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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행원 늘리는 은행, 수천명 뽑던 공채 1년 새 반토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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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6호 10면

[SPECIAL REPORT]
공채의 종말

올해 초 KB국민은행 서울 천호동지점에 붙은 오프라인 점포 통폐합 안내문. [연합뉴스]

올해 초 KB국민은행 서울 천호동지점에 붙은 오프라인 점포 통폐합 안내문.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NH농협은행은 인공지능(AI) 행원을 정식으로 채용한다고 밝혔다. AI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한 가상의 행원들로, 얼굴은 현재 이 은행에 근무 중인 20~30대 ‘MZ세대’의 모습을 합성해 만들었다. 이들은 내년 1월부터 실제 신입 행원들과 함께 약 3개월의 연수와 수습 과정을 밟는다. 이후 사내 홍보 모델 외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고객과의 소통 업무를 맡을 예정이다. 앞서 신한은행도 10월부터 AI가 사람을 대신해 고객 응대를 하는 디지털 데스크를 마련, 일부 지점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전 지점 확대가 목표다.

AI 행원, 홍보 모델 넘어 고객과 소통

최근 은행권의 사활을 건 ‘디지털 전환’이 MZ세대의 뱅커 일자리 감소를 심화시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바일 기술 발전으로 가뜩이나 비(非)대면 수요가 급증하던 차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쳤다. 이에 영업 채널을 비용 부담이 덜한 비대면 위주로 전환하면서 오프라인 점포를 통·폐합하는 일이 많아졌다. 국회 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2015년 7281곳이던 국내 시중·지방·특수은행 오프라인 점포 수는 올 상반기 6326곳으로 1000곳 가까이 줄었다. 연말엔 6100여 곳만 남을 전망이다.

은행들은 전략적 요충지의 오프라인 점포도 행원 수는 줄이고 AI 등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였다면 매년 수천 명씩 뽑았을 정기 공개채용(공채)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올 하반기 270명 규모의 공채를 진행했는데, 경력자까지 포함한 수치가 이 정도다. 신한은행은 특별·수시 채용까지 포함해 250명, NH농협은행은 130명, IBK기업은행은 100명이다. 재작년만 해도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정기 공채로 뽑은 신입 행원 수는 총 2033명이었다. 지난해는 그 절반에 그쳤다(1038명).

한 은행의 인사 담당자는 “대규모 공채보다는 소규모 수시 채용으로, 신입보다는 (뽑아도) 위험 부담이 덜한 경력자 채용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며 “은행마다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어 앞으로도 이런 경향은 바뀌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현재까지 하반기 공채에 나서고 있지 않은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소규모 수시 채용으로 기존 정기 공채를 대체하고 있다. 은행권 공채에 지원했다가 서류 전형에서 탈락한 취업준비생 송모(28)씨는 “올해 주요 은행들의 경영 성과가 좋아서 채용 인원이 늘어날까 기대했는데 늘기는커녕 외려 줄었다”며 “다들 실망을 넘어 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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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더구나 예로부터 ‘은행의 꽃’이라는 영업·마케팅 직군에 지원하는 평범한 문과생에게는 한층 통과하기 힘든 바늘구멍이 됐다. 은행들이 그나마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개발자 채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다. KB국민은행은 비대면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할 인력의 수시 채용에 힘쓰고 있다. 디지털 뱅크를 개발했거나 해외에서 금융 시스템을 운영한 경력자를 우대한다. 얼마 안 뽑는 하반기 공채에서도 사용자 인터페이스(UI)나 사용자 경험(UX) 전문가 등을 뽑는 데 중점을 뒀다.

은행들은 자산 운용에서도 ICT 분야에 강점을 가진 하이브리드 인재 채용을 우선시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최근까지 로보어드바이저에 능한 경력자를 모집한 게 대표적이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한 공식석상에서 “과거에는 상경계열 출신 인재를 뽑아 일부를 전환 배치해 ICT 관련 인력으로 양성했다면, 앞으로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ICT에 기본 소양이 있는 인재를 가려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인재 채용엔 시간·비용이 많이 드는 전통적인 공채보다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만 뽑는 수시 채용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비대면 채널은 트렌드 자체가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특성을 가진 데다 경쟁 상대인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그에 맞게 생존 전략을 세우고 대응 중이어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 이에 따른 느린 의사결정의 한계로 디지털 전환 속도가 여전히 기대만큼 안 나고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채용에 대대적인 변화를 줘서 이를 극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디지털 시대 생존 전략

이 때문에 관계자들은 은행권 진입을 노리는 취업준비생일수록 수시 채용 지원을 우선 염두에 두면서, 전공을 막론하고 미리미리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데 힘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KB국민·신한·하나은행 등은 일반 뱅커 채용에서도 디지털 이해력 평가를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은 국내외 ICT 기업들처럼 자체 해커톤(팀을 꾸려 긴 시간 동안 아이디어를 모으고 시제품 단계의 결과물을 완성하는 대회)을 열고, 수상자에게 입사 지원 시 서류 전형 면제의 혜택을 주고 있다. 잘 활용하면 다른 지원자들보다 준비된 인재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예비 뱅커로서 기본 소양을 갖추는 데도 소홀해선 안 된다는 조언이다. 김영각 KB국민은행 HR부 차장은 “은행들이 디지털 분야 전문 지식을 가진 신입 행원을 원하는 건 사실이지만, 넓게는 디지털에 대한 기본 이해력 정도를 고려하기에 너무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의 문제 유형을 어느 정도 숙지해서 필기시험에 대비하고, 각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하도록 자기소개서 쓰는 연습을 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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