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공채의 종말
2만8516명 공개채용에 지원자만 43만4359명. 올해 국가·지방직 9급 공무원 공채에도 어김없이 20~30대가 대거 몰렸다. 평균 경쟁률이 지방직은 10.3대 1, 국가직은 35대 1이었다. 국가직 가운데 교육행정직은 경쟁률이 282대 1이나 됐다. 소방·경찰 등 각 분야 공무원은 물론 공공기관에도 지원자가 몰린다. 지난달 광주광역시가 산하 공공기관 통합채용에 나선 결과 경쟁률은 평균 36.9대 1, 최고 219대 1에 달했다. 14개 기관에서 73명을 뽑는데 2697명이 지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종학교 졸업·중퇴자 중 청년층(15~29세) 미취업자(154만8000명) 가운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른바 ‘공시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32.4%로 전년보다 4.1%포인트나 급증했다. 청년층 취업준비생 10명 중 3명은 공시생인 것이다. 공공기관 공채를 준비 중인 취준생까지 고려하면 이 비중은 더 커진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직 9급 공무원 지원자 10명 중 6명(61.4%)은 20대였다.
30대는 30.6%로 20~30대가 전체의 92%를 차지했다. 이처럼 20~30대 공시생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건 대기업 등 민간기업의 공채 폐지·축소 바람과 무관치 않다. 공채가 줄어들면서 대학을 막 졸업했거나 졸업 예정인 20대나 취업을 못한 30대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자의반 타의반 공시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종합교육기업인 에듀윌이 지난여름 공시생 895명을 대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사기업 채용이 줄어서’라는 응답이 5명 중 1명 꼴인 20.5%에 달했다. 지난해 지방대를 졸업한 공시생 김모(24)씨는 “기업 채용 공고 대부분이 경력직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며 “지방대생은 인턴도 쉽지 않고, 특히 공무원은 개인의 역량에 따라 지방대생이라도 얼마든지 합격할 수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공무원 수를 늘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무원 수는 110만1885명(국가직 73만5909명, 지방직 36만5976명)으로 2019년보다 2만2369명 증가했다. 지난해 말까지 문 정부의 공무원 증가율은 9.5%로 종전 최고였던 노무현 정부(8.23%)를 웃돈다. 특히 이명박 정부(1.24%)나 박근혜 정부(4.19%)와 비교하면 큰 폭의 상승세다. 정부는 올해에도 중앙부처 공무원 8345명 증원할 계획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20~30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다행인데,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게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젊은 인재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능력을 집중시키는 데 따른 국가적 손실도 만만찮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공시생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순손실을 연간 17조1429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무원 채용 확대나 노인 일자리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통계의 왜곡이나 재정부담 가중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가 민간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