준과 결격사유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복지부는 ‘2022년 산모 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 안내’ 지침을 만들어 오는 3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관련 교육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사회서비스센터에서 산후도우미를 교육하는 강사에 대한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수보다 질이 중요”
하지만 품질관리에 대한 개선책이 빠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지원사업에 대한 현장평가가 줄어들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재희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치권에서 산후도우미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하는데 수보다 질이 중요하다”며 “인력이 늘지만, 교육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산후도우미의 아동학대 등 문제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품질 평가 개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기 위해선 관련 연구용역 등을 해야 한다”며 “산후도우미를 다른 사회서비스와 분리해 관리·감독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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