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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온 메타버스, 호모 사피엔스의 신대륙 될까[BOOK]

중앙일보

입력

메타버스 사피엔스
김대식 지음
동아시아

현대의 뇌과학은 근대의 인식론과 달리 우리 뇌가 현실을, 감각기관의 정보를 곧이곧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줬다. 예를 들어 감각기관의 정보대로라면 눈이 무슨 풍경을 보든 망막의 혈관이 겹쳐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이는 뇌가 영상을 처리할 때, 모든 프레임을 곧바로 처리하는 대신 프레임과 다음 프레임 사이의 차이 값을 계산하는 효율성을 추구하며 혈관을 지워버린 결과라는 게 이 책의 설명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은 뇌가 재구성한 것, 혹은 만들어낸 것인 셈이다.

뇌과학자가 쓴 이 책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디지털 현실이 부상한 맥락을 뇌과학과 컴퓨터 과학, 그리고 인류 역사의 다면적 흐름을 통해 풀어간다.

데이터 학습…기계가 만드는 현실

이에 따르면 뇌만 아니라 이제 기계도 현실을 만들어낸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구분하는 것처럼, 정량화가 불가능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은 인간에겐 쉬워도 컴퓨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 얼굴을 방대한 데이터로 학습한 컴퓨터는 어느덧 새로운 데이터, 즉 진짜 사람 같은 얼굴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정답에 정답이란 라벨을 붙여 학습하는 과정과 정답·오답의 차이 값을 계산해 0이 될 때까지 인공 신경세포들의 연결을 수정하는 과정까지 결합한 결과다. 이 모두가 2012년 이후, 겨우 10년 새 벌어진 일이란다.

SKT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 이용자들이 아바타를 통해 새배 인사를 나누는 모습. [뉴스1]

SKT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 이용자들이 아바타를 통해 새배 인사를 나누는 모습. [뉴스1]

하지만 디지털 현실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는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메타버스 개념은 너무 일찍 등장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유행이 된 것은 팬데믹이 탈현실화 같은 새로운 트렌드를 가속한 결과라고 풀이한다. 이를 비롯해 여러 트렌드를 가속한 2020년이 21세기의 진정한 시작이라는 시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디지털 원주민, 아날로그보다 디지털 현실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세대의 등장도 주목한다. 결국 메타버스는 빠르거나 늦거나 언젠가는 구현될 현실이고, 이는 인류 역사에서 유목-정착의 전환 이후 거대한 변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데 미래의 전망은 늘 의구심이 따르는 법. 저자의 비유처럼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그랬듯 지금이 디지털 대항해 시대인지, 나아가 인류가 디지털 신대륙의 이주민이 될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책으로 충분하진 않아 보인다. 달리 말해 150여쪽의 부담 없는 분량 안에 핵심과 맥락을 이어주는 것은 이 책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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