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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긴머리 풀고 피칠갑…억울하게 죽은 원귀의 자기진술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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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75) 

조현명(1690~1752). 조선 후기 문신. [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조현명(1690~1752). 조선 후기 문신. [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조현명에 얽힌 이야기가 야담집인 『청구야담』에 전한다. 조현명은 어렸을 때 김시신과 그의 친척인 만행이라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 조현명에게 어린 시절의 경험은 소중한 추억이었는데, 김시신은 자식들의 혼사를 치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김시신의 묘를 옮기게 되어 제를 지낼 때 조현명은 문득 만행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조현명은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만행을 찾을 수 있었다. 조현명이 찾아갔지만 만행은 조현명을 알아보지 못했다.

“나를 기억하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마루로 모시니 그가 말했다.

“오십 년 전, 자네와 함께 파피리를 불며 죽마를 타고 노느라 땀을 뻘뻘 흘렸지. 그 뒤로 바다와 뽕나무밭이 여러 번 바뀌어 친구 중 태반이 황천길을 떠났네. 우리 두 늙은이만 남아 홀연히 마주하게 되었으니 가히 천고의 기이한 만남이구나.”

만행도 비로소 그날들이 기억났다. 서로 평생 살아온 일을 이야기하니 얼음 속 호박씨가 보이듯 아교와 옻이 다시 붙는 듯했다.

- 이강옥, 『청구야담』(상), 문학동네, 2019, 454-455면.

오십 년 전이라는 ‘시간’, 파피리를 불고 죽마를 타고 놀았던 구체적인 ‘사건’, 땀을 뻘뻘 흘리며 놀던 때의 ‘감정’ 등이 짧은 진술 안에 오롯이 담겨 있어 서사화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진술 덕에 만행도 기억을 떠올렸고, 함께 추억에 잠겨 즐거운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얼음 속 호박씨가 보이듯 아교와 옻이 다시 붙는 듯’했다는 표현이 참 절묘하다. 조현명이 말한 내용과 감정이 만행에게 전달됨과 동시에 만행의 기억과 감정 또한 오롯이 드러나면서 조현명에게 전달되는 수평적 교감의 상황을 나타낸다.

이 만남 이후 조현명은 가난에 허덕이던 만행의 처지를 보고 장작감(將作監)이라는 자리에 그를 추천해 벼슬을 받게 하였다. 이것이 그나마 형편이 나았던 조현명이 일방적으로 베푼 수혜이기만 할까. 만행을 만나 회포를 푼 일은 옛 친구를 그리워하던 조현명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 결과 만행도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으니 조현명의 경험 이야기, 즉 자기 진술은 두 사람 모두의 문제를 함께 해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자기 경험을 진술하는 ‘자기 진술(self narrative)’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서전, 구술생애담 등 구체적인 양식이 등장하고 있다. 자신이 경험한 일, 혹은 그동안 살아온 과정에 대해 타인에게 진술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발화자 개인에게 서사적 정체성을 부과하며 이로써 자존감을 높이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특정 경험이나 기억에 대해 청자에게 들려주기’ 혹은 ‘특정 경험이나 기억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 듣기·기록하기’가 치유적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특정한 맥락이 필요하다. 그 맥락이란 발화자와 수화자의 관계, 발화 이후의 서사 진행 등에 대한 구조적 탐색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탐색이 뒷받침될 때야 진술의 의미를 구체화할 수 있고, 이로부터 그 치유적 의미를 탐구할 수 있다.

옛이야기 속에서 자기 진술은 흔히 원귀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죽어 원귀가 되어서야 자신이 겪은 일을 남에게 드러내며 원한 갚기를 요청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예전 ‘전설의 고향’에서 흔히 등장하던 장면이다. 새로 부임한 원님이 밤늦도록 촛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는데 한 줄기 바람이 휘익 지나가며 촛불이 꺼지고 방문 밖에서 여인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구슬프게 울린다. 안 그래도 원님이 새로 부임해 오기만 하면 아전들은 다음 날 아침에 원님의 시신을 처리해야 하는 황당한 일을 여러 차례 겪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우리 주인공 담대한 원님은, “귀신이냐, 사람이냐!” 호통을 치며 원귀와 당당하게 맞대면한다. 이 정도 서슬은 보여줄 수 있어야 원귀의 한을 풀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긴 머리 풀어헤치고 소복을 차려입고, 때로는 피칠갑이 되어 입에 칼을 문 채 원님 앞에 나타났던 원귀는 그제야 입을 뗀다.

“저는 본시 본관 이방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계모와 그 동생이 이 집안의 재물을 탐내어 제가 혼자 있을 때 저를 찔러 죽였으니 이 원한을 풀어 주시옵소서.”

이때 원귀는 자신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소상히 알린다. 원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원님은 시급히 사람을 보내어 원귀의 시신을 찾아 검시하게 하고 이방과 계모, 계모의 동생을 잡아다 엄하게 심문하여 자백을 받은 뒤 이들을 처벌하였다.

원님과 원귀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원귀가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직접 원님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처음 관계 맺음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원귀가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를 원님에게 하였기에 원님이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원귀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가 판가름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원님이 원귀의 진술이 끝나자마자 바로 원귀의 아버지와 계모, 계모의 동생의 성명을 묻고는 마땅히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원님이 원귀의 진술을 적극적으로 경청하였고 감정적으로도 교감하였기에 이와 같은 약속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원님이라는 지위는 검시를 명하고 잘못을 밝히며 잘못한 자를 심문하고 처벌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애초에 원귀가 굳이 원님 앞에 나타난 것도 그러한 권위와 힘에 기대었던 이유도 있을 터. 다만 이 일은 여러 사람에게 함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 범인의 도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원귀의 자기 진술은 원님이 온전하게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원혼의 자기 진술은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폐쇄적 특징을 갖는다.

영화 '화양연화' 스틸컷.

영화 '화양연화' 스틸컷.

이렇게 보면 원님과 원귀의 관계는 마치 상담사와 내담자의 관계와도 같다. 비교적 내밀한 공간과 환경 속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진술하되 그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트집도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암묵적 약속과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속내를 털어놓는다는 것, 있었던 일, 겪은 일을 진술한다는 행위는 발화자에게는 사실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것이 쉽게 되는 일이나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정말 끝끝내 무덤까지 가져갈 수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도저히 그것이 되지 않을 때는 대나무 숲에서야 외마디 외침으로 울리기도 할 것이고, 영화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어느 깊고 깊은 폐허 속 돌벽의 구멍 안에라도 풀어놓을 수밖에 없기도 할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이 되어간다.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어제가 지났으니 오늘이 있고, 오늘이 가면 또 내일이 오는 것이니 그렇게 매일은 반복되며 딱히 구분점을 갖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굳이 어느 때를 잡아 그 이후부터는 새로운 1년으로 계산을 한다. 한 해의 마무리라는 것에는 연말정산도 있을 것이고, 일 년 동안 보았던 책이나 영화를 정리하는 일도 될 것이고, 올해 초에 무슨 다짐을 하였던가 떠올리며 그 다짐을 새해 초에도 또 할 것인가 생각해 보기도 할 것이다. 다이어트 결심은 매년 1월 1일에 하는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지만 내 몸은 이 년 전이나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고 일 년 후에도 그대로일 가능성이 더 크다.

아무튼 한 해의 마무리를 꼭 반성으로만 할 필요도 없겠다. 하지 못한 다이어트를 아쉬워하면서 하나마나 한 다짐을 또 새해 첫날 하기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마무리를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어떤 관계는 그저 스쳐 지나가고 잊혀도 인생에 큰 영향 없는 것일 수 있지만, 조현명이 그랬던 것처럼 굳이 새삼스레 기억을 떠올려 다시 찾아볼 인연도 있을 것이다. 혹은 원귀가 되기 싫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 밝힐 것은 담대하게 밝히고, 담대하게 들어주고 해결할 일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방역지침이 시행돼 모이기 좋은 연말에 우리는 또 꽁꽁 갇혀 있지만, 이참에 맺고 풀어야 할 관계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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