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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킹] 상큼함vs달콤함, 당신의 딸기 취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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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사러 갔다. 빨갛게 익어 모양 좋게 진열된 딸기에서 달콤한 향이 뿜어져 나온다. 자세히 보니 이름표들이 달려 있다. 그중에 ‘금실’이 눈에 띈다. 그 순간, 누군가 두 개 있던 금실 중 하나를 집어간다. 왜인지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노련한 직원이 한마디 거든다. “오늘 마지막 금실입니다.” 결국, 자석에 끌리듯 하나 남은 금실을 얼른 집어 들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우리 딸기 품종은 18개다. 사진은 국내점유율 2위인 금실. 사진 농촌진흥청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내에서 판매하는 우리 딸기 품종은 18개다. 사진은 국내점유율 2위인 금실. 사진 농촌진흥청국립원예특작과학원

금실은 우리 딸기 품종 중 하나다. 농촌진흥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판매하는 우리 딸기 품종은 18개(실제로는 더 많다)다. 그중에 2021년 국내점유율 2위를 기록한 품종이 금실이다. 2위라고는 하지만 점유율은 고작 4%다. 3위 ‘죽향’은 2.8%, 4위 ‘매향’은 2.5%다. 반면 1위 점유율은 84.5%다. 주인공은 바로, 한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설향’이다.

이들이 태어난 해를 보면 조금 이해가 간다. 설향은 2005년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에서 선보였고, 금실은 2016년 경남농업기술원, 죽향은 2012년 담양군농업기술원 출신이다. 국내 딸기 시장을 주도하는 설향만 놓고 봐도 올해로 17년밖에 되지 않았다. 설향보다 먼저 만들어진 딸기가 충남농업기술원의 ‘매향’인데, 출생연도는 2001년이다. 역사가 짧은 만큼 이제야 품종 다양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 딸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설향. 사진 농촌진흥청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내 딸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설향. 사진 농촌진흥청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내 딸기 역사가 짧다고는 하지만, 그중 설향의 점유율이 유난히 높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먹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설향은 맛이 좋다. 다른 딸기에 비해 당도가 높은 편은 아니라고 하는데, 산도가 낮고 과즙이 많아 시원하고 상쾌한 맛이 있다.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 설향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준 자식과도 같다. 사실, 설향보다 먼저 나온 매향은 맛과 모양이 우수하고 경도도 단단했지만, 재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설향은 병해충 저항성이 높다. 딸기는 보통 흰가루병에 약한 편인데 설향은 흰가루병에 강하다. 또 균일한 딸기를 많이 수확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맛과 모양이 우수하지만 재배가 어려운 매향. 사진 농촌진흥청국립원예특작과학원

맛과 모양이 우수하지만 재배가 어려운 매향. 사진 농촌진흥청국립원예특작과학원

설향에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딸려 있다. 2002년 우리 정부는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했고 외국산 품종에 관한 로열티를 지급하게 됐다. 가입 10년 안에 품종보호대상을 전체 작물로 확대해야 했다. 일본 품종 딸기가 국내 98%를 차지했던 시절이다. 그리고 2006년 한국과 일본의 딸기 로열티 협상 당시 일본은 한 포기당 5원씩, 연 30억 원의 로열티를 요구했다. 동시에 일본 품종인 ‘레드펄(육보)’과 ‘아키히메(장희)’를 일본으로 수출하는 일도 금지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딸기 품종 육성에 돌입한 계기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최수현 연구사는 “공동 연구를 통해 우량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은 전국 도농업기술원, 시군농업기술센터와 함께 2006년 딸기연구사업단을 출범했다”고 말한다. 물론 UPOV에 가입한 후에야 딸기 연구를 시작한 건 아니다. 규모가 작긴 했으나 국내 딸기 육종 연구는 1970년대 초반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현재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시작했다. 1994년도에는 지역 특화연구소들이 생겼으며, 이때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지금의 딸기연구소)’도 설립됐다. 그때부터 이어진 연구가 2001년 매향, 2005년 설향이란 결과물로 나왔다.

설향은 국내 점유율을 빠르게 높여갔다. 2006년 8.6%에서 시작해 2008년 36.8%, 2009년 51.8%를 거쳐, 등장한 지 10년만인 2015년에 81.3%를 찍었다. 그 결과 2021년 국산 딸기 품종 보급률은 96.3%에 달했다. 같은 해 일본 품종인 장희의 보급률은 3.6%다. 참고로 2005년 국산 품종 보급률은 9.2%다. 설향이 등장하고 딸기 생산액은 15년 사이 1.9배가 늘었다. 채소 작물 중 가장 규모가 큰 게 바로 딸기다.

탄탄해 보이는 딸기 시장이지만, 그 가운데 우려도 있다. ‘우공의딸기정원’을 운영하는 곽연미 대표는 “한 품종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선 소비자는 다양한 딸기 맛을 즐길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딸기맛’ 역시 설향이 베이스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또, 만에 하나 바이러스라도 퍼지게 되면 시장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각 지역의 농업기술원에서 다양한 품종을 육종하는 이유다.

설향과 금실 맛을 비교해보니 금실은 설향에 비해 향이 진했다. 사진 이세라

설향과 금실 맛을 비교해보니 금실은 설향에 비해 향이 진했다. 사진 이세라

이런 배경을 알고 나니 금실 맛이 더 궁금해진다. 마침 집에 있던 설향과 맛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실험 대상은 가족과 지인뿐인, 무척이나 사적이고 소박한 테스트다. 먼저 향을 비교해봤다. 금실은 설향에 비해 향이 진했다. 피실험자 중 한 명은 “허브향이 난다”고 표현했으며 먹을수록 향이 진하다고 답했다. 또 다른 피실험자는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선호할 것 같고, 반대라면 불호일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 자료를 살펴보면, 금실에는 ‘약한 복숭아향’이 있다고 설명돼 있다. 충남농업기술원 딸기연구소에서 신품종 개발을 담당하는 김현숙 팀장은 “딸기라고 해서 딸기향 한 가지만 나는 게 아니다. 유전적으로도 복잡하고 다양한 향이 관여한다. 딸기라고 느끼는 고유의 향도 있지만, 포도와 복숭아, 파인애플, 멜론의 향이 나기도 하며, 머스크향도 있다. 세계적인 트렌드도 복숭아향이나 포도향이 강한 딸기를 육종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금실만이 아니라 킹스베리, 알타킹, 하이베리, 죽향 같은 품종들도 다양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설향은 과즙과 과육이 부드럽게 퍼지고 청량한 맛이 특징이다. 사진 농촌진흥청국립원예특작과학원

설향은 과즙과 과육이 부드럽게 퍼지고 청량한 맛이 특징이다. 사진 농촌진흥청국립원예특작과학원

맛은 어떨까. 김현숙 팀장은 “설향은 이온 음료 ‘2%’와 비슷한, 상큼하고 시원한 맛”이라고 표현하는데, 일리가 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과즙과 과육이 부드럽게 퍼지고 청량음료처럼 상쾌하다. 이에 비해 금실은 “첫맛부터 달콤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첫맛은 금실, 뒷맛은 설향이 좋다”는 말도 있었다. 금실은 과육이 쫀쫀해서 씹는 것만으로 경도가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예로 일주일 가깝게 금실을 냉장 보관했는데 거의 무르지 않았다. 최수현 연구사는 “경도가 높은 금실은 수출도 많이 된다. 현재 재배면적이 점차 증가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정리하면 “잘 무르지 않고 향이 좋은 금실은 선물용으로 제격”이며 “설향은 가격 대비(다른 품종들이 설향보다 비싼 편이다) 맛이 훌륭하다”는 것이 총평이다. 생각지 못한 의견(?)도 나왔다. “지금은 진짜 딸기 제철이 아닌데…”라는, 한 피실험자의 항의 같은 의견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한때 딸기는 봄기운이 완연한 5~6월이 제철이었으니까. 철이 빨라진 결정적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품종에 있다. 그 대표 품종은 역시 ‘설향’이다. 최수현 연구사는 “이전에 주로 먹던 일본 품종 육보에 비하면 설향은 수확이 빠르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이유는 재배법이다. 김현숙 팀장은 “새 품종이 나오면 그에 맞는 재배법을 연구한다. 이전에는 반촉성재배가 주를 이뤘는데, 설향이 나오면서 촉성재배가 시작돼 겨울부터 생산이 가능해졌다. 촉성재배 품종이 대량으로 쏟아지며 제철도 빨라졌다”고 설명한다. 촉성재배는 난방을 이용해 생육 단계를 앞당기는 시설 재배 작형이다. 최수현 연구사는 “9월에 딸기를 심어 10월 말 보온을 시작하고 11~12월에 첫 수확이 이루어지는 촉성재배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딸기 작형이 됐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설향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딸기를 겨울 과일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딸기가 지금처럼 달지 않아 설탕에 찍어 먹던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딸기의 진짜 제철은 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만 제철을 ‘수요와 공급이 많아지는 때’로 정의한다면 딸기를 겨울 과일이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다. 최수현 연구사는 “딸기는 겨울부터 생산돼 봄에 생산량이 가장 많다. 품종에 따라 수확 시기가 달라지는데, 가장 빠른 수확은 10월~12월이지만 생산량이 많은 건 3월이다. 길게는 6월까지도 생산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이유로 딸기 제철은 겨울부터 봄까지 늘어났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맛은 겨울이 최고다. 곽연미 대표는 “딸기는 추운 겨울에 서서히 익기 시작한다. 햇살을 오래 받아 자라는데, 그렇다는 건 광합성을 오래 해서 당 성분을 많이 저장한다는 뜻이다. 겨울에 딸기가 맛있는 이유”라고 말한다. 또 겨울은 야간 온도가 낮아 과실 내의 당 축적과 함께 과실 비대도 천천히 일어난다. 그만큼 크고 맛있는 딸기가 생산된다. 반면 날씨가 상대적으로 따뜻해지면 빨리 익고, 그만큼 당도가 떨어진다.

딸기 품종 비교. 사진 왼쪽과 가운데는 알타킹, 오른쪽은 킹스베리다. 사진 이세라

딸기 품종 비교. 사진 왼쪽과 가운데는 알타킹, 오른쪽은 킹스베리다. 사진 이세라

딸기맛 비교에 재미가 들려 다른 품종들도 맛 테스트를 해봤다. 덜 익은 듯할 때가 가장 달다는 알타킹은 향긋한 냄새가 좋고, 킹스베리는 단맛과 향이 강화된 설향의 큰 버전 같다. 죽향은 새콤달콤한 맛이 강하고 메리퀸은 무엇보다 모양이 예쁘다. 맛 테스트의 장점은, 비교해서 먹을수록 취향이 뚜렷해진다는 점이다. 반면 부작용도 있다. 딸기값으로 ‘탕진잼’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품종마다 수확 시기가 달라서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여러 품종을 한 상자에 넣어 팔면 좋을 텐데’ 같은 쓸데없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위안 삼아보자면 딸기는 비타민C 함량이 높다. 품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딸기는 대개 100g에 60mg 내외의 비타민C를 함유하는데, 어른이 하루에 필요한 하루 섭취량 역시 60mg 정도다. 딸기 5~6개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있는 셈이다. 또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 항산화 물질 플라보노이드와 엘라그산, 식이섬유 펙틴이 들어있어 항암작용, 노화 방지, 면역력 증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연초부터 탕진 중이지만, 적어도 1월 안에 내 몸에 비타민C가 부족할 일은 없지 싶다.

도움말=충남농업기술원 딸기연구소 김현숙 팀장·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과 최수현 연구사·우공의딸기정원 곽연미 대표
참고서적=『2018 딸기 수출 길라잡이(농촌진흥청)』 『농업기술길잡이 40 개정판 딸기(농촌진흥청)』 『지역에 스며든 우리 품종 이야기(농촌진흥청)』

이세라 쿠킹 객원기자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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