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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우범지대 어린이들…경찰 동행한 콜롬비아 빈민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55) 

2011년 방문한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 외곽의 빈민가. 현지 컴패션 직원이 미리 요청한 경찰이 우리와 동행해야 할 정도의 우범지대다. 동네 전반에 깔려 있는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를 무색케 한 어린이들의 환한 미소. [사진 허호]

2011년 방문한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 외곽의 빈민가. 현지 컴패션 직원이 미리 요청한 경찰이 우리와 동행해야 할 정도의 우범지대다. 동네 전반에 깔려 있는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를 무색케 한 어린이들의 환한 미소. [사진 허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는 안데스산맥 기슭의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컴패션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해 보고타에서 조금 더 달려, 베야플로르라는 외곽 지역 빈민가를 방문하였습니다.

가파른 경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대한 규모의 구릉을 색색의 집들이 빼곡하게 덮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헉헉거리며 올라간 좁은 골목 계단은 하늘 끝에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높았지요. 마침내 꼭대기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어린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높은 곳에서 어린이들은 뛰고 달리고 골목골목을 놀이터 삼아 누비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심각한 우범지대를 가기 위해 컴패션 직원은 물론 경찰까지 동행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남미의 빈민가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TV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인상으로는 식민 잔재가 있어서 그런지 도시의 형태는 다 갖추고 있어 거리나 건물 등이 번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경찰과 동행해야 할 정도로 삼엄한 상태에서 방문했던 2011년 콜롬비아의 빈민가는 그럴듯한 모습 속에 뭔가 눌린 듯한 음습한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계획된 도시가 아닌, 버려진 야산에 빈민층이 자신들이 필요한 대로 대충 집을 지어 난개발된 곳이었지요.

삶의 무거움이 가득한 음습한 분위기가 동네 전반에 깔렸었지요. 그렇지만 가정 방문을 위해 집에 가면 또 손님이 대한 환대와 반가움이 있고, 아이들도 활기가 가득했습니다. 마침 방문 때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서 선물을 챙겨갔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기뻐했지요. 그 아이들의 웃음이 거리의 음습함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2005년, 처음으로 필리핀 마닐라의 컴패션 현지를 가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우리는 어린이에게 줄 선물을 고심했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본 적 없다는 아이들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풍선 트리를 가져갔다. [사진 허호]

2005년, 처음으로 필리핀 마닐라의 컴패션 현지를 가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우리는 어린이에게 줄 선물을 고심했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본 적 없다는 아이들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풍선 트리를 가져갔다. [사진 허호]

2005년 말 처음으로 컴패션 현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였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필리핀 빈민가의 어린이 가정을 방문하게 된다는 것은 매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기대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끼리 모여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가져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마침 12월 중 3박 4일간 트립이어서, 이 아이들이 일 년 내내 따뜻한 데 사니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잘 만끽해 보지 못했었을 거라는 생각에 트리를 만들어 주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이 가정 인근에는 나무가 없을 것 같은 겁니다. 한국에서부터 나무를 가져갈 수도 없었고요. 마침 펌프로 바람을 넣어 나무 모양을 낼 수 있는 트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바람을 넣지 않은 채 들고 갈 수 있었지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알아도, 트리를 보거나 가정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바라보면서 보기만 해도 행복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2011년,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간 에콰도르 아마존 상류의 밀림. 크리스마스를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며 순수하게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 [사진 허호]

2011년,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간 에콰도르 아마존 상류의 밀림. 크리스마스를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며 순수하게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 [사진 허호]

4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에콰도르 아마존의 아주 상류 지역에서 밀림 안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찾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1956년 미국인 짐 엘리엇 선교사가 원주민인 와오라니 부족에게 순교했던 그 마을이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그 후예들이 기독교를 믿으며 밀림 속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잘 알려지고 있었지요. 마침 크리스마스 때여서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간 산타 모자나 크리스마스 용품을 준비해 갔는데 크리스마스는 익숙해도 이 물건들은  어린이들 눈에는 굉장히 색달랐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에 우리도 참 좋았지요.

신기한 것은 이 밀림 속에도 한국 후원자들이 후원하는 어린이가 꽤 많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알려주고 같이 인사했을 때, 어찌나 신기해하며 좋아하던지요.

코로나19 속에서도, 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고 반짝반짝하는 장식들이 알록달록 빛을 발하는 모습이 정말 화려합니다. 그런데 그 휘황찬란한 화려함보다 그 아이들의 너무나도 소박했던, 그래서 선물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더욱 기뻐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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