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기름 강아지로 호랑이 여러 마리 잡는 방법

중앙일보

입력 2022.01.19 10: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77)

호랑이해니 호랑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아시다시피, 우리 옛이야기에서 호랑이는 사람 잡아먹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효자, 효부를 도와주는 산신령이기도 하다. 지난번엔 호랑이도 한 손으로 눌러 버리는 힘 센 선비 이야기도 했었지만, 호랑이는 힘으로만 잡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거의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호랑이 잡는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다. 별별 기상천외한 방법이 다 등장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그냥 건조하게 하면 재미없다. 구연 자료의 사투리를 거의 그대로 옮겨 본다.

한 사람이 강아지를 기르는데 아마 이 사람이 강아지를 귀엽게 기르던 모양이여. 강아지를 기르면서 참기름만 디립다 멕여서 길렀대. 뭐, 발발이 같은 쪼끄만 강아지를 키우는데, 참기름만 멕여서 아주 강아자기 반들반들하구 고만 매끈매끈하던 모양이야. 주인이 산골에 초가 삼간 짓구서 혼자서 살든 모양인데 밤에 이놈으 강아지가 나갔다 들어오믄 아주 땀을 흠싹 흘리구 들어오구 흠뻑 젖어서 들어오구 그런다 말이여. 거 이상하다 하구서 밤에 가만히 지켜봤대. 밤이 이슥해지니까 산에서 범이 수십 마리가 내려왔대. 내려와 가지구서는 입을 인저 범이 ‘아’ 하구 벌리믄 인저 강아지가 범의 입으로 쑥 들어가믄, 이 매끈매끈하니까 응 밑구멍으루 쓱 나온다 말여. 또 다른 놈이 그 번갈아 가믄서 인지 강아지를 물어 놓어믄 또 밑구멍으루 나오믄 또 다른 놈이 물구, 그래 여러 번 하니까 그만 강아지가 털이 홈싹 젖어서 그렇게 나오더래. ‘야, 이거 호랑이 잡을 수가 났다.’ 하구선 강아지 허리에다가 끊어지지 않는 삼노끈을 든든하게 강아지 허리에 잡아매서는 내보내니까, 범이 강아지를 집어삼키믄 밑구멍으루 나오구 또 다른 놈이 집어삼키믄 밑구멍으로 나오구 해서 범 여러 마리를 줄줄이 꿰어놓은 거야. 그렇게 하구선 줄 한쪽 끝을 느티나무에 매두고는 절굿공이로 이놈 때려잡구, 저놈 때려 잡고. 범 수십 마리를 잡았다구. 이 허황한 얘기지만 인제 시골서 그런 얘기가 있어요.

(한국구비문학대계 1집 1책, 272~273면, 수유동 설화 13, 구연자 김용규)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 호랑이.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 호랑이.

강아지를 참기름 먹여 키웠다는 거나, 참기름 먹여 키웠더니 강아지가 반들반들 매끈매끈했다는 거나, 그놈을 범이 꿀떡 삼켰더니 반들반들 매끈매끈해 똥구멍으로 그냥 쑥 나왔다는 등의 내용이 꽤 허황되긴 하다. 그걸 보고는 또 강아지 허리에 삼노끈을 매달아 호랑이를 줄줄이 꿰어 잡고, 그렇게 엮여 꼼짝달싹 못 하는 호랑이들을 절굿공이로 때려잡았다는 것까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랬을까. 다른 버전에서는 게으름뱅이 아들이 어느 날 어머니에게 모시를 달라고 해 새끼줄을 꼬고 몇 날 며칠 기름을 발라 길들이고,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 달라고 해 기름 발라 키워서는 모시 새끼줄에 기름 강아지를 묶어 호랑이 수십 마리를 잡기도 하였다. 구연자는 이 이야기를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호랑이 얘기해 달라고 졸라서 들은 것이라고 하면서, 이 얘기를 듣고 ‘잔등이가 부러지게’ 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 잡은 게으름뱅이 이야기는 안 잊는다고 한다. (한국구비문학대계 4집 4책, 284~287면, 웅천면 설화 17, 구연자 황용연)

여기에 등장하는 게으름뱅이의 모습은 아주 전형적인 것이다. 이 아들은 열다섯 살, 스무 살이 되도록 방 안에서 잠만 잔다. 더 구체적으로는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싸는’ 게으름뱅이다. 어찌 보면 아주 효율적인 동선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창의적인 인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정말 차려주는 밥만 축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놀고먹은 사람이었다면 굳이 태모시를 구해 달라고 해 그걸로 새끼를 꼬거나, 강아지를 참기름 먹여 키우는 생각을 해내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앞의 이야기에 비해 그나마 그럴듯한 배경이 마련되는 셈이다.

호랑이는 종종 안전한 집 안을 벗어났을 때 바깥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목숨마저 위태롭게 하는 위협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것은 백인재(百人岾) 고개와 같이 사람이 100명은 모여야 넘어갈 수 있는 산이 있던 것처럼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호랑이가 실제로 깊은 산 곳곳에 그 큰 아가리를 떡 벌리고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내게 다가오는 세상은 그렇게 호랑이의 아가리와 같이 나를 집어삼킬 듯 무섭게 다가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침 이 글을 쓰던 중, 오래전 직장 동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몇 년 만에 대하는 이름이라 ‘이분이 누구시더라...’ 한참 갸웃갸웃하다 겨우 떠올리고 전화를 받았다. 반가워하는 듯하면서도 이미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는 것이 그야말로 기분이 쎄 했다. 역시나, “돈 얘기다” 하고 말을 시작한다. 다른 동료에게도 전화를 했었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얘기를 들어줄 수는 있다”고만 했단다. 한참 붙들고 하소연을 했던 모양이다. 기름 강아지로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쓰다가 생각한다. 법원이니 노동청이니 한 번도 가 볼 일이 없던 사람이 송사에 휘말리고 법원에서 날아오는 서류를 받아보면서 너무너무 겁이 났다고 하는데, 이런 세상이 호랑이일까, 몇 년 만에, 그것도 신년 초에 연락해서는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하는 이런 전화를 무서워하며 받게 되는 이 마음이 호랑이일까.

현대 사회의 '기름 강아지'는 이렇게 기름 구덩이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검색된다. 다행히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이들을 살렸지만, 기름 바른 강아지로 호랑이도 때려잡던 그 시절, 그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현실이다. [사진 Animal Aid Unlimited 유튜브 캡처]

현대 사회의 '기름 강아지'는 이렇게 기름 구덩이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검색된다. 다행히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이들을 살렸지만, 기름 바른 강아지로 호랑이도 때려잡던 그 시절, 그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현실이다. [사진 Animal Aid Unlimited 유튜브 캡처]

하필 나는 오전에 『별것 아닌 선의』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했다. 아주 사소한 선의가 동심원의 파장을 일으키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참가자들의 경험담을 듣고 감동 가득 받았던 차다. 마침 그걸 알기라도 하듯이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전화를 했을까 싶으면서 눈물콧물 훔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어쩔 수 없이 얼마를 보내주기로 하였다. 분명 세상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것이지만 기름 강아지 같은 귀여운 방법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호랑이 잡는 이야기들 대부분 꽤 발랄한 내용을 가진 걸 생각해 보면, 두려움에 잠식당하기보다 강아지에게 기름칠하듯 엉뚱하지만 효과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여유를 우리 옛이야기들이 알려주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런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세상살이가 그리도 어려운 것일 테지만, 다음 호에도 쓸 호랑이 잡는 이야기들이, 기왕 맞닥뜨린 호랑이 앞에서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