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디자이너는 협상자 생산 라인과 조화 이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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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는 한솥밥을 먹던 현대자동차와 최근 디자인 결별을 선언했다. 현대차와 동일한 플랫폼(차체 뼈대와 동력장치)으로 신차를 개발해 능률을 꾀했지만 대부분 동급 현대차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숙의해 결단을 내린 게 9월이었다. 독일 폴크스바겐.아우디의 수석 디자이너를 지낸 피터 슈라이어(53.사진)를 전격 영입해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30여 분 떨어진 뤼셀하임의 현대.기아차 유럽 디자인연구소에서 최근 한 시간 반가량 그와 만났다.

-기아차도 BMW.아우디 같은 공통된 디자인 요소(패밀리 룩)를 추구할 건가.

"BMW.벤츠.아우디.재규어 같은 세계적 명차들은 고유의 디자인 요소를 오랜 기간 발전시켜 패밀리 룩을 완성했다. BMW의 키드니(사람의 신장) 그릴,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 폴크스바겐의 '비틀'이 그것이다. 내 영향을 받은 첫 기아차는 내년 말 나올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될 것이다."

-기아차의 디자인은 어떻게 차별화할 건가.

"이 회사에 오기 전에 아우토반(독일의 고속도로)을 달리는 쏘렌토.피칸토(한국 내 이름 '모닝')를 보면서 '누가 저런 멋진 차를 디자인했을까' 궁금했다. 현대차는 부드럽고 잘 조화된 디자인으로, 기아차는 다이내믹하고 잘 설계된 건물 같은 느낌을 줬다. 기아차만의 얼굴을 찾겠다."

-디자이너가 멋진 디자인을 해도 생산 파트에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통적으로 독일 업체들은 디자이너와 생산 부문의 협력이 잘돼 왔다. 상대적으로 미국산 차는 생산의 뒷받침이 약한 편이다. 훌륭한 디자이너는 협상자(negotiator)여야 한다. 멋진 디자인이 제품으로 구현되게 엔지니어들을 잘 설득해야 한다."

-한국의 자동차 디자이너 지망생에게 해 줄 말은.

"여행을 많이 해 세상을 배워야 한다. 스케치 연습 못지않게 디자인 컨셉트를 창조하는 일이 중요하다. 웬만한 스케치는 컴퓨터가 다 해 준다.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컨셉트를 찾아야 한다."

-독일은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를 많이 배출했다. 디자인 교육의 기본이 있다면.

"내가 나온 독일 뮌헨 대학이나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이 강조하는 건 '고객의 눈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2010년 포뮬러1(F1)이 열린다. 모터 스포츠와 디자인과 관계는.

"기아차는 축구.테니스 대회를 후원하지만 기아차의 이미지엔 모터 스포츠가 어울린다. 기아차 디자인은 스포티한 면을 소화해 낼 수 있다."

뤼셀하임(독일)=김태진 기자

◆ 슈라이어는=1980년 아우디에 입사, 94~2001년 총괄 디자이너로 일했다. 95년 둥근 돔 세 개를 연결해 놓은 듯한 혁신적인 디자인 '아우디TT'를 선보여 세계 자동차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A6 등을 디자인해 아우디 부흥을 이끌었다. 이후 폴크스바겐으로 옮겨 골프.제타 등의 디자인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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