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자회담 재개 합의 배경] 美 안전보장 약속에 北 '대화 U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 북한을 방문 중인 우방궈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左)이 30일 최고인민회의 의사당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나란히 서 있다. [평양 AP=연합]

북한이 30일 방북 중인 중국 대표단에 6자(남북, 미.일.중.러)회담 참가 용의를 밝힘으로써 차기 회담은 사실상 일정 조율만 남겨놓게 됐다.

북한은 관련국 간 '동시행동 원칙에 따른 일괄타결안 실현'을 전제로 내세웠지만, 핵심 쟁점인 대북 안전보장을 둘러싼 북.미 간 입장이 좁혀진 만큼 이르면 다음달 차기회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날 중국 측과 "6자회담 과정을 계속 이어나가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이 8월 말의 6자회담 이후 회담 무용론을 주장하고 핵무기 개발 착수와 핵실험을 시사하면서 상황이 악화된 북핵 문제는 다시 대화 해결 국면을 맞게 된 셈이다.

특히 차기 6자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의 실질적인 진전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이 지난 10월 핵문제가 불거진 이래 화두로 삼았던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부시 미국 행정부가 제안한 다자틀 내의 서면 안전보장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회담 참가국들이 서로의 의중을 타진하는 전초전의 성격이 짙었던 1차회담과 달리 2차회담은 북핵 해법을 본격적으로 조율하는 장(場)이 될 것이란 분석들이다. 실제 사전 교섭 없이 열렸던 1차회담은 참가국들이 기조발표만 하고,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북한이 차기회담 참가 용의를 밝힌 데는 여러가지가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기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서면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등 과거의 적대적 무시 정책에서 적극적 해결 자세를 보인 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6자회담이라는 다자 해결 구도 고수를 위해 북.미 뉴욕 채널을 닫아두었던 미국이 이 채널을 다시 열어둔 것도 북한의 방향 전환 명분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3월과 7월 첸치천(錢其琛)전 부총리 및 다이빙궈(戴秉國)외교부 부부장의 방북을 통해 3자(북.미.중)회담과 6자회담 1차회담을 끌어낸 바 있다. 이번에는 우방궈(吳邦國)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북 기간 중 북한의 6자회담 2차회담 참가 의사를 도출했다.

중국이 이번에 대북 무상원조를 발표하고, 그동안 미뤄져 왔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차기회담 재개의 촉매제가 됐다는 풀이다. 북한은 북핵 중재가 후진타오(胡錦濤)중국 국가 주석의 외교 역량 시험대가 되고 있는 점도 저울질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핵문제 장기화에 따른 북한 경제 악화와 외교적 고립감이다. 북한 경제는 핵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더 곤두박질쳤고, 지난해 7월 내놓은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외자가 줄어들면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북한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여기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다음달 3,4일 비공식 집행이사회를 열고 경수로 건설을 일시 중단할 움직임을 보인 것도 무시하기 어렵다. 북한은 경수로 완공을 핵문제 해결의 마지막 과정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이번 입장 표명으로 관련국 간 사전 외교교섭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하지만 차기 회담까진 복병도 숨어 있다. 북한은 핵폐기와 대북 안전보장 등 핵 문제 해결 요소가 관련국 간에 동시 행동의 병행적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인 데 반해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선 핵폐기 후 반대급부 제공 쪽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영환 기자

<북한의 핵문제 관련 주요 발언 일지>

▶8월 27~29일 베이징 1차 6자회담에서 동시행동 원칙에 입각한 4단계 해법 제시

▶8월 30일 "우리는 이런 백해무익한 회담에 더는 그 어떤 흥미나 기대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외무성 대변인)

▶10월 2일 "8천여개의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성과적으로 끝냈다"(외무성 대변인)

▶10월 16일 "때되면 핵억제력 공개조치 취할 것"(외무성 대변인)

▶10월 20일 부시 미 대통령, '다자틀 내 대북 안전보장' 제의

▶10월 25일 "우리는 서면 불가침 담보에 관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우리와 공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동시행동 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안을 실현하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고려할 용의가 있다"(외무성 대변인)

▶10월 30일 "6자회담이 동시행동 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된다면 6자회담에 나갈 용의 있다"(김정일 위원장-우방궈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 회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