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파라서 그런지 훅 안 나고 슬라이스만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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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15 총선 패배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칩거하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2년 반 만에 TV에 얼굴을 드러냈다. 골프 전문채널인 J골프의 '윤은기의 포브스 골프'에서다.

80세의 노정객 JP는 43년 동안 함께한 골프에 대한 철학과 에피소드를 주로 얘기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간을 갈랐고, 600여 년 된 한국 수도도 갈라놨다. 정치를 하진 않겠지만 지금 정치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좋은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적극 돕겠다"는 말도 했다.

방송은 2편으로 나눠 제작됐다. 1편은 11일 오후 6시30분, 2편은 13일 오후 3시30분에 방송된다.

JP는 "내가 한국 골프를 지켜냈다"고 주장했다. 1961년 군부가 당시 유일한 골프장인 서울컨트리클럽(현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불도저로 밀고 콩을 심어야 한다고 결의했을 때 JP는 "외국 손님이 올 때를 대비해서라도 필요하다"며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설득해 코스를 유지시켰다고 했다. JP는 파는 0, 보기는 1, 더블보기는 2로 기재하는 한국식 스코어카드 표기법도 자신이 개발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재는 잘 치면 70대, 못 치면 80대 타수를 기록한다고 말했다. 2언더파 70타가 최저타며 지난달 뉴코리아 골프장에서 기록한 73타 스코어카드도 공개했다. 프로선수들도 어렵다는 '에이지 슈트(나이와 같거나 적은 타수를 치는 것)'를 밥 먹듯 한다는 얘기다.

'JP 골프는 멀리건(벌타 없이 다시 치는 것)투성이' 라는 소문에 대해 확인해 봤다. JP의 라운드를 촬영한 J골프 정성태 PD는 "3홀을 찍었는데 러프에 들어간 공을 캐디가 근처 페어웨이로 옮겨 놓기는 했지만 멀리건은 없었고 끝까지 홀아웃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총재는 버디, 파, 보기를 기록했다. JP는 역대 대통령의 골프에 대해 얘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소득 300 달러가 될 때까지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하더니 60년대 후반 목표를 달성하자 공을 쳤다"고 했다. 라운드 중에는 과묵했고 실력은 보기 플레이 정도였으며 끝나고 사이다에 막걸리를 섞어 마시는 '막사'를 즐겼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그린에 올라가 1퍼트만 하고 그만두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JP는 "역대 대통령 중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골프 실력이 가장 뛰어났다. 80대 중반을 쳤으며 특히 우드를 잘 친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3당 통합하면서 한 번 골프장에서 만났는데 기자들이 따라오는 바람에 긴장한 김 전 대통령이 스윙하다가 넘어진 일화도 소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프로들한테 제대로 레슨을 받아 스윙이 깨끗하고 곧잘 치는 편이었으나 오히려 권양숙 여사가 더 잘 치는 것 같더라고 했다.

JP는 "나는 티샷보다는 3번 우드로 치는 두 번째 샷이 더 멀리 나간다. 대통령 욕심 없는 2인자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우파다. "(우파라서 그런지) 볼도 훅(왼쪽)은 나지 않고 슬라이스(오른쪽)만 난다"고 했다.

그는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은 골프 매너가 좋고 안양 골프장에 서비스 정신을 강조하는 등 한국 골프문화를 확립했다"며 '존경하는 골퍼'로 꼽았다. 반대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기업인들과 내기 골프를 하면서 돈을 잃으면 다음 홀에서 액수를 두 배씩 올려 결국 돈을 따거나 그래도 안 되면 16번 홀쯤에서 '대통령이 부른다'고 하며 도망쳤다고 기억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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