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하나 만드는데 3억, 전 빌려쓸게요" 日공주의 반란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12.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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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마코. 지난달 미국으로 떠나며 출국심사를 위해 마스크를 벗어보이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자유인 마코. 지난달 미국으로 떠나며 출국심사를 위해 마스크를 벗어보이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진주 귀걸이는 빼고, 머리는 풀어버린 그녀-."  

일본 열도를 뒤흔든 전(前) 공주 마코(眞子) 씨에 대해 아사히(朝日) 신문이 달았던 헤드라인 일부입니다. 결혼 후엔 남편 성(姓)을 따르는 일본 관례에 따라 이젠 ‘마코 사마(님)’에서 ‘고무로 마코 씨’가 된 그녀에 대한 비난 여론은 뜨거웠습니다. 한국에서도 ‘밉상 공주’ 등의 표현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지금 행복한 쪽은 누구일까요? 국민 세금으로 생활을 해놓고 국민이 반대하는 결혼을 헀다는 이유로 마코 씨를 욕하느라 바쁜 사람들일까요? 아닐 듯 합니다. 타고난 계급을 버리고 사랑을 택하는 드라마를 쓴 새댁, 마코 씨가 백배는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랑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행복한 이는 마코 씨일 겁니다.

공주였던 시절, 성장(盛裝)을 한 마코. AFP=연합뉴스

공주였던 시절, 성장(盛裝)을 한 마코. AFP=연합뉴스

보수적이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일본 왕실이 요구하는 ‘공주 룩(look)’은 정해져 있습니다. 스커트는 필수, 무릎은 반드시 덮는 기장에 모자도 필수,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로 성장(盛裝)을 해야 하죠. 그렇기에 일본 언론은 출국하는 그의 공항 패션에 더욱 주목했습니다. 마코 씨 역시 ‘패션 스테이트먼트(fashion statement)’, 즉 패션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했습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캐주얼 바지 차림에 진주 따윈 하지 않았죠. 마코 씨는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유다!”

그의 남편이 머리를 길러 포니테일로 묶었다고 일본의 보수 세력이 세상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미국 변호사 시험에 낙방을 해서 마코 씨도 일을 해야할지 모른다는 둥 TMI 방출을 계속하고 있긴 하지만 정작 두 신혼 부부는 뉴욕에서 행복할 겁니다.

고무로 씨가 일본으로 귀국할 당시 머리를 묶고 있는 이 사진은 그의 '밉상' 이미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결국 그는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로이터=연합뉴스

고무로 씨가 일본으로 귀국할 당시 머리를 묶고 있는 이 사진은 그의 '밉상' 이미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결국 그는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주말, 정확히는 5일, 성인식을 치르는 현직 공주, 아이코(愛子) 역시 파격을 선언했습니다. 일본 왕가의 여성은 성인식에서 티아라, 즉 왕관 모양의 머리 장식을 쓰는 게 관례인데, 이 티아라는 국민의 혈세로 제작을 합니다. 티아라 하나 당 약 3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들어갔죠. 마코 씨의 티아라는 2856만엔, 동생 가코(佳子)공주의 것은 2793만엔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코 공주는 자신을 위한 티아라는 제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신, 빌려쓰겠다고 했죠. 팬데믹으로 힘든 시기임을 고려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아이코 공주의 결정이야말로 업사이클(좋은 방향으로 재활용 또는 재사용하는 것)의 모범사례라고들 또 한바탕 난리가 났죠. 일본의 한 주간지는 “공주인 아이코는 티아라를 빌려 쓰고, 일반인 마코는 초호화 맨션에 산다”는 제목을 달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밉상인 사촌 언니 vs 선한 현직 공주 식으로 보도가 됐죠.

지난 1일 20번째 생일을 맞은 아이코 공주. 반려견과 함께 찍은 사진. 일본 왕실 업무를 총괄하는 궁내청이 배포했습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일 20번째 생일을 맞은 아이코 공주. 반려견과 함께 찍은 사진. 일본 왕실 업무를 총괄하는 궁내청이 배포했습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코 공주가 진짜 마코 사촌언니보다 훌륭한 사람이어서, 또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빌려쓰겠다고 한 것일지 말이죠.

그저, 상식 선에서 3억원은 너무 비싸고, 국민 세금으로 만든다니, 몇 번 쓰지도 않을 거 그냥 빌려쓰겠다고 한 건 아닐까요.

핵심은 마코와 아이코의 비교가 아니라, 둘 모두 관례를 깨고 있다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즉위식을 치르는 마사코 왕비. 외교관 출신인 그는 왕실로 시집와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EPA=연합뉴스

즉위식을 치르는 마사코 왕비. 외교관 출신인 그는 왕실로 시집와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EPA=연합뉴스

한국어에 ‘눈치를 본다’는 표현이 있듯 일본어엔 ‘공기를 읽다(空氣を讀む)’는 말이 있습니다. 본지 이영희 도쿄(東京) 특파원이 잘 설명했듯(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08026), 마코는 ‘더 이상 공기를 읽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고 아이코 역시 그렇습니다.

아이코 공주의 경우는 어머니가 왕실의 보수적 분위기 때문에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것을 지켜봤기에 더욱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단, 아이코 공주의 결정으로 일본에서 여성도 덴노(天皇)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21세기하고도 21년이 지나 2022년이 코앞이니까요.

관례라는 틀 안에 사람을 가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틀에 기대 남을 함부로 재단하고 뒷담화하는 일은 사라지진 않겠죠. 2022년엔 부디 그나마 좀 적어지길 바랍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아이코 공주의 성년과 마코 씨의 신혼 생활에 축하와 응원을 보냅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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