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떠나야 하지만…갈 곳 없는 필리핀 철거민촌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2021.11.29 08:00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54)

2016년 필리핀 세부 도심 한복판에서 본 철거민촌. 파란 셔츠를 입은 사설 경비원은 남은 자들이 집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그 앞의 천진난만한 어린이. [사진 허호]

2016년 필리핀 세부 도심 한복판에서 본 철거민촌. 파란 셔츠를 입은 사설 경비원은 남은 자들이 집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그 앞의 천진난만한 어린이. [사진 허호]

컴패션 일로 개발도상국이나 빈민국을 방문하게 돼 만나는 도심에 사는 어린이 중 자기 땅에서 사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빈민일수록 도심에 살아야 돈을 벌 수단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만난 무덤 마을 주민이나 거대한 쓰레기 하치장 주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이 그런 경우입니다. 빈 땅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비집고 들어가 터전을 잡고 살게 되는가 봅니다. 그러다 보면, 원래 땅 주인이 나타나 권리를 주장하곤 합니다. 아무 여력이 없던 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땅 주인에 의해 쫓겨나가게 되는 철거민으로 전락합니다.

2016년에 필리핀 세부의 한 컴패션 어린이센터를 방문했다가 철거민촌으로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부 도심에 있지만 거의 퇴거한 무허가 정착촌에 컴패션 어린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게 맑게 갠 파란 하늘, 그럭저럭 복작복작하고 왕래도 잦은 도심 안에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듯 완전히 무너져 버린 골목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무너진 집의 잔해가 삐죽삐죽 땅에서 솟아나 있고 판자며, 시멘트 조각이 길 위를 촘촘히 덮은 그곳에서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퇴거명령을 받았지만 갈 곳이 없다. 버티고 싶어 버티는 것이 아니라,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남은 집들은 비 바람만 겨우 막을 정도로 보였다.

퇴거명령을 받았지만 갈 곳이 없다. 버티고 싶어 버티는 것이 아니라,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남은 집들은 비 바람만 겨우 막을 정도로 보였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무허가 정착촌이어서 그런지, 땅 주인이 법정까지 가는 강수를 두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된 이들을 불법 거주자로 못 박고 밀어붙인 것이지요. 재판부는 거주자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지요. 우리가 방문한 아이들의 부모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셈입니다. 이들과 함께 손을 붙잡고 사정 이야기도 듣고, 같이 기도도 하면서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퇴거명령이 내려지자 땅 주인은 집들을 부수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 사정이 되는 가정은 떠나고 갈 곳 없는 사람은 버티는 상황이었습니다. 땅 주인이 고용한 사설 경비원은 남은 자들이 집을 더 짓거나 수리하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의 눈빛을 보니 아이에게까지 험악하게 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래의 형태를 짐작할 수 없도록 무너져 방 한 칸 남은 집. 가재도구를 집에 들일 수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 많은 식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었다.

원래의 형태를 짐작할 수 없도록 무너져 방 한 칸 남은 집. 가재도구를 집에 들일 수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 많은 식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었다.

가난한 가정을 방문해도 보통은 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곳은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비바람만 겨우 가릴 정도였지요. 천진난만하게 골목을 휘저어 다니던 어린이들이 자기 집 앞에서 쉬는 모습에서 어른들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듯 보였습니다.

함께 간 한국 후원자들은 어린이를 품에 안으며 도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이후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가장 필요한 도움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새 소리가 요란하다. 아이들이 새총을 들고 새를 잡고 노는 것이다. 무엇을 맞추고 명중시키던 아이들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놀잇감의 하나로 보였다. 신이 난 것이 새를 맞추던, 나뭇가지를 맞추던, 상관없어 보였다.

새 소리가 요란하다. 아이들이 새총을 들고 새를 잡고 노는 것이다. 무엇을 맞추고 명중시키던 아이들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놀잇감의 하나로 보였다. 신이 난 것이 새를 맞추던, 나뭇가지를 맞추던, 상관없어 보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시끌벅적한 곳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옮겨간 것은 당연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색색의 고무줄로 된 새총을 들고 나무 위로 맞추게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장난감이 드문 곳이니 새를 맞추든, 나뭇잎을 맞추든, 쏘고 맞추는 행위 자체가 놀이였던 거지요. 아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안심되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그래도 이어지고 흘러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철거민촌은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치열한 생존 싸움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분명한 건, 도시가 정비되면서 이들의 집이 허물어지는 모습은 안타깝고 슬프다는 겁니다. 그런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이곳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여전히 있고 아이들은 위험하지만, 울고 웃고 씩씩합니다.

이들의 일상을 보며 삶은 참 이처럼 끈질기고, 생명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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