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하나투어 박상환 사장 "지구촌이 사장실 150바퀴는 돌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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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11월에 닥친 외환위기는 여행업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살아남은 곳은 대량해고를해 연명했다. 하지만 박 사장은 감원을 하지 않았다. 반 년도 채 안 돼 경기가 좋아졌고 경쟁사들의 영업력이 부실해진 틈을 타 하나투어는 단숨에 1위 여행사로 올라섰다.

박상환(49.사진) 하나투어 사장은 최근 열흘 남짓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영국 에딘버러.런던, 미국 보스턴.뉴욕.시카고, 홍콩을 도는 장거리 여정이었다.

지구 한 바퀴를 돌고 귀국한 당일(7일) 서울 공평동 사옥에서 만난 박 사장은 그러나 피곤한 기색이 아니었다.

하나투어 주식예탁증서(DR)의 런던 증시 상장을 앞두고 해외 투자 설명회를 위해 다녀온 이번 출장 성과가 나쁘지 않아 그럴법도 했다.

박 사장은 "국내 업체 중 런던 증시에 DR을 할인하지 않고 발행한 것은 하나투어가 처음"이라며 "투자자들이 높은 관심을 보여 발행 물량의 두 배 이상 매입 주문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하나투어 DR은 해외 증시에서 10일 자정(한국 시간)부터 거래가 된다.

하나투어는 국내 여행업계 중 가장 먼저 상장(2000년 11월 코스닥)한데 이어 해외 증시 상장의 첫 테이프도 끊었다.

박 사장은 런던 증시 상장 문제로 그동안 마음 고생을 했다. 지난달 4일 이사회가 DR 발행을 결정한 이후 국내 주가가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DR발행으로 주식 물량이 10% 늘어나 주가가 희석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박 사장은 "DR 발행으로 들어오는 6900만 달러(647억원)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온라인 인프라를 더 구축하면 기업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영어교육학과 출신인 박 사장의 꿈은 종합상사맨이 되는 것이었다.

80년대 초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 종합상사는 최고 인기 직장이었다. 해외에 나갈 기회가 드물던 그 때 종합상사에 들어가면 해외에서 일할 기회도 많았다. 박 사장은 그러나 경쟁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차선책으로 택한 게 여행사. 외국인을 상대하는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하는 일이 일반 사무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입사 이듬해인 82년 '투어 컨덕터' 1기에 합격했다. 투어 컨덕터는 정부가 해외여행 규제를 완화하면서 여행 인솔자를 선발하려 치른 일종의 자격시험. 이 자격증을 딴 덕에 그는 바라던 대로 외국을 두루 돌아다닐 수 있었다. 81년 여행업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지금까지 25년동안 지구 150바퀴는 족히 돌았다녔다고 한다.

해외 경험을 쌓으면서 그는 여행업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영세 여행업에서 벗어나려면 상장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국일여행사(현 모두투어)를 공동 창업했다가 93년 하나투어의 전신인 국진여행사를 설립했다. 그는 기획한 여행 상품을 소규모 여행사에 대량으로 파는 '홀세일러' 업체로 방향을 잡았다. 이 같은 영업 전략이 주효해 창립 4년 만에 5~6위 업체로 발돋움했다.

그러던 중 위기가 닥쳤다. 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는 여행업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98년 1~2월 해외여행객이 90% 넘게 급감하면서 국내 여행사 중 절반 가량이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곳은 대량해고를 해 연명했다.

하지만 박 사장은 감원을 하지 않았다. 모든 임직원 월급을 30만원 수준으로 줄이는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경기가 회복되면 사업기회가 더 많아질 것으로 판단했고 그게 적중했다. 반 년도 채 안 돼 경기가 좋아졌고 경쟁사들의 영업력이 부실해진 틈을 타 하나투어는 단숨에 1위 여행사로 올라섰다.

하나투어는 현재 1만4000여 가지 해외여행 상품을 전국 5000여 개 소매 여행사를 통해 팔고 있다. 지난해 매출(영업수익 기준)은 1000억원 고지를 넘어섰다. 2~4위 업체 매출을 합친 것보다 훨씬 큰 액수다.

박 사장은 런던 증시 상장을 계기로 또 한 번 대변신을 꾀하고 있다. 사업전선을 해외로 돌릴 생각이다.

그래서 런던 증시 상장도 결심했다. 해외 각국에 브랜드를 알리면서 외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박 사장은 "한국은 한.중.일 3국 관광의 허브(중심축)가 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지니고 있다"며 "22개 해외 자회사 및 사무소를 2010년까지 50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창립:1993년 11월(당시 상호는 국진여행사)

▶임직원수:1204명

▶본사 및 지사:서울 공평동 본사 및 전국 27개 지사.사무소 (미국.일본 등에 해외 법인.사무소 22개)

▶자회사:투어토털닷컴.하나투어인터 내셔날.웹투어.하나강산 등 11개

차진용 기자



박상환 사장의 '오픈 경영'

집무실을 직원 회의실로 개방
신입사원에게도 주식 보너스

7일 오후 박상환 사장 집무실.문에 'meeting room'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박 사장 집무실 팻말은 그가 있을 땐 'Park's room'으로, 없을 땐 'meeting room'으로 바뀐다. 이날 해외 출장에서 막 돌아다오다 보니 미처 팻말을 못 바꾼 것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개인 집무실을 회의실로 쓰도록 개방했다. 박 사장은 신경영 기법 도입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정년을 55세에서 65세로 연장하면서 임금 피크제를 결합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잡 셰어링)'제도를 도입했다. 만 50세가 넘으면 임금을 80%만 받고 하루 덜 일하게 했다. 55세가 넘으면 60%를 받고 주3일, 60세에서 정년 때까진 40%만 받고 주2일 근무하는 식이다. 45세 이상자도 희망하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 1200여 명의 임직원 중 잡 셰어링 대상자는 박 사장을 포함해 4명. 특히 박 사장은 50세가 안 됐지만 제도 정착과 본인 학업(경희대 관광학 박사 과정)을 위해 주3일 근무하면서 임금을 60%만 받고 있다.

박 사장은 "여행사 일은 입사 4~5년만 지나면 최고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며 "나이들어 조금 일하고 자기 계발이나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 설립 2년만에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했다. 신입사원이라도 최소 500만원어치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해당량의 주식을 보유할 때까지는 보너스를 주식으로 지급했다. 2000년 업계 처음으로 증시상장을 하자 이듬해부턴 매년 자사주를 사들여 전직원(5만 주 이상 보유자는 제외)에게 스톡옵션을 주고 있다. 종업원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가져야 열심히 일하고, 좋은 성과가 나오면 결실을 나눠야 한다는 게 박 사장의 생각이다.

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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