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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잡스'서 희대의 사기꾼 몰락…3년 재판 끝 유죄받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연방 법원에서 엘리자베스 홈즈가 유죄 평결을 받은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연방 법원에서 엘리자베스 홈즈가 유죄 평결을 받은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2의 스티브 잡스’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엘리자베스 홈즈(37) 테라노스 창업자가 3일(현지시간) 미국 형사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

CNBC·파이낸셜타임스(FT)·가디언 등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지방법원에서 12명의 배심원단이 홈즈에게 적용된 11가지 범죄 혐의 중 4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11개 기소죄목 중 4개 유죄…홈즈측 "항소할 것"

유죄가 선고된 죄목은 ▶투자자 사기 공모 ▶브라이언 그로스먼 투자자에 대한 3800만 달러(약 454억원) 사기 ▶데보스 일가에 대한 490만 달러(약 59억원) 사기 ▶전 투자자 댄 모슬리를 상대로 한 600만 달러(약 72억원) 사기 등이다. 반면 환자 사기 공모 1건과 부정확한 검사 결과를 받은 환자와 관련된 2건 등 총 3건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1개 혐의는 기각됐고, 나머지 3개 혐의에 대해서는 배심원단이 평결을 내리지 못했다.

이를 토대로 에드워드 다빌라 미국 지방법원 판사가 추후 최종 형량을 선고하게 된다. 로이터 통신은 유죄 평결이 내려진 4건의 혐의에 각 20년씩, 최대 80년 징역형이 가능하지만, 실제 형량은 이보다 낮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홈즈는 항소할 예정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배심원단의 평결이 낭독되자 홈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홈즈와 2019년 결혼한 캘리포니아 에반스호텔그룹 상속자인 빌리 에반스(30)는 초반에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평결을 들으며 침착한 모습을 되찾았다고 전했다.

만19세 '여자 잡스'…한때 실리콘밸리 수퍼스타

홈즈는 1984년생으로 미국 스탠퍼드대를 중퇴하고 만 19살에 바이오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설립해 실리콘밸리의 수퍼스타로 급부상했다. 피 한방울로 250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내세워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 등 거물 투자자를 유치하고 전설적인 외교관 헨리 키신저와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 등을 기업 이사로 뒀다.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회장 등의 극찬을 받으며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포춘 글로벌 포럼에서 연설하는 엘리자베스 홈즈. 연합뉴스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포춘 글로벌 포럼에서 연설하는 엘리자베스 홈즈. 연합뉴스

특히 스탠퍼드 중퇴라는 학력, 금발머리와 파란 눈의 미모, 낮은 목소리와 검정색 터틀넥 차림의 중성적 이미지 등으로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각종 강연 요청이 쇄도했고 포브스‧포춘 등 유명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2015년 기준 홈즈는 포브스 선정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였고 만 31세에 순자산이 45억 달러(5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90억 달러(약 10조7000억원)까지 뛰었다.

가짜기술 들통나며 '사기꾼' 몰락

승승장구하던 홈즈의 신화는 내부고발자로부터 테라노스 혈액 질병진단 기술이 “사기에 가깝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무너졌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고발보도가 이어지면서 사기극이 들통났다. 실제로 테라노스 기술로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은 16개에 불과했고, 나머지 200여 개 질병은 기존의 대규모 의학 장비로 확인한 것이었다. 암 등 주요 질환은 전혀 진단하지 못했고 원본 그대로 보존해야 할 샘플 조작까지 이뤄졌단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0’으로 추락해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당시 홈즈는 “우리는 언젠가 그 많은 질병을 검사할 기술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발언해 공분을 샀다.

포춘과 포브스 등 유명 매거진의 커버를 장식한 엘리자베스 홈즈. [홈페이지 캡처]

포춘과 포브스 등 유명 매거진의 커버를 장식한 엘리자베스 홈즈. [홈페이지 캡처]

결국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투자자들은 2018년 홈즈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코로나19와 홈즈의 임신·출산 등으로 3년간 미뤄졌던 재판이 지난해 재개됐다.

재판에서 홈즈 측은 당시 남자친구인 테라노스 최고운영책임자(COO) 라메시 발와니에게 심리적·성적 학대를 당해 그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떠넘겨왔다. 홈즈의 변호인단은 “사업에 실패한 것은 범죄가 아니다”면서 “홈즈는 테라노스의 복잡한 기술적 단점을 이해하지 못한채 ‘선의’에 의해 사업을 추진했을 뿐, 고의로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홈즈의 재판을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선 기자들과 시민들. 연합뉴스

홈즈의 재판을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선 기자들과 시민들. 연합뉴스

검찰은 29명의 증인으로부터 다량의 문서 증거와 증언을 확보해 홈즈가 고의로 혈액검사 기술 효과를 과장하고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테라노스의 전 연구소 소장은 “기술적 결함에 대한 우려와 지적이 제기됐지만 대체로 무시됐다”고 증언했다. 홈즈는 테라노스의 기술을 승인하지 않은 화이자 등 제약사들의 로고를 투자자에게 보내는 문서에 배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검사 제프 쉥크는 최종 변론에서 “홈즈는 사업 실패보다 사기를 선택했다”며 “그 선택은 부정직한 것이었고, 냉담했을뿐 아니라 범죄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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