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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1년만에 들통난 ‘공수처 무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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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28일 오후 경기도 과천정부청사 공수처에서 열린 '공수처검사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10.28/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28일 오후 경기도 과천정부청사 공수처에서 열린 '공수처검사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1.10.28/뉴스1

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언론사찰에 이어 정치사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공식출범한지 1년도 지나지않아 우려했던 증상들이 현실화되었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7일 긴급간담회에서 ‘공수처가 17개 이상 언론사 기자 100명 이상, 국민의힘 의원 31명의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털었다’며 ‘불법정치사찰을 한 공수처장 사퇴하고 공수처는 해체하라’고 요구했습니다.

2. 공수처의 사찰은 비판적 보도에 대한 기자 뒷조사로 보입니다.
중앙일보와 TV조선이 주요타킷이 됐습니다. 중앙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후배인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보도했습니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수사팀에 압력을 넣었다는 내용입니다.
TV조선은, 이성윤이 공수처에 조사받으러 갈 때..공수처장 관용차로 몰래 모셔가는 모습을 담은 ‘황제조사’CCTV영상을 보도했습니다.

3. 여기서 사찰이란 두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통신자료’조회, 다른 하나는 ‘통신사실확인자료(통화내역)’조회입니다.
통신자료 조회는 전화번호 주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확인하는 겁니다. 누구랑 통화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수사기관이 통신사업자에게 요구하면 줍니다.
심각한 건 통화내역 조회입니다. 통화ㆍ문자시간과 장소 및 착ㆍ발신번호까지 특정인의 통신내역을 전부 확인해줍니다. 법원의 영장이 필요합니다.

4. 공수처는 ‘통신내역’조회까지 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수처는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중앙일보 단독보도 기자의 경우..그와 통화한  같은 팀 기자 전원에다 전업주부인 어머니 통신자료까지 다 털렸습니다. 기자의 통신내역을 먼저 뒤지고, 그와 통화한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5. 취재기자는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아닙니다. 무슨 특별한 범죄혐의가 드러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연히..공수처가 비판적인 보도를 한 언론을 상대로 뒷조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기자들, 야당의원들까지 들여다본 것으로 추정됩니다.

6.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동시에 대표적인 무리수입니다.
문재인은 ‘검찰개혁’을 외치면서 공수처가 무슨 상징인양 밀어붙였습니다. 되돌아보면..거짓말과 속임수, 뒤통수때리기까지 점철된 정치판 권모술수의 전형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합니다.

7. 공수처법이 2019년 12월 국회본회의장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제1야당인 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제외한 4개의 군소야당이 찬성했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을 포함한 4개 군소야당이 여당편을 들어준 것은..군소정당(특히 정의당)에 유리한 선거법개정을 약속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총선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편법꼼수 위성정당을 만드는 바람에 군소야당은 의석수가 줄었습니다. 정의당이 ‘뒤통수 맞았다’고 비판했습니다만..이미 늦었죠.

8. 공수처법 관련해 제1야당(한국당)도 뒤통수 맞았습니다.
당초 민주당은 공수처장 추천과정에서 야당에 비토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추천위원 7명 가운데 2명을 야당추천으로 하고, 6명이 찬성해야 추천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야당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면 추천이 안됩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법을 바꿔 의결정족수를 5명으로 줄였습니다. 야당추천위원 2명이 반대해도 소용없게 됐습니다.

9. 당초 공수처에 대한 우려는..제왕적 대통령의 충견이 될 가능성이었습니다.
공수처가 검찰보다 더 쉽게 휘두를 수 있는 대통령용 칼이 됨으로써..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의 도구가 될 가능성입니다. 언론사찰과 야당사찰 의혹은 이런 우려와 정확히 맞아 떨어집니다.

10. 임기말이 실감납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권후보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잘못됐다’고 합니다. 민주당은 27일 위성정당(열린민주당)과 합당했습니다. 공수처를 밀어붙이기위해 벌였던 판이 대선을 앞두고 거둬지고 있습니다. 한바탕 정치쇼가 지나간 빈자리에 모순덩어리 공수처만 남았습니다.
〈칼럼니스트〉
202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