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서적 등 출판산업 미래상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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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참가기 김재혁-출판제작국 부국장>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박람회인 제42회 프랑크푸르트 북페어가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시내 베세 전시장에서 열렸다. 1949년 창설돼 매년 열리고 있는 이 국제도서전에는 올해 한국을 비롯한 90개국에서 8천5백여 출판사가 참가, 각종 도서 총 38만2천여종을 출품했다. 다음은 국내 언론사로는 사상 처음으로 올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전용 전시대를 마련하면서 중앙일보사가 그 관리를 위해 현지에 파견했던 김재혁 부국장의 도서전 참가기다.
이번 북페어를 통해 올해 세계출판계의 몇 가지 특징을 요약해 보면 ▲활자미디어가 최신의 첨단전자미디어로부터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 ▲구미 선진제국의 출판과점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 ▲아동·자연보호·환경·의학·과학등과 관련된 전문서적출판이 꾸준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 ▲건강·레저·취미관련 서적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 ▲개방화시대를 맞아 소련과 동구를 향한 구미선진국들의 출판 활로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점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도서전에는 전통적 개념의 시작만이 아니라 민화·지도·판화·조각·캘린더·카드·비디오서적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출품됐다.
특히 일본은 CD-ROM을 이용한 전자서적류를 다수 출품, 세계출판산업의 미래상을 극명하게 예시했다.
일본 소니사가 출품한 「데이타디스크맨」이라는 전차서적을 레이어(EBP)는 보통 CD 한장에 대형사전 5권 분량인 20만 페이지의 정보를 입력, 이를 영·독·불·일등 4개국어로 화면에 출력시키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 주고 있었다. HD-TV를 활용, 책보다도 훨씬 선명한 컬러화면으로 문자와 사진·도표까지를 영상화시킬 수 있는 첨단전자미디어의 개발로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같은 전자미디어의 눈부신 발전과 갈수록 독서를 기피하는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의 변화는 전통적 활자미디어를 고수하려는 세계출판업계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내놓은 한 조사보고서는 보통 성인의 경우 미디어와 접촉하는 하루 6시간 가운데 78%인 4시간40분을 전자미디어에 매달리고 있으며 활자매체에 접하는 나머지 1시간20분도 신문을 읽는데 대부분을 빼앗기고 책·잡지를 읽는 시간은 겨우 25분에 지나지 않는 다고 밝힌바 있다.
이 보고서는 보통사람들이 TV 등 전자매체에 몰입하는 경향이 점차 심해지고 있으므로 앞으로 10년 이내에 책이나 잡지를 보는 시간은 13분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덧붙이고 있다.
출판업계는 이같은 현상이 활자미디어산업을 위축시키는데 그치기 않고 일반대중을 「정신적 빈곤」으로 몰아가 급기야는 「멍청이」들을 양산하는 사태를 빚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럴 경우 독서를 통해 고도의 전문지식을 지니게 되는 엘리트계층과 전자미디어에 매달리는 「멍청한 대중」 사이에 지적 갭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한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는 국제사회의 발견을 저해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번 국제 도서전을 주관한 서독서적상·출판인협회 이사장 울리흐 베흐슬러 박사는 이와 관련, 『일반대중의 독서열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선진국들이 세계출판계를 과점하고 있은 현상도 문화적 식민주의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번 국제도서전에 출품한 국가별 출판사 숫자만 보더라도 주최국인 독일이 2천3백여개사, 영국 8백40개사, 미국 6백70개사, 프랑스 5백50개사, 스위스 4백50개사, 이탈리아 4백20개사, 일본 1백26개사 등 유럽·북미주·일본 등의 경제적 선진국들이 압도적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통계에 따르면 EC제국은 매년 30만종 이상, 미국·캐나다·일본이 합쳐 15만종, 소련 등 동구 7개국이 13만종의 각종 서적을 출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이번 도서전에 겨우 9개사가 참가했다. 이는 5천년의 역사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이라는 자존심과는 크게 동떨어진 초라한 규모로 올림픽이나 국제무역박람회의 개최도 중요하지만 문화발전의 매개체가 되는 출판 쪽에 업계·정부의 관심이 제대로 기울어지지 못하고 있은 것같이 아쉬웠다.
이에 비해 일본은 올해를 「일본의 해」로 정하고 푸「일본-과거와 현재)라는 주제 하에 9월부터 11월까지 석달 동안 28가지의 각종 행사를 치르면서 왕실·정부·민간기입들이 한 덩어리가 된 일종의 대규모 문화올림픽을 열고 있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전문출판사들이 새로운 독자층확보를 위한 아이디어출판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도서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스위스의 어느 출판사는 수제품에 가까운 최고급의 고가서적 출판으로 활로를 찾고 있었고 5각형의 제본으로 는 길을 끄는 출판사도 있었다. 표지디자인이나 내용구성이 전에 비해 화려해지고 색도인쇄도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는 것이 전체적인 인상이었다.
한편 서구와 미국·일본 등의 출판계는 개방되고 있는 동구권을 새로운 시장으로 공략하고 있어 주목된다. 동구제국의 도서전시장마다 저작권상담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을 통해 해마다 이뤄지는 저작권상담 및 계약건수는 4천5백∼5천건. 이 때문에 전통 있는 출판사들은 각기 독특한 전시장을 설치하고 많은 수의 여자 전문 상담인을 파견하고 있다.
한국출판계가 이 기간동안 어느 정도의 저작권판매합의를 이끌어 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국제시장에 내놓을 만한 수준 높은 외국어출판물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다라서. 판매보다는 구매 쪽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그나마 공동전시장을 설치해 여우 체면을 유지하는 형편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은 매년 참가업체가 증가되는 추세인데 한국의 출판계와 관계당국도 이제는 이런 도서전이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라는 점을 인식,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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