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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교수도 지적한 ‘생과 20번’…평가원 자문학회 답변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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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오류 논란과 관련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자문한 학회에서도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이 나왔다.

평가원 자문 구한 학회, 정답처리 ‘유보 1 대 유지 2’ 

12일 한국유전학회·한국생물교육학회·한국과학교육학회가 각각 수능 출제기관인 평가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유전학회는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유전학회는 의견서를 통해 ‘풀이의견-1’과 ‘풀이의견-2’를 각각 제시하면서 정답 처리 방안에 상반되는 두 가지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유전학회는 “풀이의견-1 방법으로 풀이할 경우 문제 자체에서 요구하는 답을 구할 수는 있다”면서도 “문제 답을 얻기 위한 유일한 접근 방법일 것이라는 논리적 근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풀이의견-2 방법으로 문제 풀이를 시도할 수 있다”며 “주어진 조건 활용 여부에 따라 해답을 구하는 데 심각한 오류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원 정답’ 처리가 합당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유전학회는 대부분 수험생이 ‘풀이의견-1’ 방법으로 문제 풀이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심각한 오류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내놨다.

한국유전학회는 종합의견을 통해 “‘기존 정답 유지’ 처리와 ‘전원 정답’ 처리 중 하나를 제시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혹은 의견 없음)’ 하는 것을 최종 의견으로 제시한다”고 했다.

한국생물교육학회는 “교육과정에 따라 학습한 학생들이 주어진 조건으로 문항을 풀이할 경우 제시된 보기의 진위판별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된다”며 “기존 정답이 유지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또 전원 정답 처리는 출제 의도에 따라 주어진 정보로 문제를 해결한 학생에게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며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과학교육학회도 “문항에 주어진 조건을 사용해 보기의 진위를 판단하는 데 전혀 이상이 없다”며 “기존 정답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답했다.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이 열린 지난 10일 오후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재판을 마친 수험생과 소송대리인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이 열린 지난 10일 오후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재판을 마친 수험생과 소송대리인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송 제기한 수험생들, 출제오류 공론화…스탠퍼드 교수도 ‘모순’ 지적 

문제가 된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동물 종 P의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멘델 집단을 가려내는 문제다. 하지만 계산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보기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단이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수능 문제·정답 이의신청을 심사한 결과 이의가 제기된 76개 문제에 모두 이상이 없다고 판정했다.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에 생명과학Ⅱ에 응시한 수험생 92명은 평가원을 상대로 수능정답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법원은 본안 사건 판결을 오는 17일 오후 1시30분에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92명의 수험생들은 소송 제기 이후부터 생명과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질의서를 발송하는 등 공론화를 주도했고, 집단유전학 분야 세계 최고 석학인 조너선 프리처드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에게 답변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11일 조너선 프리처드 스탠퍼드대 교수가 트위터에 남긴 글. [프리처드 교수 트위터 캡처]

지난 11일 조너선 프리처드 스탠퍼드대 교수가 트위터에 남긴 글. [프리처드 교수 트위터 캡처]

미국 학술원 회원인 프리처드 교수는 수학과 통계,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유전 변이와 진화를 연구해 2013년 미국유전학회의 에드워드 노비츠키 상, 2019년 파비오프라세토 국제상 등을 받은 석학이다.

프리처드 교수는 지난 11일 트위터를 통해 매튜 아기레 연구원이 내놓은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풀이 결과를 공유하고 “집단유전학, 중대한 대학입학시험, 수학적 모순, 법원의 가처분명령 (흥미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험생들에게 관련 논란을 전해 들은 프리처드 교수는 연구실 연구원들에게 문제를 풀어보도록 했고, 아기레 연구원은 20번 문항을 풀이하며 “터무니없고 어렵고, 사실 풀 수 없는 문제”라고 결론 내렸다.

프리처드 교수는 “해당 문항이 우리 과학자들에게 흥미로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며 “고등학교 시험에서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출제된다는 것이 놀랍고 인상적”이라고 적었다.

프리처드 교수 측은 수험생들 요청으로 재판에 활용이 가능하도록 자세한 내용이 담긴 의견서도 별도로 보내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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