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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용이다!”이말에 용틀임 관둔 이무기 ‘꽝철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74)

슬슬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다. 이 감염병과 불안의 시대에도 연말은 다가오고 직장인들은 연말결산에 바빠졌으며, 거리에는 트리 조형물과 색색의 조명이 빛을 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한 해 결산할 일이 별로 없다. 시도하는 일마다 실패했고, 작게나마 꾸준히 한 일에서 심리적 성취감을 느끼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얻거나 변화한 것이 없다. 본래 했어야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자 싶어 실적으로 적을 일을 두어 건 한 것뿐이다.

한 매체에서 ‘실패학’을 주제로 한 글을 청탁받았기에 이무기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글은 10월호에 게재되다. 이 글을 필두로 ‘십년 공부 이야기’도 고구마 줄기처럼 끌어 올려져 이 지면에서 다룬 바 있다. 올해 어떤 일을 시도하였을 때, 나름대로는 이만하면 준비가 좀 되지 않았나 싶었다. 이전에도 시도했던 일이었고, 그때 부족했던 부분을 충분히 파악해 대비했다고 생각했고, 완성된 기획안이 내가 봤을 땐 꽤 그럴듯한 모양새와 밀도를 갖추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기에 한동안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때 떠올린 이야기가 용이 되려다 꽝철이가 되어 바위 밑에 숨어 버린 이무기 이야기였다.

이무기는 미생, 미완의 상태를 상징한다. 사진은 영화 '디워(D-WAR)` 속 컴퓨터그래픽(CG)로 만든 이무기.

이무기는 미생, 미완의 상태를 상징한다. 사진은 영화 '디워(D-WAR)` 속 컴퓨터그래픽(CG)로 만든 이무기.

어느 바닷가 마을에 구렁이가 산다고 알려진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한 천 년쯤 묵은 구렁이가 승천하려고 용틀임을 하고 있는데, 그걸 본 한 여자가 “야, 저기 용이 올라간다” 하고 외쳤다. 구렁이는 용이 되려다 말고 깡철이가 되어 아직도 그 바위 밑에 살고 있다. 그 뒤로 바위 밑에서 안개가 퍼져 나오면 반드시 비가 왔다.

다른 동네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옛날에 깊은 산이 있었는데 그 산엔 대낮에 가도 구렁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한 나그네가 해도 져서 이미 캄캄하게 어두운데 그 산길을 가려고 하였다. 동네사람들이 깜짝 놀라 말렸지만 나그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넘어가는데, 갑자기 하늘이 “우닥딱딱 우닥딱딱” 소리를 내며 꽝꽝거리기 시작했다. 나그네가 주위를 둘러 보니 집채만큼 커다란 구렁이가 몸을 뒤틀고 있었다. 나그네는 그 모습을 보고 넙죽 엎드려 절하며 “아이고 용님. 용이 되어 올라가소서. 용이 되어 저 하늘로 승천하소서” 하고 열심히 빌었다. 구렁이는 몸을 몇 번 뒤튼 뒤 용이 되어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동안 이 구렁이는 용이 되어 승천하려고 하였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이 보고 겁을 집어먹고 놀라 자빠지거나 저기 용을 보라며 함부로 말하는 것을 듣고 승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나그네가 진심으로 빌어 준 덕에 용으로 인정받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뒤로 이 용은 나그네에게 복을 많이 주었고, 동네 사람들도 용이 보살펴준 덕에 잘살게 되었다고 한다.

구렁이가 한 천 년쯤 묵었을 땐 그냥 구렁이가 아니고 이무기라고 불린다. 비로소 용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인데, 그렇다면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로 오를 만한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떤 이무기는 때가 되어 자기 힘으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고, 마침 그때 누군가 그 존재를 믿고 응원해주었기에 더욱 힘을 내어 용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무기는 그 귀한 순간에 승천하지 못한다. “야, 저기 용이 올라간다” 하고 외쳤을 때, 어쨌든 그이의 눈에는 이 이무기가 용으로 보이긴 했을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 내뱉은 이 한마디가 이무기를 주저앉혔다는 것은 결국 이 이무기가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이무기는 자기를 용이라고 불러주었음에도 왜 주저앉게 되었을까. 구렁이도 아니고 용도 아닌 뭔가 어정쩡한 상태에서 하늘로 오르기 위해 용틀임하던 그 모습이 남에게 흉물스럽게 보이지나 않으려나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자기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지 두려워한다는 것은 조급함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겠다. ‘이만하면’, ‘지금쯤은’, ‘내가 이 정도는 되지’ 하는 마음에 금세 휘둘린다.

유명한 이무기 중에는 무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이무기도 있다. 『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 제5 ‘보양이목(寶壤梨目)’ 조에 실려 있으며, 경상북도 청도군과 경상남도 밀양시 등지에서 구전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승려 보양이 중국에 다녀오다 서해 용궁에 초청되어 불법을 전하였다. 서해 용왕은 금비단 가사 한 벌을 시주하며 자신의 아들 이목도 딸려 보냈다. 이목이 보양의 법사를 도우며 함께 지내던 어느 해 몹시 가뭄이 들어 온갖 곡식들이 타들어 갈 지경이 되었다. 이목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비를 내렸는데, 천제(天帝)가 자신의 허락 없이 비를 내린 데 몹시 노하여 이목을 죽이려고 했다. 보양은 얼른 이목을 법당 마루 밑에 숨게 하고, 천제가 보낸 사람들이 이목을 찾자 절 마당에 있던 배나무를 이목이라고 하였다. 천제의 사자(使者)는 배나무에 벼락을 때린 뒤 돌아갔다. 사자가 돌아간 후에 이목은 벼락 맞은 배나무를 다시 살려 놓았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기에서 ‘이목’은 ‘이무기’를 뜻하고, 발음이 비슷한 배나무를 지목하며 둘러댄 재치에 기댄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무기가 본래 용왕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귀한 존재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 못했음을, 왕 노릇을 할 만큼 성장한 존재는 아님을 또한 나타낸다. 용왕의 아들답게 비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을 발휘한 일이 긍정적인 결말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이목의 행동은 때에 맞는 일이 아니었음을 서사적으로 나타낸다.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적절한 때가 되지 못했는데, 함부로 능력을 과시하려 한 것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승천이 목표인 이무기는 구렁이에서 천 년의 시간을 통해 이무기로 한 차례 존재 변환을 이루었다. 그리고 용이 됨으로써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또 한 차례 존재 변환을 준비한다. 그렇게 엄청난 과업을 이루려는 순간에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무너진다는 것, 천 년의 시간이 그것도 버티지 못하게 하였다면 이 이무기는 천 년으로도 아직은 부족했던 것이다.

실패는 물론 아프고, 될 수 있으면 안 했으면 좋겠고, 심지어 절대 하면 안 되는 거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일이 그렇게 완벽할 수가 없어서 우리는 또 어떤 일에 성급하게 나서다가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럴 것이다. 천 년쯤 묵었으면 이제 뭐라도 될 것 같아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용틀임을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좀 못생긴 모습을 보이기도 할 거고, 아직 완성되지 못한 어정쩡한 모습을 누군가 보고 욕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 돕겠답시고 허락도 받지 않고 비를 내린다. 능력 발휘하면서 사람들 돕는 좋은 일도 하는 것인 줄 알았지만 함부로 나대서는 안 되는 때였다. 이무기가 상징하는 미생(未生), 미완(未完)의 상태를 이야기로 경험하면서 한 해를 정리해 볼 이 시점에 다시 적어본다. 나는 용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믿고 묵묵히 시간을 견디며 무르익기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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